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하려는 침해 행위가 광범위한 데다 정의가 모호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은 '사이버모욕죄'를 성급히 도입하기보다는, 인터넷상 집단 괴롭힘 등 구체적 침해 행위를 명확한 규정으로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 우선 시행해볼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미국 인디애나대 이향선 박사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한국언론법학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 주최한 '인터넷상 허위사실의 유포와 표현의 자유'란 주제의 세미나 발제를 통해 "입법 후 문제가 드러나면 수정하기도 어렵고 그 폐해도 막대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해 신중히 입법해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 박사는 한나라당이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와 별도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신설하려 하는 사이버모욕죄 조항의 경우, '모욕'에 대한 정의가 전혀 내려져 있지 않아 범죄 구성요건이 불명확한 데다, 모욕죄 자체가 전통적으로 국가 원수나 왕족 등에 대한 비방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졌던 배경 탓에 현재 일부 전제 국가에서만 정치적 억압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만큼 그대로 도입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속하고 쉬운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 모욕죄와 사이버모욕죄 간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며 "차라리 모욕이란 개념의 광범위성과 모호성, (반의사불벌죄 규정에 따른) 신고와 분쟁의 수월함 등을 볼 때 현재 발의된 사이버모욕죄가 도입되면 수많은 분쟁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기존 모욕죄론 처벌이 어려우면서도 그 피해가 새로운 입법을 통해서라도 규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겨냥해 한층 더 초점이 잘 맞춰진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 시행 중인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인터넷상 집단 괴롭힘)' 관련법들을 참조할 만한 사례로 들었다.

이 교수는 "이 법은 같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벌어지는 집단 괴롭힘으로 피해를 입은 초·중등학생을 구제하고 경찰과 학교, 사회봉사 조직 간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학생들의 인터넷 이용 문화를 개선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면서 "목적과 대상의 범위, 침해 행위의 구성 요건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데다 처벌보다 교육을 통한 학생 선도에 주안점을 뒀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누리꾼 '미네르바'의 구속 사유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 '허위사실유포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 설비를 이용해 공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면'이란 간단한 문장으로 이뤄진 모호하고 포괄적인 조항은 보호받는 표현과 그렇지 못한 표현 사이의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면서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자유로운 토론이 위축되고 위정자들이 '듣기 싫은 목소리'를 선별해 처벌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가한 법무부 형사법제과 김태우 검사는 "익명성과 폐해의 심각성, '퍼나르기'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전파성 및 지속성, 가해자 특정의 곤란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이버상 모욕 행위를 오프라인상 모욕 행위와 질적으로 같다고 보는 건 무리"라며 "형법상 모욕죄와 별도로 법정형을 약간 가중하고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 형식으로 사이버모욕죄를 처벌키 위한 특별 규정을 둔다 해도 과도한 입법이라 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 성낙인 서울대 교수  
 
또 "역사적으로 허위사실 유포의 처벌이 정적 타도 수단이나 독재정권에 의해 쓰인 점은 입법 과정에서 교훈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만 사법적 구제제도가 충분히 발달된 현대 민주사회에서 그런 이유만으로 허위사실 유포 처벌의 정당성을 부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앞서 기조발제자로 나선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 회장·사진)은 "아무리 선의의 법과 제도를 정립시키려 한다 하더라도 그 현실적 적용에서 공권력의 악의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법제의 정립엔 매우 신중한 접근과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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