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발의한 미디어관련법안 개정안은 지난 2004년과 2006년 당론으로 발의했던 신문관계법안 가운데 여론다양성 보장 측면에서 가장 퇴보한 안으로, 사회적 합의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이 19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중강의실에서 주최한 네 번째 쟁점토론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안,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이용성 한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번 한나라당의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가장 퇴보한 안'이라는 혹평과 함께 "민주적 여론형성의 기초인 여론다양성을 일거에 붕괴시킬 수 있는 문제적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 미디어공공성포럼이 19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중강의실에서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 법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신문법과 관련해 이용성 한서대 교수(오른쪽)가 발제를 맡았으며, 문종대 동의대 교수(왼쪽)가 토론자로 나섰다. 사회는 강상현 운영위원장(가운데)이 맡았다.  
 

"한나라당 미디어법안, 지금까지 발의했던 것 중 가장 퇴보한 안"

신문법과 관련해 발제를 맡은 이 교수는 "신문법은 신문산업의 위기와 신문저널리즘의 위기, 신문다양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며 "특정 신문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신문법의 개폐가 논의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국회 논의과정에서 힘의 우위에 의해서 개정방향이 결정되기 보다 전문가들의 의견제시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개정돼야 할 것"이라며 합의과정을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 개정 움직임을 비판했다.

이 교수가 한나라당 신문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우려한 것은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일간신문과 방송의 겸영금지 조항(신문법 15조2항)이 전부 삭제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신문관계법안이 여론다양성 보장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신문시장점유율에 연동한 제한적 신문방송 겸영이나 소유(출자)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의된 신문법 개정안은 한나라당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최소한의 제한장치' 마저 포기하고 아예 겸영금지 조항을 삭제해 신문방송 겸영을 전면 허용시켰다.

이 교수는 "현실적으로 신문방송 겸영이나 교차소유가 가능한 사업자는 신문시장이나 방송시장의 과점사업자들"이라며 "이들이 겸영이나 교차소유를 하게 되면 단순한 여론지배력의 전이를 넘어서는 '융합' 현상으로 여론독과점과 획일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신문법 개정에 대해 △편집위원회 설치와 편집규약 의무규정화 △일간신문의 자료신고 및 검증제도 강화 △점유율 규제장치 마련 △신문방송 겸영 규제 강화 △신문발전기금 안정성 확보하기 위한 기금조성방식 모색 △신문발행부수나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신문발전기금 차등 지원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2010년까지 유지와 2016년까지 1회 시한연장 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자본 방송시장 유입, 방송이 대기업의 사업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 농후"

방송관계법과 관련해서도 대자본의 방송시장 유입으로 인해 자본의 지배력이 방송시장으로 급속히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방송관계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제를 맡은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부)는 "자산규모 10조 미만의 재벌이 49%의 지분을 갖고 지상파 방송에 진입 시 지상파 방송이 대기업의 사업과 사익의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난 1966년 동양TV와 라디오,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의 전신인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를 은폐하고 비호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사례를 들었다. 김 교수는 또, 1969년 동양방송이 조미료 원료를 불법 수입한 미풍과 미원과 관련해 계열기업인 제일제당의 미풍은 보도하지 않고 경쟁사인 미원의 혐의만 과장 보도한 일도 상기시켰다.

지난 2004년에는 SBS 최대주주인 태영이 하수정화 사업 계약을 따내기 위해 SBS에 '물은 생명이다'라는 캠페인과 하수 고발 보도를 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김 교수는 "해외의 주요 나라에서도 여론의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로 간주하고 있으며, 미디어의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차소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며 "독일처럼 언론에 대해서도 일정한 기준으로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소유제한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교차소유는 허용하지만 시청자 점유율 연평균 30% 이상의 사업자를 시장지배 사업자로 규정해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제한하고 있다. 영국도 전국지 시장 20% 이상 점유하는 신문사의 경우, 전국·지방 지상파 방송의 교차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TV방송사의 A등급 권역, 혹은 라디오방송사의 서비스 지역이 신문과 겹치는 경우 교차소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최근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 발의는 글로벌 미디어기업의 등장보다는 국내 여론시장을 편의적으로 조정하고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외국인들의 직·간접 투자에 대해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문종대 동의대 교수도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은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매몰된 측면이 있다"며 "재벌 중심의 미디어 시장으로 재편되면 언론이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도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 법안으로 인한 피해는 마이너 매체와 지역언론이 가장 클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법안 추진은 (현 정부를 지지한 언론에 대한) 정치적 보은, (정부를 비판한 언론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이버모욕죄, 현행 법으로도 보호 가능…조항 삭제해야"

인터넷 관계법의 문제점에 대해 발제를 맡은 황용석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이버모욕죄 신설과 관련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서 "명예훼손 법리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명예 또는 평판을 보호하는 반면, 모욕법리는 주관적인 명예감, 또는 체면만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인에 대한 모욕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이어 "(모욕으로 인한 피해는) 명예훼손 법리로 충분히 보호되며, 형법상 모욕죄로 충분함에도 인터넷상의 모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형법상 친고죄로 규정된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특정 이익집단과 국가권력에 의해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행위를 침해할 수 있는 우려가 커 삭제해야 된다"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안 중 신문사와 대기업의 종합편성채널 최대 지분율을 49%에서 30%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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