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법치, 법의 지배 등을 강조한다. 대통령이 법과 제도의 선진화를 앞세운다면 당연히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서 매우 실망스럽다. 그는 촛불에 대한 경고를 젊잖은 말로 외칠 뿐 행정부내에서의 법치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지지도가 바닥세가 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경제문제, 고소영 인사 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사문제와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정부의 법적 기구인 법제처에서 ‘불법 소지가 있다’, ‘위헌 요소가 있다’는 식으로 유권해석을 하는데도 이 대통령은 모르쇠 하는 모습이다. 그는 형제의 눈에 든 티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이석연 법제처장은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기업·공공기관 임원 퇴진압력 논란과 관련해 “정치적 고려로 임기 중에 있는 기관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법치행정 원칙에 맞지 않는다. 사퇴가 강요됐다면 위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공기업 사장들에 대한 사퇴 압력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을 한 것이다. 이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국회 공기업특위에서 “임기가 남아 있는 공기업 임원들의 사표를 종용한 것은 법률적 근거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이고,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라고 한 답변에 일격을 가한 의미를 띄고 있다.

이 처장은 지난 6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노무현 정부 코드인사 단체장’ 사퇴를 요구했을 때 “국민과 당사자의 판단에 맡겼어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 후에도 단체장 몰아내기 작업을 적극 추진해 언론 쪽에도 KBS 사장이 면직되고, 언론재단 임원들은 견디다 못해 다음달 말 전원 물러날 것을 공약한 상황이다.

이 처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는 형식상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한데 이어 지난 달 21일 여야가 합의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제처는 "개정안 중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국회 심의 규정은 헌법상 정부에 부여된 행정입법권에 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헌법상 3권 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런 위헌 제기에도 불구하고 가축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청와대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법률적 판단에서 법제처장이 최종적인 판단을 할 위치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최근 법치 확립과 함께 앞세우는 ‘법과 제도의 선진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법제처가 국무회의에 상정될 법령안과 총리령안의 심사, 기타 법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면서 법령에 대한 정확한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도 포함된다.

법제처장은 당연히 대통령, 총리보다 끗발이 한참 아래다. 그의 말이 행정부내에서 묵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법질서 문제가 권력기관의 끗발로 지나갈 문제인가? 행정부내의 법정기관으로써 법령의 위헌 여부, 다른 법과의 조화 문제 등을 살피는 법제처장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법치와 법의 지배는 권력기구 밖에만 적용된다는 식이다.

   
  ▲ 고승우 논설실장.  
 
청와대가 강조하는 법치의 깊은 뜻이 무엇인지를 관가에서 잘 살핀 탓인지, 때아닌 검거선풍의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검경은 국민을 향해 ‘권력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촛불을 향해 실정법을 휘두르면서 다시는 촛불 비슷한 일을 벌이지 못하게 겁을 주려 혈안이 된 꼴이다.

검경은 시민단체에 대해 간부 일망타진, 벌과금 부과 세례에 이어 유모차를 앞세웠던 아기 엄마들까지 손을 본다고 나섰다.

권력의 존재 의의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 권력기관이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짓밟으면서 하위법이 전부인양 설치는 모습을 민심은 결코 용납지 않는다. 이 정부를 끔찍이 아끼고 보살피는 중앙일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잘한 일이 없다’가 68%로 나왔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잘못한 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13%), 물가 불안(12%), 인사 정책(9%) 순으로 나온 이유가 어디 있는지 잘 살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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