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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인터뷰]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새편집인

   
   
 
대립과 갈등이 점차 격화되는 시대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을 뜻하는 프랑스의 ‘똘레랑스’의 철학을 국내에 소개해 널리 알려진 칼럼리스트이자 언론인인 홍세화(62·사진)씨가 4월부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의 새 편집인으로 선임됐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프랑스의 권위지인 르몽드가 발행하는 월간지로 국제 문제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와 노엄 촘스키, 부르디외 등 세계 석학들의 담론을 다뤄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지식인층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는 시사지다.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해온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가리켜 ‘세계의 창’이라고 부르는 등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월간지는 유럽을 포함해 세계 73개국에서 26개 언어로 발행되며 200여 만부 정도가 팔릴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지난 2006년 한국판이 발행되기 시작했지만 구독자 확보에 실패해 2년도 채 못 돼 정간되는 수난까지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복간됐고 최근 한겨레와의 제휴를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판 편집인이 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국내 지식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한국판 창간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지성을 성장시키는 도서관에 비유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애당초 국제 관계를 다루는 성격으로 시작됐지만 이후에는 점차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가치와 담론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프랑스 망명 시절에 열심히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린 세계적인 석학들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래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종종 영화 ‘매트릭스’에 빗대 설명한다. ‘매트릭스’는 기계들이 인간을 건전지처럼 사용하기 위해 세상을 거짓으로 꾸며놓은 매트릭스에서 통제를 받고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자신이 전부라고 믿었던 세상에 대한 실체를 깨닫게 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진실에 눈감고 거짓된 삶을 유지해 주는 ‘파란 약’과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빨간 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는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바로 영화 속의 ‘빨간 약’이라는 것이다.

“최근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가 그 본거지인 미국과 영국에서 비판받고 부정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이 사실에 둔감합니다. 오히려 성세를 누리고 있지요. 이것은 한미 동맹이나 영어 등을 매개로 미국 유학파의 대부분을 비롯한 미국 추종 세력이 정·관료계뿐만 아니라 지적 담론과 여론 형성의 장인 대학과 언론에서도 주류를 차지하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체제의 중심부에서 주류담론이나 가치관이 바뀔 때에도 주변부에서 지체 현상을 보이는 것은 대개 그런 연유에서 비롯됩니다. ‘대안적 가치’를 주장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우리에게 유일사상의 매트릭스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그는 한국사회를 성찰이 턱없이 부족한 사회라고 지적하면서 진보진영의 정체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비판을 했다. 진보를 내세우는 노동단체나 운동가들조차 내면 깊숙히 들어와 있는 신자유주의를 인식하지 못하고 모순된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마치 외부에서 밀려들어오는 것으로만 파악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극복하고 싸워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어요.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외부의 신자유주의와 싸우려고만 했지 우리 삶 속에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파고들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부족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낙후된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대다수가 하루에 자신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40킬로미터를 오가더라도 대도시에 거주하기를 원합니다. 노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분리통치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노조가 대기업 중심, 관료적, 남성중심적인 성향을 띠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의 개별 문제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에서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노동자로서의 가치관도 부족하고 자본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성찰도 부족한 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인을 수락한 배경에는 이러한 현실인식도 자리잡고 있다. 이 잡지가 거짓된 삶을 돌아보고 내면을 성찰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가 모든 걸 장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경제가 국가마저 지배합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방향은 사회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경제나 국가가 포함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이 대안적인 가치를 전파하는 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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