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훈 조선 사장 “방송 하면 빨리 죽을 것”

미디어오늘은 한국 신문업계가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 700호부터 ‘한국 신문, 내일을 말하다’ 기획을 시작했다. 이번회는 조선 중앙 동아 등이 신문산업 위기 극복의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뉴스방송 겸영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현재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관계법 가운데 신문·방송법의 핵심 조항은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허용이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언론시민사회단체는 그동안 조선 중앙 동아 등 신문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신문사가 방송 시장에까지 진출할 경우 군소매체나 지역언론의 존립을 위협해 여론을 독과점하는 양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반면, 신문-방송의 교차소유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종매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만이 사양세를 걷고 있는 신문산업의 활로를 터주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신문사, 보도 제외한 유료방송 시장서 ‘마이너스’ 행보=신문사들은 보도전문채널이나 보도 기능이 포함된 종합편성채널을 제외한 유료방송에는 이미 진출이 가능하다.

신문사 가운데 유료방송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중앙일보다. 중앙은 지난 1995년 케이블TV 개국과 함께 제일기획이 런칭한 Q채널을 99년 인수, ‘중앙방송’을 설립했다.

2005년 J골프, 2006년 카툰네트워크 코리아 등의 채널을 잇달아 런칭한 중앙은 올해 방송 사업 부문에 대한 정비 작업에 들어가 교양·다큐멘터리 채널인 Q채널을 분사시켜 일간스포츠 제작사인 ISplus의 방송 부문으로 옮겼다. 중앙은 Q채널의 이름도 QTV로 바꾸고 담당 분야도 엔터테인먼트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QTV는 터너사로부터 49%의 지분을 출자받았다.

   
   
 

조선일보도 자회사인 디지틀조선일보를 통해 지난 2006년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비스니스앤’을 방송위원회(현재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승인받았다. 이 외에 ㈜헤럴드미디어의 최대주주인 ㈜카리아가 지난해 여성 콘텐츠 전문 케이블방송채널인 ㈜동아TV를 인수했고, 머니투데이는 MTN을, 서울경제는 서울경제TV를, 국민일보는 쿠키TV를, 이데일리는 이데일리TV 등을 잇달아 개국했다. 이 외에 매일경제가 대주주인 보도채널 MBN, 한국경제가 대주주인 한국경제TV 등이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2007년 휴먼TV 주식 30%를 인수해 ‘석세스TV’를 재개국했지만 서울경제TV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지난 4월 석세스TV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신문사들이 개국한 케이블TV는 MBN과 QTV를 제외하면 대체로 정보 채널이다. 신문사가 연예나 오락, 드라마 채널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비와 인력,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PP가 대부분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케이블TV의 장르별 점유율은 연예·오락이 24.2%로 가장 높았고 드라마 20.2%, 영화 15.2%, 어린이 10%, 뉴스 10%, 스포츠 8.3%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200여 개의 PP 가운데 수익이 나는 PP는 10%도 안 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인데, 주로 지상파방송사의 자회사나 영화·어린이 혹은 일부 스포츠 채널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문사가 겸영하는 PP가 케이블 채널별 시청 순위 30위권 내에 들어가는 경우는 선발 주자인 MBN과 한국경제TV를 제외하면 없다.

케이블업계의 광고 시장도 신문업계에 비해 낙관할 수준은 아니다. 전체 TV 광고비에서 케이블TV가 차지한 광고비 점유율은 2002년 8.8%에서 2007년 28.2%로 급증했다. 그동안 매년 20% 이상 급성장해 왔던 케이블TV 광고업계지만 지난해에는 그 규모가 86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대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초래한 세계 경제 위기로 국내 광고시장은 물론 방송 시장규모도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통신사업자의 IPTV, 지상파사업자의 MMS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고 이용료는 낮은 데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방송 진출을 희망하는 일부 신문들이 MMS와 IPTV, 케이블PP 등을 놓고 고민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값싼 외국 프로 들여오고 고용 창출 효과도 없을 것=문종대 동의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지난 1월 미디어행동과 민주당이 주최한 정책간담회에서 신방 겸영에 대한 산업화 논리에 대해 “신문사의 경우 대기업과의 컨소시엄 형태로 지상파 또는 종합편성 방송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실현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신문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방송사의 교차소유로 인한 일자리 창출은 인수합병의 경우 신문사와 방송사를 한 건물에 입주시키고 취재 내용을 공유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대신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도 높아 일자리 창출은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콘텐츠의 품질에 있어서도 최대한 저비용으로 콘텐츠 생산을 꾀할 신문사가 시간과 노력, 노하우 등이 필요한 방송 콘텐츠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특히 케이블TV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질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을 맞춰야 할 신문사가 공익 프로그램제작에 자본과 인력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신문사 관계자는 “돈, 시간, 사람 등을 꾸준히 투자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는 우선 외국의 값싼 프로그램을 들여오는 것이 경제 논리상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며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콘텐츠 품질 경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시청률 경쟁에서 밀릴 경우 광고수주를 위해 당장 선정적인 프로그램 제작이나 수입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케이블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도나 종편채널의 경우 사업성이 검증된 것도 아니고 초기 자본 투입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방통위가 채널을 허용한다 해도 누구든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결국 안정적으로 방송사업을 가져가려면 점진적 투자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 경우 채널의 파급력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채널의 허용 여부보다는 일단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방송진출은 하나마나”라며 “방통위가 구체적으로 종편 채널 허용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사업자 입장에서 허가권을 따 놓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검토를 하겠지만, 지금까지 긍정적인 사업성 평가가 나온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신문사의 방송 진출과 관련,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지난달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방송을 안 하면 (신문사가) 천천히 죽고, 하면 빨리 죽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 사장은 미디어법이 통과될 경우 한국 신문이 지상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 봐야 자본력이 부족한 신문사가 방송 사업에 있어 주도권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종편과 관련해서는 주도권은 물론 수익을 낼 자신이 없다는 취지의 말과 함께 다른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 사장의 발언은 조선이 지면을 통해 미디어법 통과를 촉구해 온 것과 비교할 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험과 자본, 인력이 제한된 신문사가 방송 사업을 성공시키기가 쉽지 않고 사업성도 불투명하다는 현실 인식에는 거대 신문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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