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이른바 '인터넷 유해사범' 단속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가운데 다음의 아고라 등 인터넷 게시판의 루머에 대한 단속위주 대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IDI)이 24일 주최한 인터넷과 한국사회 심포지엄에서 김현경 박사(연세대 강사, 문화인류학)는 "루머에 대한 단속은 오히려 '루머활동'을 촉진한다"며 "만일 막연한 불안감에서 생겨난,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추측까지 모두 처벌대상으로 삼는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루머 유포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해 특정 기업을 음해하는 등 날조된 이야기를 고의적으로 퍼뜨림으로써 이익을 얻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 동아일보 11월5일자 B3면.  
 
김 박사는 이어 "아고라에서 욕설로 가득 차 있거나, 사실을 날조하고 있거나, 기타 종이신문에는 결코 실릴 수 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런 글들은 대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뒤로 밀려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은 자기산출적인 우주로서,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포함하기에 이것을 모두 치워서 인터넷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또한 "정부는 최근 외국언론들의 악의적인 보도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면서 외신담당 대변인을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한국경제의 건전성을 입으로 백 번 알리는 것보다는 시장에 적절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박사는 "루머는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 정보가 부족할 때, 또는 공식적인 채널을 믿을 수 없을 때 생겨난다"며 "지금 경제 관련 루머들이 퍼지고 있다면 이는 금융저널리즘의 총체적 실패 탓이 크다. 경제전문가들의 힘을 모아 경제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서 조회수 1만 번 이상을 기록한 포스팅 265개를 분류한 결과. 9월 위기설이 맹위를 떨쳤던 9월 1-5일 구간에서는 중립적이거나 낙관적인 의견이 거의 주목을 끌지 못한 반면, 비관적인 의견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현경  
 
한편 김 박사가 지난 8월22일부터 9월20일까지 아고라 경제방에 올라온 글 가운데 조회수 1만 번 이상을 기록한 포스팅 265개를 분석한 결과 경제에 비관적인 의견이 대체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한국경제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있다' 등의 비관적인 포스팅은 61건, 정부가 위기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대안을 제시한 중립 의견은 54건, '곧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본 낙관 의견은 13건, 경기 전망을 담지 않은 기타 의견은 137건이었다.

김 박사는 "전반적으로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글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고 할 수 있지만 9월1∼5일을 제외하면 침착하게 대책을 강구하는 글들이 약간 더 많다"며 "경제방의 여론이 일반보다 비관적인 것은 경제방을 드나드는 네티즌들이 좀더 경기변동에 민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관적인 의견이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반드시 나쁜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1Id=385592  
 
'9월 위기설'을 제외하면 '사이버 경제논객'으로 유명한 미네르바의 신변에 대한 루머가 가장 파장이 컸다. 김 박사는 "미네르바가 잡혀갔다, 또는 출국금지를 당했다 등의 루머들은 미네르바에 대한 열광을 신드롬의 수준으로 올려놓는데 일조했다"며 "서브프라임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한 논객이 한둘이 아닌데도 미네르바가 박해받는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그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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