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사장 취임 직후부터 KBS 보도분야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 안팎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증언들이 나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연 총회에서는 보도본부와 시사보도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공개와 성토가 쏟아졌다.

1."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 청와대 황당한 요구들
 "촛불시위 질문자를 전경으로, 주공-토공 찬성론자 선정 요구"

우선, KBS가 오는 9일 예정된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 편 제작에 앞서 청와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요구한 사례다. 김현석 사원행동 대변인이 전한 말은 이렇다.

"국민과의 대화 제작에 있어 청와대의 압력이 엄청 심각하다. 지정토론자(5명의 초청패널)에 다섯 개의 주제를 정하게 돼있는데 (청와대 쪽에) 10여가지의 주제를 정해 보냈더니 청와대는 그 중 촛불시위 관련 주제를 정했다. 그러면서 그 질문자를 누구를 선정했는지 아느냐. '촛불시위 진압 전경'이었다. 제작진은 너무나 황당해서 거부했다. 또 '공기업 선진화'를 정했는데 토공-주공 통합과 관련된 것이다. 토공은 반대하고 주공은 찬성하는데 (청와대는) 질문자를 주공 노조사람으로 섭외해달라고 요구했다. 제작진은 이게 말이 되느냐고 또 싸웠다."

김 대변인은 이어 "(청와대 쪽에서)이번 대통령과의 대화의 목적이 슬픔에 차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것인 만큼 여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베이징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을 지목했다"며 "어제(2일)까지 집요하게 출연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특히 장미란과 함께 (청와대는) 이번 올림픽에서 윙크하는 표정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용대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를 같이 출연시켜주면 안 되냐고 요구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제작진 중 한 명은) 장미란 나오면 사표낸다고 저항하고 있는데도 각종 압력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이것이 바로 첫 싸움이다. 그래서 제작진에 말씀드렸다. 청와대에서 계속 요구할 경우 '이렇게 하면 못하죠, KTV가서 하시죠. 오히려 (그렇게 방송되지 않도록 했다는 뉴스가) KBS 위해 좋은 뉴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KBS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김찬태 PD는 "8월28일 6시59분 대상자 누구누구를 알아서 판단하되 해당 대상자를 이 역시 알아서 판단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해온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들어준 것은 없다"며 "이용대 선수를 넣어달라는 것은 들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2.불교도 법회 보도 이미지 의도적 편집 "어청수 퇴진 구호 지워버린 채 방영"

둘째로 불교도 법회 보도와 관련된 압력 여부이다. 대규모 불교도 법회가 있던 지난달 31일 KBS <뉴스9> 네 번째 리포트로 방영된 '사찰 만여 곳 ‘정부 종교 편향’ 규탄 법회'를 임장원 앵커가 소개하려고 할 때 어깨걸이 화면에는 불교도들이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하라'고 쓰인 손피켓이 있었다. 그러나 KBS는 이 화면(이미지)에서 파란 손피켓의 '퇴진하라'라는 문구를 파란색 밑줄로 지워버린채 방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달 31일 방영된 KBS <뉴스9>. 앵커의 '어깨걸이' 이미지에 불교도들이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하라"고 쓰인 손피켓을 들고 있으나 KBS 쪽에서 '퇴진하라'는 문구를 삭제한 채 내보냈다.  
 

이를 두고 최경영 탐사보도팀 기자는 총회에서 "그런 것도 사내에서 잘 모르고 있다.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 기자는 총회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아마도 9시뉴스편집팀에서 지운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데스크와 팀장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김명섭 탐사보도팀 기자는 "지난 토요일 불교도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편향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인 것과 관련해 우리(KBS) 뉴스에서는 단신으로 처리했다"며 "그 이후로 신재민 차관의 YTN 민영화 발언 문제에 대해 MBC의 경우 중요하게 다뤘지만 KBS는 간단하게 여야 공방으로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3.KBS 기자 170명 관제사장 거부 회견 기사 안 내보내

셋째로 이날 이병순 사장을 인정하지 않겠으며 노조에 조합원 총회 개최를 요구하며 방송장악 독립을 선언한 10년차 미만 KBS 기자들의 기자회견에 대한 것이다.

김명섭 기자는 "오늘 우리 기자 170명이 관제사장 거부 기자회견 했는데 출고가 안 되고 있다"며 "언뜻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기사를 쓴 기자부터 해서 그 윗선까지 책임을 져야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원행동에서 대응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경영 기자는 "이 기사는 사회팀에서 쓰려 했는데, (언론분야라) 소관이 다르다면서 문화복지팀 기자가 3시께 다시 썼다. 그러나 팀장이 기사에 대한 싸인(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 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이 총회를 개최했다. ⓒPD저널 원성윤 기자.  
 

4.시사기획 쌈 예고편 관련" 이명박 대통령 얼굴 순화해야 하지 않나'"

마지막으로 시사기획 쌈이 지난 2일 방영한 '슬픈 금메달' 편의 맨 뒷부분에 다음 편(오는 16일 방영)인 '건설족 전성시대 열리다'를 예고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화면이 너무 부정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내부에서 문제삼았다는 주장이다.

   
  ▲ 지난 2일 방영된 시사기획쌈의 16일자 방영분 예고편에 등장한 이명박 대통령.  
 
최경영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 얼굴이 너무 네거티브하게 나온다는 얘기가 예고가 나가지도 않았는데 (내부에서) 게이트키핑이 들어왔다"며 "지금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기자는 총회 이후 "한 간부급 기자가 예고가 다 나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예고가 나오면 방송이 2주나 남았는데 프로그램을 손대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 약하게 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말을 담당 취재진에게 했다"며 "취재진은 '그것은 기우'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명섭 기자는 "사장 취임부터 뉴스를 주의 깊게 봤는데 달라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며 "사장 바뀌고 뉴스와 프로그램에서 정권의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주의깊게 모니터를 해야되는데 노조에서 과감하게 문제제기를 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 제작 자율성이라든가 공정방송을 위해 지속적인 투쟁을 해 나갈 때 모니터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를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사원행동은 이날 총회에서 향후 투쟁방향을 △졸속적인 구조조정 반대 △프로그램 제작 자율성 수호로 선명하게 정하는 쪽으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 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이 총회를 개최했다. ⓒPD저널 원성윤 기자  
 

사원행동 "방송의날, 정치권력의 굴종 강요…권력의 압제 단호히 거부"

사원행동은 이날 발표한 방송독립선언문에서 정권의 방송장악과 관련한 현 시국에 대해 "60 여년전 일본제국주의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호출 부호를 부여받은 '방송독립'을 기념해 오늘을 '방송의 날'이라 이름 하였으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방송 독립이라는 대 명제가 처참히 부정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며 "정치권력에 굴종할 것을 강요하는 또 다른 압제가 이 땅의 공영방송의 앞날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고 규정했다.

사원행동은 "마치 KBS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독일병정과도 같은 모습으로 KBS에 밀고 들어온 이병순씨는 직원들과 한 마디 대화 시도도 하지 않았다"며 "취임사는 보도와 제작에 대한 철저한 감시, 그리고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단체들이 주장해온 '방만한 KBS'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구조조정'을 무기 삼아 정권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가차 없는 칼질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이며 스스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권력의 도구가 되겠다는 충성 맹세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원행동은 또 "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 손을 대거나 제작자의 자율성을 해치는 그 어떠한 간섭과 압력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며 "오늘은 KBS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이 땅의 진정한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날로 대한민국 방송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음은 사원행동의 방송의날 기념 방송독립 선언문 전문이다.

제45회 방송의날 방송독립선언문

참담하고 울분이 가득한 마음으로 오늘, 방송의 날을 맞는다.
60 여년전 일본제국주의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호출 부호를 부여받은 ‘방송독립’을 기념해 오늘을 ‘방송의 날’이라 이름 하였으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방송 독립이라는 대 명제가 처참히 부정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정치권력에 굴종할 것을 강요하는 또 다른 압제가 이 땅의 공영방송의 앞날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 없이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최시중 씨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방송 장악의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 왔다. 대선캠프 특보 출신들을 아리랑 TV와 YTN, 그리고 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내려 보낸 것은 물론 MBC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로 압박하는 동시에, 베이징 올림픽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사이 ‘관제 사장’ 이병순 씨를 KBS에 입성시킨 이명박 정권. 이제 정부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마치 KBS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독일병정과도 같은 모습으로 KBS에 밀고 들어온 이병순 씨는 직원들과 한 마디 대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원들과의 대화에 나서는 대신 그가 찡그린 얼굴로 읽어 내려간 취임사는 보도와 제작에 대한 철저한 감시, 그리고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단체들이 주장해온 ‘방만한 KBS’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구조조정’을 무기 삼아 정권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가차 없는 칼질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이며 스스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권력의 도구가 되겠다는 충성 맹세에 다름 아니다.

이에 공영 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정권의 더러운 야욕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공영방송인들의 뜨거운 마음을 담아 우리가 이 자리에 섰다.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홍보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은 우리가 결단코 막을 것이다. 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 손을 대거나 제작자의 자율성을 해치는 그 어떠한 간섭과 압력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 또한, 공영 방송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며 한편으로는 2TV분리와 민영화 협박을 서슴치 않고, 또 한편으로는 경영효율화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공영방송인들을 거리로 내몰려는, 이명박 정권과 그 대리인 관제사장의 방송장악 음모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오늘 방송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방송 독립을 선언한다. 오늘은 KBS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이 땅의 진정한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날로 대한민국 방송사에 기록될 것이다.
권력이여 기억하라. 당신들에게 충성하고 당신들의 야욕을 담아 소중한 전파를 낭비하느니 장렬하게 산화할 우리가 있음을. 공영방송을 사랑하는 이들이여 국민과 역사의 부름에 귀 기울이라. 내 한 몸의 안위와 입신양명의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떨쳐 일어나 우리의 사랑 우리의 방송을 지켜내자!

2008년 9월3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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