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인정하되 콘텐츠 차별화해야”
“신문업계 의지부족이 위기 가속화”

한국 신문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신문의 신뢰도는 갈수록 하락하고, 국민들은 더 이상 신문을 사서 읽으려 하지 않는다. 광고주들은 광고 효과가 아닌 ‘다른’ 이유로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고, 기자들은 방송이나 다른 업계로의 탈출을 꿈꾼다.
신문산업 위기의 원인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서 찾는 이들이 있지만, 저널리즘에서 근본적 위기가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미디어오늘은 한국 신문업계가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 지령 700호를 맞아 ‘한국 신문, 내일을 말하다’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한국 신문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신문업계의 오늘을 진단해 보는 방담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주은수 미디어경영연구소 대표연구원과 김보협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 지부장 등 4명이 지난 25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한국 신문이 처한 위기의 현주소’를 주제로 방담을 나눴다.

   
   
 

   
  ▲ 김보협(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 지부장)  
김보협 = 신문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있었다. 신문의 본질은 현장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진실의 편에 서서 보도를 하는 것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조선·중앙·동아 등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내쫓기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언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들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문상을 온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한 자리에 문상객들이 취재에 응하지 않고 기자들에게 현장에서 나가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장례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 신문은 이미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일하는 언론사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그들의 취재를 거부한 것은 기자들에 대해 정부·여당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권력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같은 사안에 대해 보도할 때 어느 매체를 신뢰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신문의 신뢰도는 계속 추락세였고, 방송이 편파적이라는 대답이 역전된 지 오래다. 신문에 대해 국민들은 인터넷보다 신뢰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가 됐는데, 그 책임은 이번에 취재를 거부당한 거대 신문사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매체 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조중동 독자들의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40% 정도 수준이었던 반면, 한겨레나 경향은 70% 이상 신뢰한다고 나와 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신문업계 전체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 주은수(미디어경영연구소 대표연구원)  
 
주은수 = 신문업계의 위기가 지금 상황에까지 처한 것은 신문업계가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구성을 보면, 신문 쪽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미디어위가 하는 논의의 중심이 방송뿐이다. 한나라당의 신문법 개정안에는 독소 조항이 많고, 언론지원기관 통폐합 문제도 예민하게 얽혀 있는데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신문업계에서도 관련 사안이 거론되지 않는 것 같다. 미디어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신문이 외면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업계는 스스로 해답을 구하기보다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다. 신문업계 종사자도 신문법 개정안의 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신문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권리 주장이나 요구가 간과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한국신문협회의 문제도 크다. 그동안 기득권 신문사들의 이익단체로 역할해오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 신문협회는 법정 기구인 신문발전위원회와 함께 신문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목소리를 내야하고 신문의 사명, 신문의 미래를 연구함으로써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용성 = 신문의 위기가 얘기된 지 여러 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신뢰도의 추락이라고 본다. 문제는 조중동 등 거대 신문이 정치적 편향성으로 신뢰도가 추락한 것이 여타 신문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신문을 잘 읽지 않는 분위기와 연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 해결을 위해 일개 신문이 노력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문이 스스로 정상궤도를 찾기 어렵다면 신문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감안해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신문에 대한 신뢰나 지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잘 안 되고 있다. 이는 정치적 파당성이나 자사이기주의 때문에 신문업계가 갈등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 신문업계의 위기에 대해 종사자들 스스로 자조적 분위기에 갇혀 있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 노력이 없다. 이는 신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업계에서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신문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같은 사회에 종이신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신문인들 스스로 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설득이 어렵다는 뜻이고, 그 답을 모르니 어떻게든 회사 차원의 경영 위기로 일축해버리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신문의 위기를 신문‘사’의 위기로만 환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책적 지원 방법을 고민할 때도 ‘신문’이 아니라 신문‘사’를 살리는 방법으로 나타나고,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신문업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당장의 신문사 생존을 위해 요구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신문 방송의 겸영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신문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못 찾기 때문에 나온 비본질적인 대책이다.
지금 업계를 보면, 위기라는 말이 사치일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일반인은 신문산업의 어려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신문사들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겉으로 그럴듯하게 치장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문사들이 스스로 어떤 위기에 처해 있고, 대안 모색을 위해 무엇이 걸림돌인지 사회적으로 솔직히  얘기해야 할 때다. 특히 독자들이 경품이나 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전단지 숫자가 아니라 내용으로 신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차별화가 시급하다. 이는 신문사들의 마케팅 활동이 경품 중심으로 이뤄지는 현실을  당장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와도 상통한다. ‘지난 번 무슨 기사 보셨죠? 그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가 아니라 ‘저희 신문 보시면 경품 얼마치를 드립니다’로 판촉하는 것은 신문 경영 차원에서 큰 문제다.

   
  ▲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용성 = 신문 시장이 정상화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저널리즘의 신뢰성을 떠나 신문이 하나의 상품으로 가치가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문을 내용으로 평가하지 않다 보니 경품 등 다른 조건에 따라 선택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문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구독료 인상이 제기되고 있지만, 실천이 어려운 현실이다. 일그러진 판매 과정이 신문의 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보협 = 신문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가운데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웬만하면 할 수 있는데 점점 어려워지는 게 자본 권력의 독립이다. 한 종합지의 오너가 데스크를 보고 있는 산업부장을 향해 “영업 안 나가고 왜 앉아 있느냐”라고 채근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산업부가 광고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감시·감독 기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것은 신문사들이 경영이 어려워져 제대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그동안 상당히 정화된 촌지나 광고영업 등의 관행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주은수 = 신문업계가 꾀하는 여러 변화가 저널리즘이나 미디어로서의 사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비용을 절감하거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돈 놓고 돈 먹기’ 경쟁으로 천박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신문사들은 이 과정에서 공동의 컨센서스를 이뤄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이런 행태에 독자들도 식상해져가고 있다.

이용성 = 신문업계 위기가 논의될 때 무료신문 얘기가 많이 나왔다. 신문사들은 시민들이 무료신문을 읽으면 장차 유료 신문도 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그런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신문 읽기로 넘어갈 수 있는 교육은 독서 정도에서 가능할 뿐이다.

김서중 = 신문의 위기를 풀려면 신문이 독서를 장려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의 축이 신문에서 방송이나 인터넷 등으로 움직이는 상황인데,  기존의 축을 유지하려면 다른 축도 유지돼야 한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신문의 경우 다른 매체에 비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국민들이 내용의 차별을 느끼면서 유료 독자가 늘어난다. 하지만 현실은 무가지와 유가지, 권위지와 대중지, 사설과 칼럼 등에서 전혀 차별화가 안 되고 있다. 포털에서 어떤 기사를 볼 때 독자가 ‘이것은   ○○신문 기사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특정 매체의 브랜드가 상표화돼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김보협 = 신문 시장의 기형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거나 신문고시 위반에 대해 단속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신문 시장에서의 경찰 역할을 공정위가 포기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수공사기구인 ABC협회에 가입해 발행부수공사를 받는 신문에만 정부광고를 준다고 한다. ABC협회가 그동안 이른바 ‘힘센’ 보수 신문사의 입맛에 맞게 부수공사를 해 온 게 드러났음에도 정부가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관에 부수공사를 위탁해 버리고 정부광고를 주겠다는 것은 코드가 맞는 일부 신문에만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정말 신문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지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주은수 = 신문의 위기는 산업의 위기와 경영의 위기로 나눠볼 수 있다. 이것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IMF 이후 10년 동안 기업공시를 한 신문사를 중심으로 경영 분석 추이를 보면, 99년 2조5000억 원 정도이던 신문 매출이 지난해 2조2000억 원으로 줄었는데 이들 신문의 부채가 1조9000억 원으로 매출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는 신문이 산업으로서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은 산업의 위기이지 경영의 위기는 아니다. 34개 신문사의 경영 추이를 살펴볼 때 3분의 1 정도는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나 서울신문 등 기존 신문들의 매출액이 크게 떨어진 반면 문화일보나 국민일보 등 신생지들의 실적이 크게 올랐음에도 기존 신문의 하락폭이 워낙 크다보니 신문산업 전체적으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문산업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고, 그 배경에는 환경적 원인이 있기 때문에 외부(신문위나 신문협회 차원)에서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경영 차원에서 접근하면, 잘 되는 신문사는 잘 되도록 하고 안 되는 신문은 퇴출시키는 방법을 쓸 필요가 있다.

김서중 = 지원이 필요한 만큼 신문산업이 어렵다면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 동의한다. 문제는 자칫 의도하지 않게 정부의 개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신문들은 대부분 충성독자층이 약하다. 일부에서는 한국 신문의 경향성이나 정파성을 문제삼지만,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문이 경향성이나 정파성을 띠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야 충성독자층을 만들 수 있다. 다만, 한국 신문은 경향성이나 정파성이 일관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호·불호가 지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충성독자층이 없는 것이다.

김보협 = 차별화된 콘텐츠와 매체 브랜드를 잃으면 신문사로서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데 동의한다. 여론 상품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다양한 신문사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동의가 있다면, 왜곡된 신문시장의 특성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신문에 정부가 직접 지원하기는 어려우니 신문이 아니라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독자를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누군가 나서 옥석을 가리겠다고 하는 순간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으니 신문이나 잡지, 서적 구입비 등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세제 혜택을 줘서 인쇄·출판 산업 전체를 진흥시키고, 이 속에서 신문사들이 숨통을 틔워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지지 않을까 한다.

주은수 = 일본신문협회는 신문사의 모든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업계의 공동 이익을 위해 교류하고 있다. 이 모델을 신문위와 신문협회가 벤치마킹해야 하지 않을까. 신문사들도 지면 차별화, 시장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서중 = 최근 10년 사이 신문사들이 대립과 갈등을 겪었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존재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신문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신문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신문이라는 매체 자체가 사라질 위기 상황인 만큼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협력해야 할 부분은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신문 매체로서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신문의 품질 향상을 위기 타개책의 핵심으로 삼아야 하며, 신문업계와 언론학계가 모여 신문이 왜 필요한지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은수 = 신문사, 법정 기구인 신문위, 임의 단체인 신문협회, 언론학자 등이 모여 신문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신문의 진흥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논의하고 사회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

김보협 =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최근 프랑스에서 신방 겸영을 추진하려다 신문사에 대한 공적 지원을 하기로 결론을 내린 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언론과 관련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접근했던 정책은 모든 게 망가졌다. 현재 언론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정부가 진정으로 신문과 방송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개정안을 포기하고 현업인, 국민들과 토론부터 하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