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KBS 사장으로 임명한 이병순 체제의 KBS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노동조합(12대) 정·부위원장 선거에서 1위는 정권의 방송장악과 이병순 사장 체제에 반대했던 기호 4번 김영한(위원장)·김병국(부위원장) 후보가, 2위는 현재 노조집행부를 계승하고 있는 1번 강동구·최재훈 후보가 차지했다.

두 후보는 각각 1398표(34.7%)와 1243표(30.9%)를 얻었으며, 1·2위 간 격차는 155표(3.8%)였다. KBS 내부에선 양쪽 후보 모두 얻을 수 있는 표는 대부분 확보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지난 26일 밤 치러진 제12대 KBS 노동조합 정·부위원장 선거 개표현장. 외부인의 근접 출입을 막기위해 KBS 안전관리팀이 설치한 테이프가 눈에 띈다. 조현호 기자 chh@  
 
KBS 노조선거 1위 김영한 후보, 2위 강동구 후보 표차 155표(3.8%)…결선 전망은

두 후보는 현재 KBS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김영한 후보는 라디오 PD출신으로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 KBS 사장 해임과 임명 과정에서 이를 막기 위해 출범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을 지지하고, 당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현 KBS 노동조합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해왔다. 김 후보는 또한 이병순 사장에 대해서도 '관제사장' '정권의 대리인'이라고 보고, 그동안 이 사장이 벌여온 KBS 재편과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노조 위원장 취임 6개월 이후 이 사장에 대한 신임을 묻는 투표를 실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반해 강동구 후보는 기술직 출신이자 현재 노조(11대 노조)의 부위원장으로, 당시 노조(비대위)가 사장 교체 과정에서 사원행동과 한 때 공동투쟁을 벌였으나 이병순 사장이 임명된 직후 '이병순은 낙하산이 아니다, 그러므로 파업은 없다'고 결정하는 데 뜻을 같이 했다. 강 후보는 이병순 사장에 대해 '일단 사장으로 인정하며, 인정하지 않으면 KBS의 미래는 YTN'이라고 할 정도로 현재의 '사장관'에서 다른 후보들과 큰 차이를 나타냈다.

26일 투표결과를 보면 현재의 사장과 노조집행부 체제에 대해 일단 KBS 조합원들은 거부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1번 강동구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은 반이병순·반어용노조의 기치를 내걸었다. 투표 결과 4번 김영한 후보(34.7%) 외에도 2번 박종원·박정호 후보 21.7%, 문철로·한대희 후보 11.7% 등 투표자의 3분의 2 이상(68.1%·2743표)이 현재 노조집행부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구 후보 제외 모든 후보들 반이병순·노조심판 제기…세후보 득표율 68.1% 달해

   
  ▲ 지난 26일 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치러진 제12대 KBS 노동조합 정·부위원장 선거 개표현장에 설치된 화이트보드에 후보별 최종 득표결과. 조현호 기자 chh@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또 한 가지 포인트는 압도적인 투표율이다. 4264명의 전체 유권자 중 4027명(94.4%)이 투표에 참가했다. 무효표 41표(1.0%)를 빼도 93.4%가 특정후보에 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은 KBS 뿐 아니라 웬만한 선거에서 자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높은 투표율을 보인 데는 그만큼 KBS의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각 후보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대체로 86∼87%(3700∼3800여명)의 투표율을 예상했지만 무려 200∼300명이 더 투표에 참가해 평소 투표를 안 하던 사람까지 참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방송독립이라는 기본적 과제 뿐 아니라 생존권과 직결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KBS 내부 일각에선 오히려 각 후보 이외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노조선거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회사 쪽도 투표를 독려했을 것으라는 관측이다.

이번 선거 결과 1위 후보가 투표자의 과반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1·2위 득표자가 오는 12월1일∼3일 최종 결선투표를 통해 12대 KBS 노조위원장을 결정짓는다. 이번 투표 결과를 보면 1위를 차지한 기호 4번 김영한 후보와 2위를 차지한 1번 강동구 후보는 높은 투표로 예상보다 150여표 더 획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투표율 94.4% 역대 최대…'방송장악' '구조조정' KBS 현실 반영

문제는 기호 2·3번에 갔던 1345표의 향배에 달려있다. 874표를 얻어 3위를 기록한 기호 2번 박종원(기술직)·박정호(기자직 출신)팀은 유권자의 다수(1300∼1400명)를 점하고 있는 기술직 조합원들과 기자직 조합원의 표를 어느정도 흡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471표를 얻은 기호 3번 문철로 후보의 경우 경영·행정 출신으로 경영직 조합원들의 표를 적잖이 가져간 것으로 평가된다.

기호 2·3번에 몰린 표의 성격은 기술·행정·기자직 등 직종별 선택 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이병순 사장 견제론, 현 박승규 노조집행부 심판론의 성격도 반영돼있다. 또한 PD에 대한 거부감, 즉 PD견제론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현 사장·노조 반대의 정서와 PD견제의 정서 중 표심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관건이며, 결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선전망…사장반대·노조심판론 대 PD견제론, 구조조정 적임론 등 복합변수 작용할 듯

기호 1번 강동구 위원장 후보는 27일 "결선 전망은 우리가 무조건 이기게 된다는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이미 김영한 후보에게 나올 표는 다 나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4번 김영한 위원장 후보캠프 쪽에선 "여러 요인들을 종합해볼 때 결선에선 100표 안팎의 박빙이 예상된다"며 "그다지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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