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NHK의 수신료 인하 방침에 반해 KBS는 오히려 수신료 인상을 구상하고 있다고 비난한 조선일보의 사설에 대해 KBS가 21일 반박성 입장을 냈다.

조선일보의 사설과  KBS의 반박문을 꼼꼼히 읽어봐도 양쪽 다 뭔가 알맹이가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사설이 나온 시점은 지난 17일인데 무려 4일이나 지난 21일에야 반박문을 낸 것도 무성의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KBS가 20일 발표한 '조선일보 NHK 구조조정 관련 사설에 대한 입장'  
 
KBS "NHK 수신료 인상과 단순 비교해 비난한 조선일보 주장은 억지" 반박문

우선 조선은 지난 17일자 사설 에서 "NHK가 수신료를 2012년부터 10% 내리기로 했다.…NHK 개혁안은 최근 몇 년간 터져나온 비리로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벌어지는 등 국민 질타를 받은 데 따른 것"이라며 "반면, KBS는 2004∼2007년 1172억 원의 누적적자가 발생했다. 그래도 KBS는 태평성대다"라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10월17일자 사설  
 
조선은 KBS 인력 5300명을 두고 "매출액 대비 인건비 경비 비율은 37.8%로 MBC(25.2%) EBS(24.7%) 보다 훨씬 높다. 회사 경영 형편과 인건비 관리는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라며 "차장급 이상 상위직 비율은 2003년 40.6%에서 올 8월 48.2%로 늘었고, 내년에는 50.8%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직원 절반이 간부라면 그 조직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한가지다.…정연주 전 사장이 KBS에 남겨놓은 유산"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은 "KBS는 외부 전문가 집단에게서 경영 실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은 뒤 수술대에 누워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KBS 정책기획센터는 홍보팀을 통해 21일 낸 입장문에서 조선의 주장 하나하나에 반박했다. KBS는 "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수신료를 인상해 연간 20만 원에 이르는 높은 수신료와 연간 예산이 8조 원대인 NHK를 지난 28년 동안 수신료 인상이 동결된 채 연간 3만 원의 낮은 수신료를 받으며 NHK 예산의 6분의 1도 안되는(연 예산 1조3000억 원) KBS와 단순비교하는 억지논리"라고 지적했다.

KBS는 누적적자 1172억 원이라는 조선의 주장에 대해 "4년간 누적 당기순손익은 99억 원인데 조선의 1172억 원은 사업손익만 단순 합산한 금액"이라며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누가봐도 조선이 제시한 '1172억 누적적자' 주장은 다분히 악의적이다. 감사원도 그런 주장을 폈고, KBS 일부 이사도 그렇게 말한 바 있다.

인건비 비중이 높다는 조선의 주장에 대해 KBS는 "자체 제작비중이 낮은 지역방송의 특성상 지역국 인력이 포함된 KBS의 인건비 비중은 MBC보다 높을 수밖에 없으며, 본사기준만으로 볼 때 인건비 비중은 28.4% 수준"이라고 했다. 차장급 이상 상위직 비율이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팀장 이상 직위에 보임돼 있는 인력은 67명으로 2직급 전체인원 2113명의 3%만이 팀장에 보임돼 있고 97%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상위직급 비율은 48.2%가 아닌 전체 정원 대비 7% 수준이 정확한 수치"라고도 반박했다.

이 같은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초부터 수차례 반복됐으며,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신문, 한나라당 등에서 끊임없이 비난공세를 펴왔다. 조선의 비난이나 KBS의 반박 모두 과거 주장했던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사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어거지성 주장 만큼이나 KBS의 반박 역시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한 느낌이다. 본질과 알맹이가 빠져있다.

"제시한 적자규모·상위직 비율 악의적" 조목조목 반박…알맹이 없이 수치 오류만 제시

그것은 KBS를 둘러싼 본질적인 환경변화에 대한 진단이다. KBS는 반박문에서 눈에 띠는 주장을 폈다.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 수행을 위해서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 재원은 필수적 요건입니다."

당연하고도 중요한 자체 평가이지만 KBS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명제를 주창할 자격이 될까 하는 생각부터 튀어나오는 건 왜일까. 임기가 보장된 사장의 강제해임→일부 사원들의 저항→경찰력까지 동원한 채 편법적으로 진행된 새 사장 선임→또 저항→저항하는 사원에 대한 보복인사 및 내부감사→정부비판 프로그램 칼질 준비 등. 되뇌이기에 입이 아플 정도로 수많은 사태가 올 봄부터 가을까지 KBS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KBS인들은 팔짱을 낀채 권력과 그를 추종하는 집단의 KBS 침탈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KBS 노동조합은 새 사장에 대해 '낙하산이 아니다' '총파업을 안 한다'며 사실상 한 편이 됐다. 권력을 향해 스스로 독립을 지키길 포기해놓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고 강변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 지난 8월8일 오전 KBS 사옥 안에서 이사회를 저지하려는 KBS김현석 기자협회장을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중요하다"? 권력, KBS 장악하는 동안 KBS인 뭘했나…지금은?

조선일보가 사례로 든 NHK는 수년간 공영방송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시청자들의 수신료 거부운동에 직면해있다. KBS는 어떨까. "일본 등 선진국 공영방송과 다르다" "현재 운영하기도 벅차다" 운운하고 있는 KBS를 향해 시청자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벌써부터 '땡전뉴스'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져나오고 있고, 실제 KBS 뉴스는 대통령의 동정과 여당의 주장에 힘을 싣는 방향으로 유턴하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수신료 인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조선일보의 어거지 비난에 알맹이 없이 수치 오류나 따지며 반박하기에 앞서 KBS 스스로 국민과 시청자 앞에 당당한지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KBS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