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KBS 신임 사장이 팀장 인사까지 단행하는 등 신속히 조직장악에 나서면서 내부 기자사회에서 저항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입사 10년차 미만의 젊은 기자에 이어 중견기자들도 정권의 방송장악과 이병순 사장체제의 제작자율성 침해 우려에 맞서 들고 일어섰으며 PD들까지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KBS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주목된다.

▷기자들 정부·사장·이사회에 실명걸고 비판= KBS의 입사 1∼9년차 기자 170명은 지난 3일 “정권의 방송장악기도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방송 독립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병순씨를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유재천 이사장을 포함한 여당추천 이사 6명의 자진사퇴 △노조의 비상총회 소집을 요구했고, 시민들과 만나 거리 선전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의 저항은 KBS 기자사회에 울림을 주었다. 90년대에 입사한(공사 19∼25기) 중견급 기자 77명은 9일 젊은 기자들의 결의를 적극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역시 “우리는 정권이 어떠한 억압을 가해온다 해도 다시 정권의 나팔수 ‘관영 방송’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기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관영 방송 KBS’는 전 국민에게 불행이자 ‘독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유재천 이사장의 자진 사퇴와 이사회 해체 △이병순 사장의 방송자율성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후배들의 결의에 대해 “2000년 이전 입사한 KBS 기자들은 방송 독립 수호 투쟁에 나선 후배기자들을 적극 지지하며, 먼저 떨쳐 일어난 기개와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또한 방송독립과 제작 자율성 수호를 향한 열망에 있어서 선배들 역시 후배들과 어떠한 차이도 없으며, 함께 싸워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KBS의 PD들도 곧 이 같은 결의를 밝힐 계획이다.

▷프로그램·제작 자율성 침해 강력 대응= 기자들의 잇따른 방송독립선언에 맞춰 그동안 이명박 정권의 사장교체 과정에서 가장 선두에서 투쟁을 벌여온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도 지난 3일 총회를 통해 투쟁방향을 구체화했다. 사원행동은 이병순 사장과 유재천 이사장 등 6명의 이사 사퇴를 계속 요구하면서도 △편성·보도·제작자율성 수호, 방송독립성 보장 △경영효율화를 빙자한 인력 구조조정 반대 △관료주의 부활·권위주의 회귀 반대 △2TV분리·민영화 등 정권의 방송법 개악저지 등 4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집중적인 투쟁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실제로 9일 인사에선 그동안 정부여당과 조중동 등이 ‘편파방송’이라고 주장해온 프로그램과 보도를 담당해온 팀장들이 모두 교체되는 등 프로그램 폐지 및 뉴스 논조의 변화 등 제작자율성 침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교법회 뉴스화면에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하라’의 ‘퇴진하라’ 문구 삭제 △9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 관련 청와대의 각종 요구 등 뉴스에 대한 안팎의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관건은 11월 노동조합 선거=사장의 인사 이후 제작 자율성 침해, 외부의 압력, 구조조정 등 향후 도래할 문제들에 대해 효율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KBS 내부의 분석이다. 사원행동이나 기자들은 이미 현재의 노조가 정권의 KBS 장악과정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KBS노조는 산별탈퇴를 공식화하고, 지난 2일 기업별 노조 출범 현판식을 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는 11월 실시될 노동조합 선거가 KBS 사태의 향방을 가늠할 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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