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양휘부·KOBACO)가 방송광고 판매대행을 독점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의 정신을 경쟁과 효율에만 맞춰 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27일 오후 민영 방송광고판매대행사인 T사가 "KOBACO와 이로부터 출자를 받은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에 대해서만 지상파광고판매대행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옛 방송법 73조 5항, 옛 방송법시행령 59조 3항 등이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

   
  ▲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전경. ⓒ연합뉴스  
 
헌법재판관 6명 방송광고 독점 법률·시행령 위헌 선언…2009년 12월까지 법개정 지시

9명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의 재판관 6명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고, 나머지 3명의 재판관 가운데 이공현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을, 조대현 재판관은 '전부 위헌' 의견을, 이동흡 재판관은 방송법시행령규정에 대해서만 위헌을 선언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관 6인은 KOBACO 뿐 아니라 공사가 출자한 회사의 경우에도 지상파광고판매대행을 할 수 있도록 돼있으나 지난 2000년 이후 공사가 출자한 회사는 한 곳도 없어 독점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특정 주체에게만 판매대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면서 △일정 요건 조직 시설을 갖춘 업체 허가제 △중소방송국만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 허가제 △특정 장르 및 시청자 대상 쿼터제 등 여러 방법을 외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는 기본권 침해의 최소침해성 원칙을 위반하고 있으며,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규정했다.

이들은 또 "방송법 73조 5항 등은 민영 방송광고 판매대행사는 사적 이익만을 위해 설립된 회사라고 단정하고 공사와 이로부터 출자받은 회사에만 판매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해 차별목적과 수단 사이의 비례성을 상실했다"며 "따라서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이공현 재판관 '단순위헌'·조대현 '전부위헌'·이동흡 '각하해야'

이에 따라 이들은 "옛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의 해당 조항, 개정된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 규정에 대해서도 위헌을 선언하기로 한다"며 늦어도 2009년 12월31일까지는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재판관들 내에서도 이견이 제기됐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공현 재판관은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해야 할 사유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민영방송 판매대행업자의 증가나 그들간 상호 경쟁 등이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훼손하고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생각되지 않아 '단순위헌'을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동흡 재판관은 "해당 법률 조항이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의 허용범위를 공사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광고판매대행사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법률 자체가 청구인에 대해 직접적인 자유의 제한 또는 권리나 법적 지위의 박탈을 가져오지 않아 청구인의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며 "각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재판관은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의 허용 범위를 '공사가 출자한 회사'로 한정한 방송법시행령 조항에 대해서는 "과잉금지원칙 수단의 적합성, 법적 균형성을 위반해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했다"면서도 "그 위헌성의 심사 방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조대현 재판관은 되레 73조 5항 중 '위탁강제부분'도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만큼 5항 본문 전체를 위헌으로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국민 기대 철저히 배신한 재판관들…정권·정치에 코드 맞춘 결정"

이날 헌재의 결정에 대해 고차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오늘 헌재 결정이 헌법정신을 경쟁과 효율로 재해석했다"며 "헌재 재판관들이 삶의 지혜와 경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고 국장은 "오늘 결정을 하면서 방송광고 독점판매가 평등권 위배라고 밝힌 것도 매우 모호하다"며 "과연 지상파 방송광고를 경쟁체제로 갔을 때 구현코자하는 사회적 이익이 그 부작용보다 크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최근 종부세 결정 등을 미뤄볼 때 헌재가 정치와 정권의 코드에 맞춰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고, 안타깝다. 국민은 어디에 기대어야 하는 것인가"고 강조했다.

고 국장은 또 "수구족벌신문의 방송겸영을 허용하는 법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12월께 제출될 예정인데 이날 헌재의 결정은 정권차원에서 벌어지는 언론통제 움직임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만약 헌재가 '법만을 심사할 뿐 다른 걸 고려 안 했다'고 해명한다면 자신을 법해석의 기술자로 한정하면서 스스로 존립근거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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