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원장 방석호·사진)이 한국언론정보학회(학회장 채백) 세미나를 후원하기로 했다가 일방적으로 계획을 취소해 물의를 빚고 있다. 예정된 세미나 주제는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으로, KISDI가 현 정부와 ‘언론코드’를 맞추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정보학회에 따르면 KISDI는 오는 7일 학회와 공동세미나를 열기로 했으나, 지난달 28일 느닷없이 세미나 후원을 취소한다고 통보해왔다. 이 세미나는 지난 6월부터 추진돼 온 것으로, 공모를 통해 발제자 3명이 논문까지 완성했으며 회원들에게도 이미 공지가 끝났다는 게 언론정보학회의 설명이다.

그러나 KISDI는 “이미 의원입법 초안까지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기상 늦었으며 세미나 성격도 비판적일 것이 분명하므로 국책연구기관이 후원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취소사유를 언론정보학회에 통보했다.  언론정보학회는 “전혀 납득하기 어렵다”며 “연구원이 오로지 현 정부 언론정책의 나팔수 역할만을 하겠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정보학회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성명에서 “법안 초안이 만들어졌어도 공청회는 거치는 법이며, 심지어 법안 통과 후라도 얼마든지 그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정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정보학회는 또 “비판이 예상된다면 그 내용을 수렴해 좀 더 나은 법안을 만들도록 하는 게 국책연구기관으로서 본연의 임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언론정보학회는 예정대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채백 부산대 교수는 “규모가 작아지더라도 자체예산으로 오는 7일 한국언론회관에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고 밝힌 뒤 “KISDI의 무책임한 행동에 우려를 느낀다”고 말했다.

앞서 KISDI는 지난달 29일에도 ‘방송 콘텐츠의 합리적 가격 정책’을 주제로 한국방송학회(회장 한진만)와 공동으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가 갑자기 후원을 취소해 토론회를 무산시킨 일이 있다. 당시에는 “방석호 원장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KISDI는 국무총리실 산하의 정부출연 기관이다. 원장인 방석호 홍익대(법학) 교수는 KBS 이사로 활동하며 정연주 전 사장을 퇴진시키는 데 일조한 바 있어, 지난 9월 취임 당시에도 ‘보은 인사’ 논란을 낳았었다.

방송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하주용 인하대(언론정보학) 교수는 “처음엔 공동주최였는데, 방 원장이 원치 않는다면서 토론회를 후원하는 것으로 역할을 바꾸겠다고 했다. 어차피 콘텐츠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는 KISDI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서 “그런데 10월27일 점심 때 후원마저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실무자는 토론회를 같이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역시 방 원장이 반대해 그렇게 결정됐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토론회를 이틀 앞둔 당시엔 이미 토론자 섭외와 장소 예약도 끝내고, 발제문은 인쇄를 앞둔 상태였다고 전하며 “후원금 500만 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책연구기관인 KISDI가 정부 입맛이나 맞추려는 태도가 몹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번 일로 비상운영위원회를 연 방송학회는 5일 KISDI에 해명과 사과를 요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하 교수는 “정확한 설명과 사과가 없다면 두 번 다시 KISDI와 공동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부터 올 연말까지 KISDI가 모두 8차례 주최하는 워크숍 내용도 하나같이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의 방송 규제 완화 움직임과 보조를 맞춘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방송규제 완화 방안 및 효과(10월21일)’,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 사업자 구도(11월18일)’, ‘종합편성 편성정책(12월2일)’ 등이 워크숍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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