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참여연대와 공동기획으로 진행하고 있는 "경제는 민주주의다" 마지막 순서입니다. 지금까지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정책대학원 교수와 장상환 경상대학교 교수,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에 이어 마지막으로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심 전 대표의 강연은 오는 11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미디어오늘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진보정당이 국민들에게 실현가능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고 진보신당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심 전 대표는 진보정당이 관념에서 현실로 내려와야 하고 노동자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와 지지를 확보해 일상적인 정치활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비전과 실천, 그리고 정치 재편을 통한 세력 결집과 대안 야당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 조승수 의원의 당선은 분명히 고무적인 사건이지만 근본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 가난한 사람들, 심지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고 보나.
"추상적인 구호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약속에 의지하기에는 당장 현실이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개는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투표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집권 세력의 실현 가능성 있는 공약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구체적인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전도 좋지만 이제 그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모범을 창출해야 하고 성취의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치와 생활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 모범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지역정치? 생활정치는 또 뭔가. 역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은 없나.
"브라질의 루이스 룰라 대통령도 지역에서 출발했다. 기존 정치에서 볼 수 없는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소수정당이었지만 지역에서 탄탄한 지지기반을 쌓았다. 국민들은 이 사람들에게 정권을 주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줬다. 우리나라 같으면 우선 교육과 의료, 복지분야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 시절을 돌아보면 대중의 지지기반에 뿌리를 둔 일상적인 정치보다는 정책을 나열하고 적당히 관심을 끌기 위해 이벤트에 그쳤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집권세력이 아니면서 교육을 개혁하는 일이 가능한가. 결국 어떻게 해야 좋은 대학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가 대중의 관심사인데.
"'작은 학교 운동'이라는 걸 준비하고 있다. 교육의 시장화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사교육 시장에서 배제된 학생들을 모아 야학 같은 걸 해볼 수도 있다. 한 반에 5명씩이면 한 학교에 300명이 된다. 이 작은 학교를 진보운동의 거점으로 만들 생각이다. 교육을 중심에 두고 대안을 모색하고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추동하는 새로운 실험이 될 거라고 본다."

- 대학생들 등록금 투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유가 뭔가.

"관심은 있지만 재보궐 선거 때문에 사실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했다. 국회에 의석이 없다 보니까 활동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학 등록금을 깎고 정부 지원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학교의 거버넌스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교가 영리기업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공적기관에 맞는 거버넌스와 운영방식이 필요하다."

-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구조조정의 압력이 거세다. 왜 정치의 실패와 경영의 실패, 그 책임을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안 할 수도 없고. 어떤 다른 대안이 있나.

"구조조정은 필요한데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면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경영의 실패는 물론이고 금융회사들과 감독기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개별 기업의 위기극복 차원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큰 그림을 그리고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 국가 경쟁력 확보 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부 기업들은 부분적으로나 잠정적으로 국유화를 검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 위기의 한 원인으로 금융회사들의 투기적 행태가 거론된다. 은행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방법이 있나. 이를테면 중소기업이나 서민대출을 늘리라고 강제할 수 있나.

"은행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정부가 자금 지원을 할 때 중소기업 대출 한도 등의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는 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돈만 집어넣고 끝내지 말고 사회적 책임의 유인을 제공하라는 이야기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은행 지분을 꾸준히 늘려가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당장 철회돼야 하고 우리은행 역시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을 더욱 강화한 특수 은행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마을금고나 상호저축은행 등의 서민금융기관을 키울 필요도 있다. 은행들이 수익의 일부를 마이크로 크레딧, 무담보 소액 신용 대출로 돌리도록 권고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 민주노동당 시절 반값 아파트 공약을 내걸었는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부동산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있고 반값 아파트는 요원해 보인다.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은 없나.

"반값 아파트는 여전히 충분히 현실적인 대안이다. 일단은 공공임대 주택을 선진국 수준인 30%까지 높여야 하고 정부 주도로 반값 아파트를 대량 공급해서 가격을 낮춰야 한다. 필요하다면 증세도 검토해야 하고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 서비스 재원으로 동원할 수도 있다. 채권 수익률 이상을 보장해 주면 된다. 이밖에도 후분양 제도를 일반화하고 원가 공개를 의무화하고 건설업체들의 폭리구조와 대중의 투기적 욕망을 해결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집권 세력의 정책 의지다.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정치적 압박이다."

- 사실 대중에게는 확신이 없다.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도 보수양당 가운데 어느 한쪽이 집권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가격은 다시 뛰어오르는 분위기고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성취의 경험이 아니라 패배의 경험과 무력감만 계속 쌓이고 있다.

"일단 전략적으로 의료보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보신당은 힘이 부족하고 민주노총의 참여를 전제로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의 복지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재원을 어떻게 확충할 것이냐가 과제로 남지만 한번 무상의료를 경험하게 되면 변화의 열망이 더욱 거세질 거라고 본다. 무상교육, 무상보육은 왜 안 되나, 이런 문제의식도 생겨날 거고, 정부가 주거의 권리,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압박도 생겨날 것이다."

- 영미식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은 뭐가 있을까. 한때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유행했지만 사실 스웨덴도 신자유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복지수준도 급격히 축소되는 분위기다. 이미 장벽은 무너지고 있고 사다리는 사라지고 없다. 이제 와서 사다리를 다시 놓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경쟁력을 확충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만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내걸었던 세 박자 경제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데 핵심은 풀뿌리 지역 경제의 복원하고 그 위에 공공성을 강화하는 네트워크 산업을 두고 시장의 조절과 통제를 강화하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호혜성과 공공성, 공정성의 결합을 말한다.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구호를 넘어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 확충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 규제 일변도로 가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 지난해 100만 명이 촛불을 들었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변화의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촛불이 실패했던 건 불만과 분노를 쏟아내는데 그쳤을 뿐 정치 세력화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비전을 내걸고 이를 실천할 정치세력의 결집이 필요하다. 정계재편이 아니라 정치재편이 돼야 한다. 상층부의 인물 몇 명이 바뀌는 걸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정치적 전망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규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정환 기자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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