노무현 대통령 49재가 끝났다. 그러나 그의 비극적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집권층의 오만과 독선은 여전하다. 청와대, 한나라당은 마이웨이만을 노래할 뿐이다. 시청 앞 광장에는 여전히 경찰력이 상주하고 남북관계의 위기지수는 계속 상승한다. 청와대를 시발점으로 하는 불통의 벽은 높아만 간다. 노 전 대통령이 사회에 던진 충격과 교훈은 불씨로 여전히 살아있는가, 아니면 장마철 홍수에 떠내려 갈 것인가?

현 정권이 시국선언 교사들을 무더기 징계하는 것은 청와대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선전포고다. 즉 촛불과 시국선언은 현 정부와 관계가 없으며, 공안질서는 인권에 우선하고,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미국일본과 찰떡 공조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현 정권이 강조하는 꼴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열린 지난 10일 오후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의 대형 걸개 그림이 걸려 있다. ⓒ이치열 기자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의 비극은 5백여만 명이 조문한 서거 정국에 이은 시국선언 정국으로 진화했다. 각계각층 수만 명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전환, 남북관계 정상화 등을 시국선언을 통해 주장했다. 시국선언에는 현 정부가 집권 이후 망가뜨린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할 당위성이 함축되어 있다. 청와대의 부적절한 정치에 대한 국내외의 문제 제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국제앰네스티가 한국의 민주주의, 인권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발표한 것은 외부 세계에 비춰진 한국의 모습으로 우리를 한 없이 부끄럽게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이 나라의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후퇴, 남북관계 파탄의 현실이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검찰은 피의사실을 언론에 중계하는 등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지켜야 할 정도를 어기면서 노 전 대통령의 인권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검찰, 경찰이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자행한 반인권적 태도는 촛불 집회와 시위, 용산 참사 등에서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었다. 평화적인 시위와 집회는 원천 봉쇄되고 시민의 광장은 차벽으로 차단되었다. 당국은 철거민의 생존권 주장을 도심 테러로 몰아 경찰 특공대 작전을 벌여 시민과 경찰이 사망하고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정치권력은 광우병 쇠고기 졸속 수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특정 방송사가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몰아가고 법에 임기가 보장된 방송사 사장을 강제해직했다. 청와대는 거듭된 실정을 언론 탓으로 돌리면서 낙하산 사장 투입 등을 통해 방송 장악을 시도하고 미디어 악법으로 언론시장을 부자와 수구세력의 소유물로 전락시키려 시도한다. 시민들의 생존권 주장, 표현의 자유와 언론자유 억압에 대한 규탄이 지속되지만 청와대는 차벽 뒤에 숨어 민주주의 시계를 20여 년 전으로 후퇴시켰다.

현 정권은 남북관계의 평화적 교류협력에 대한 로드맵이었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외면하면서 남북관계를 냉전시대의 대립국면으로 전락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 뺨칠 정도의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면서 청와대는 그에 편승, 전쟁 불사의 태도로 북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와 외교는 전쟁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상대방이 손가락을 다치게 하면 손목을 부러뜨리겠다는 식의 호전적인 태도는 곤란하다. 현 정권 요직 참여자들 다수가 병역 의무조차 이행치 않았던 사람들이라 이토록 전쟁을 남의 나라 이야기 하듯 하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49재 직전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그는 수많은 시국선언이 요구한 대국민 사과와 국정전환에 대해서 모르쇠 할 뿐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었던 4대 강 살리기에 수십 조 원을 투입할 사업 계획을 보란 듯이 발표했다. 그의 외유직전에 터진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해법은 그가 방문할 유럽연합(EU)의회가 지난해 말 이미 전 세계에 제시했지만 그는 비정규직법 연기만을 주문했다. 선진화는 그의 단골 구호이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EU의 선진화 해법은 외면한 것이다.

EU 의회는 지난해 10월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동일 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직장에서의 인권보호 원칙을 법제화한 것이다. EU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으로 3년 이내에 취업 기간만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처우는 정규직과 동일한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 대통령은 우리의 비정규직법이 정규직으로 의무화 한 것은 EU의 관련 법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노동자의 인권신장조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정부의 호들갑은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의 태풍 속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디도스 공격 시작 직후 그 배후가 북한이라는 국정원 자료가 공개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국정원의 그런 발표에 대해 정보보호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은 북한발 IP(인터넷 프로토콜)가 없기 때문에 기술적인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이 엉터리 자료를 낸 것이라고 만천하에 망신을 준 셈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태도는 대북 감정을 악화시키는 심리전의 하나라는 인상을 준다. 이 대통령이 EU 방문길에 ‘지난 10년간의 대북 지원은 북한의 핵무장을 도왔다’고 한 발언의 함축성은 국정원의 저돌적 대북 공세와 일맥상통한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일단 북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려는 복선이 그것이다. 국정원과 이 대통령의 그런 태도가 나온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단 된지 1년이 되는 금강산 관광과 현재 남북 간 협상이 진행 중인 개성공단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 고승우 논설실장  
 
청와대는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없으며 개성공단에 대한 북측 요구를 절대 들어주지 않겠다는 신호를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이 대통령이 방문한 EU의 현주소는 경제통합을 통해 세계 1,2차 대전과 같은 참극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노력이 거둔 결실이다. 이 대통령이 EU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성과 합리성을 배웠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노 전 대통령이 6·15선언의 실천 방안으로 북측과 합의한 10·4선언이 남북경제공동체의 청사진이 아닌가?

이 대통령의 EU 방문에 즈음해 국가인권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정권은 유한하지만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로써 현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EU 방문 과정에서 인권 선진국으로 존경받던 한국의 인권이 후퇴한 점과 EU 통합이 남북간 경제공동체 조성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4대 강 살리기에 수십 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대신 사이버 테러 방지 등 IT 산업 선진화로 정책 전환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