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검찰의 일방적인 불만을 대변하는 보도를 했다. 2009년 4월 16일자 조선일보 홈페이지 조선닷컴 <김보슬 PD, 결혼 앞두고 의도적으로 자진체포? >제하의 기사를 보면, 마치 김보슬 PD가 결혼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체포된 것인양 보도했다. 그것도 검찰의 일방적 추측을 그대로 전했다. 파렴치범도 흉악범도 아닌데 인생 최대행사로 불리는 결혼을 눈앞에 두고 체포된 것도 통탄할 일인데, 체포한 검찰의 정치적 해석을 이렇게 버젓이 보도한다는 것은 저널리즘의 윤리와 보도준칙 차원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의 이 기사는 첫 시작을 “결혼식을 나흘 앞두고 체포된 MBC 'PD수첩'의 김보슬(여·32) PD가 자진출두 대신 의도적으로 '체포'의 모양새를 취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검찰에서 흘러나왔다”로 시작했다. 검찰의 불만을 대변해주는 입장을 분명히 취했다. 공정해야 할 보도기사가 처음 시작부터 균형성을 잃고 있다.

이런 행태는 이후에 이어지는 기사내용의 대부분이 ‘검찰 관계자는’ ‘그는’ 등으로 검찰의 일방적 추측과 주장, 불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총 8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기사에서 김 PD의 입장을 반영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만 문단에서 인용한 김 PD의 '시사교양국에 전하는 글'에서조차 조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하다고 판단해서 일부만 끌어다 붙였다.

이런 행태의 기사는 전형적으로 반론권을 보장해주지않은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기사작성 행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단골로 걸려드는 기사작성 유형의 하나다. 신문사나 기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않았든 취재대상에게 불리하고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내용을 보도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반대입장을 기사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취재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부실한 취재로 기사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같은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표현의 자유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타언론사 PD에 대해 인간적 동정심까지는 기대하지않더라도 최소한의 취재보도 준칙 준수는 강조돼야 한다. 무엇보다 검찰의 불만까지 이렇게 기사화할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수사기관 검찰이 결혼을 불과 나흘 앞두고 이렇게 체포한데 대해 그렇게까지 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었는가에 대한 당연한 물음 정도는 나올 법 한 것이 아닌가. 그 대상이 PD든 일반 기자든 누구든. 더구나 검찰은 그 대상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수사하는 일만 남은 것인데, 취재의 초점은 당연히 그 수사과정의 정당성, 법 적용의 형평성, 공정성 등에 맞춰줘야 한다.

조선이 왜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고 상대적 약자의 입장에 처한 피의자 신분의 인권을 이렇게 무시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만약 조선일보의 기자가 특정 기사보도로 인해 결혼식을 눈앞에 두고 검찰에 긴급체포됐을 때도 이런 식의 검찰 대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보라. 수사기관에 체포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더구나 여전히 논란 중에 있는 ‘미국산 쇠고기 보도’건에 대해 이런 식으로 체포돼야 한다면 기자든 피디든 앞으로 제대로 언론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검찰은 입이 아닌 수사로 말해야 한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수사과정의 불법, 부당사항도 아닌 검찰의 불만을 추측보도로 내보내는 언론사는 과잉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그것도 언론윤리강령에 명시된 반론권 보장조차 위반하면서 행하는 일방적 보도행태는 한국 저널리즘의 퇴행을 의미한다. 나아가 한국언론 자유에 심각한 위축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취재원이 모호한 ‘검찰 관계자’ ‘그는’ 등의 말을 인용해서 ‘의도적 자진체포’라고 제목을 달고 기사내용에도 그렇게 전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보도행태다. 설혹 당사자가 의도적으로 자진체포를 원했다면 여기에는 필유곡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취재 보도해야 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검찰의 불만까지 시시콜콜하게 전달하는 것은 검찰 대변지에서나 할 일이다.

   
   
 
기자와 조선일보에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이 기사의 뉴스 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보도준칙을 제대로 지켰다고 믿고 있는지. 조선일보같은 대형언론사의 품격과 위상에 걸맞다고 판단하는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보도대상이 된 김 PD나 이런 보도를 하는 기자, 그리고 조선일보와도 나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 그러나 언론현상을 연구하는 언론학자의 입장에서 이런 일방적으로 사회적 강자의 편을 들어 부당하게 약자를 괴롭히는 기자나 언론사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막강한 언론사로부터 약자를 지키고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는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쓰러진 약자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망정 밟고 지나가는 비정한 언론의 횡포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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