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왔다. 처음엔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다음엔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가를 숙청했다. 나는 둘 다 아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다음에는 유대인을 잡아갔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다음엔 그들이 나에게 왔다. 그때는 이미 나를 위해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마틴 니묄로의 독백이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독재에 대한 침묵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화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음을 자책했던 말이다. 21세기 이른바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니묄로의 독백을 묵상한다.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정부 비판 프로그램을 제작한 문화방송(MBC) PD를 기습적으로 체포하고, 낙하산 사장 취임을 반대한 YTN 노조위원장을 구속하고, 비교육적인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용한 교사들을 파면하고, 사이버 공간에 입바른 소리를 한 인터넷 논객을 구속하고, 유모차를 끌고 촛불시위에 참가한 주부들을 경찰에서 오라 가라 하고, 인권을 감시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규모를 21%나 축소하고….

당연히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인권보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 탄압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뱅상 브로셀 ‘국경 없는 기자회’ 아시아담당 국장)
“지난 6개월 간의 양상을 보자면 언론이 보도한 것이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이 표적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분명히 우려할 만한 사건이다.”(노마 강 무이코 국제사면위원회 동아시아담당 조사관)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을 대폭 감축하고 구조를 변경하려는 계획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 계획은 인권의 증진에 있어서 아태지역 지도자로서 갖는 대한민국의 명성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탄 스리 아부 타립 오트만 아태국가인권기구포럼 의장)

독재와 부패는 언제나 단짝이다. 이제 집권 2년차로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벌써부터 이를 입증하기 시작했다. 전·현직 청와대 행정관 3명이 케이블텔레비전 업계 관계자로부터 향응과 성 접대를 받은 사건은 이명박 정권이 떡잎부터 썩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 야당 대변인이 성명서를 통해 야무지게 공박한 그대로 다시 한 번 묻는다. 모텔에서 적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마시술소였다고 왜 거짓말을 했나? 적발 당시에 촬영한 동영상을 경찰이 갖고 있으면서도 왜 증거가 없다고 했나? 청와대행정관에게 업무와 관련된 성로비를 한 사건이 어떻게 단순한 성매매사건인가? 하긴 독재의 또 다른 단짝은 거짓말이다. 거짓말하는 건 누구한테 배웠는지!

꽃향기 가득해야할 춘삼월 대한민국에 구린내, 지린내, 썩은 내가 코를 찌른다. 검찰과 경찰이 박연차 리스트, 장자연 리스트 등 오물로 가득한 쓰레기통, 아니 똥통을 뒤집어엎으면서 풍겨나오는 악취다. 여야와 전·현 정권, 재계, 언론계, 연예계를 망라한 이 땅의 세도가들이 돈과 여자를 둘러싸고 얽히고 설킨 관계가 참으로 더럽고 복잡하다.

   
  박상주 논설위원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단순하다. 바로 '승자 독식'의 필연적 부작용들이 불거져 나오는 현상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자리와 돈, 심지어 성(性)까지 독식하려는 이 땅의 오랜 병폐가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곪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도덕군자를 자처하던 노무현 정권도 알고 보니 남들처럼 전리품을 두둑하게 챙긴 양상군자(梁上君子)였을 뿐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아직 초창기인데도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금품수수, 행정관들의 성 접대 등 추악한 비리사건들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승자 독식의 잔치판에서 너무 급하게 먹은 나머지 일찌감치 탈이 난 자들이다.
그들이 오고 있다. 기자와 PD를 잡아가고, 참교육자들을 교단에서 내쫓고, 노동운동을 핍박하고, 게다가 부패하기까지 한 그들이 오고 있다. 혹시 기자나 PD, 교사, 노동운동가가 아니라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난분분 진달래, 벚꽃 휘날리는 춘삼월에 ‘니묄로의 독백'을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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