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사장 체제의 첫 KBS 노동조합 최종 결선투표를 앞두고 선거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술직 조합원들을 상대로 KBS 경영진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해당 경영진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여지도 없다"며 부인했다.

지난 26일 끝난 1차 선거에서 낙선한 기호 2번 박종원 위원장 후보는 28일 오후 사내게시판(KOBIS)에 올린 글에서 김영해 기술본부장에 대해 팀장과 선임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관권'(사측개입)선거를 하고 있다고 폭로하며 선거개입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박종원 KBS 노조위원장 후보 "김영해 기술본부장 조직적 노조 선거개입"

   
  ▲ 지난 26일 끝난 12대 KBS 노동조합 정·부위원장 선거에서 기호 2번 위원장 후보로 출마했던 박종원 후보(유인물 맨 왼쪽). 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후보는 '존경하는 김영해 기술본부장께'라는 글에서 "이쯤에서 김영해 본부장께서는 노동조합 선거 개입을 중단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본부장의 선거 개입은 건강한 기술 조직을 분열시키고 정치집단화 되는 길로 어용 노동조합을 앞세워 KBS노동조합, KBS의 정체성과 고용안정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는 "지금 본부장께서 챙겨야 하실 현안은 '차질 없는 디지털 전환', '난시청 해소를 위한 기술 개발', '700㎒ 대역의 주파수 보호', 'MMS의 고도화', '디지털화에 대비한 기술 인력의 정예화', 'IPTV 등 뉴미디어 도입에 대비한 지상파 경쟁력 강화'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난제들"이라며 "군사 정부 시절에도 기술본부가 이렇게 획일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많은 기술인들이 본부장의 지시에 움직이고, 침묵하고 있는 많은 기술인들의 마음이 다 똑 같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본부장은 직위를 이용해 노동조합 선거에서 저에게 도움을 줄 후배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로 협박하고, 팀장과 선임들을 동원에 제작기술과 지역에 조직적인 관권선거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부장의 자리를 만들어 준 지금의 노동조합을 유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있다고 한다. 선임들을 지역에 보내 지역 선거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 "후배들 위협적 언사로 협박…팀장선임 동원 관권선거"

   
  ▲ 김영해 KBS 기술본부장. ⓒKBS  
 
박 후보는 "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는 기본적인 양식과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간곡하게 편지를 올린다"면서 "더 이상 기술조직과 노동조합과 KBS를 망치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어용노조 만들기를 중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 후보가 사내게시판에 올린 이 글은 곧 노동조합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삭제됐고, 보도본부 등에 퍼올린 글도 삭제됐으나 KBS 내부에서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노조위원장 적임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완곡하게 말할 수는 있어도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을 동원하고 지시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판단에 따라 글을 올리게 됐다"며 "팀장들이나 그에 의해 '기술쪽 위원장이 돼야 한다'는 말을 들은 조합원들을 통해 본부장의 선거개입 사실을 들었다. 선거 직전엔 나를 겨냥했으나 선거가 끝난 뒤 결선투표를 앞두고는 도를 넘었다고 판단이 된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생명인 기술인 집단에 이런 동원선거를 하게 되면 정치집단화하고, 그 후유증이 복원되기 어려운 지경으로까지 악화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영해 기술본부장은 전면 부인했다. 김 본부장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놓은 것으로 내가 노조 선거에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할 여지도 없다"며 "게다가 조합원들이 본부장의 말을 듣고 투표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김영해 기술본부장 "말도 안되는 얘기…송·중계소 방문은 격려위한 연례행사"

김 본부장은 또 "박 후보가 이번에 기술 조합원 표를 많이 획득한 것으로 아는데 자기에게 온 표를 어느 한 쪽으로 옮기게 하려는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려는 모양인데 구시대적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지방 송·중계소를 방문해 기호 1번 후보 투표를 독려했다는 사내 의혹과 관련해선 "기술 현안을 협의하고 동절기 준비를 당부하기 위해 연례적으로 격려차 하는 행사 차원이지 그런 언급을 일체 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기술본부의 김아무개 팀장은 '지난 24일 1차 투표가 개시되기 전에 팀원들을 대상으로 기술위원장이 돼야 한다는 독려를 했다'는 사내 의혹에 대해 "팀장으로서 조합원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입장도 안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부인하면서 "설령 그런 말 했다고 해도 찍는 사람이 달라지겠느냐. 그런 걸 어떻게 물어볼 수가 있느냐"고 답했다.

다음은 박종원 후보가 28일 오후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이다.

존경하는 김영해 기술본부장께

날씨가 쌀쌀해졌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복잡하고 변화하는 기술의 현안을 챙기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남산에 발령받는 날 저녁에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선거에 본부장께서 관심이 많다고 많은 분들이 전합니다. 제가 당선이 되면 기술본부장의 자리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본부장이 누구냐는 관심보다, 분열되고 고립된 노동조합으로서는 구조조정과 수신료 인상을 돌파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출마를 했었습니다. 본부장이 누구인가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본부장께서는 지금의 본부장 자리를 만들어 준 노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되실 겁니다. 사장을 비롯한 기술본부장은 생존의 차원에서 노동조합 선거에 관심을 많이 가시고 계실거구요.

이번 KBS 노동조합 선거를 내외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건강성이 살아있는 노동조합이 되느냐?, 단절된 외부 연대를 복원할 수 있는냐?, 제작 아웃소싱과 2TV 분리를 비롯한 방송구조 개편과 구조조정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

이쯤에서 김영해 본부장께서는 노동조합 선거 개입을 중단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방송기술인협회장을 지낸 후배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가 노동조합위원장이 되지 않아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선거개입은 기술조직의 건강성을 망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술은 창의적인 발상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조직으로 어우러질 때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본부장의 선거 개입은 건강한 기술 조직을 분열시키고 정치집단화 되는 길로 만들 것입니다. 또한 어용 노동조합을 앞세워 KBS노동조합, KBS의 정체성과 고용안정을 해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본부장께서 챙겨야 하실 현안은 ‘차질 없는 디지털 전환’, ‘난시청 해소를 위한 기술 개발’, ‘700㎒ 대역의 주파수 보호’, ‘MMS의 고도화’, ‘디지털화에 대비한 기술 인력의 정예화’, IP-TV 등 뉴미디어 도입에 대비한 지상파 경쟁력 강화‘ 등 하나같이 쉽지 않는 난제들입니다.

군사 정부 시절에도 기술본부가 이렇게 획일적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기술인들이 본부장의 지시에 움직이고 침묵하고 있는 많은 기술인들의 마음이 다 똑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본부장께서는 직위를 이용해 노동조합 선거에서 저에게 도움을 줄 후배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로 협박하고, 팀장과 선임들을 동원에 제작기술과 지역에 조직적인 관권선거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본부장의 자리를 만들어 준 지금의 노동조합을 유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있다고 합니다. 선임들을 지역에 보내 지역 선거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설마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저는 방송기술인들의 건강한 양식을 믿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는 기본적인 양식과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간곡하게 편지를 올립니다.

더 이상 기술조직과 노동조합과 KBS를 망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당장 조직적인 관권선거 운동을 중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용노조 만들기를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선거후 편하게 소주한잔 하시지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