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KBS 신임 사장이 취임 뒤 부사장 임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직정비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취임한 이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내외부서 비판을 받아왔거나 편향시비를 낳고 있는 프로그램 존폐검토 △게이트키핑을 통한 프로그램 사전 통제 △경영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 시사 △팀제 개편 △수신료 인상 방침 등을 밝힌 데 이어 지난 1일 부사장에 김성묵 전 KBS 연수팀장과 류광호 KBS 비즈니스 이사를 임명했다. 이 사장은 이어 2일 8개 본부장단 인사를 단행하면서 본격적인 조직장악에 나설 전망이다.

▷퇴직자로 부사장단 인사=부사장 임명동의안이 논의된 1일 이사회에서 남인순 박동영 이기욱 이지영 이사 등 야당 추천 이사들은 “부사장으로 추천된 사람에 대해 좀더 파악하고 부사장으로서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안팎의 의견을 들어본 뒤 동의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유재천 이사장을 포함한 여당 추천 이사 등 7명은 “언제까지 알아본다는 것이냐, 이왕 새 사장이 취임했으니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표결을 강행해 임명동의안이 의결됐다. 이 사장은 이날 밤 두 후보자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이 사장의 부사장 인사에 대해 사내에선 두 부사장의 이력과 행적을 들어 한 사람은 프로그램 장악용, 다른 한 사람은 구조조정용 역할을 하기 위한 인사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부사장은 이미 올해, 류 부사장은 3년 전에 KBS를 퇴사했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은 이날 발행된 특보를 통해 “퇴직자 돌려막기를 통한 90년대 초반으로의 회귀”라고 혹평했다.

사원행동은 김 부사장에 대해서는 “KBS 재직당시의 별명이 ‘방송불가’일 정도로 방송검열 시대, 합리성을 상실한 무차별 게이트키핑을 통해 KBS의 창의성을 훼손한 대표적 인물”이고, 류 부사장은 “(KBS 노무주간 시절) 묻지마 아웃소싱으로 KBS 경쟁력을 저하시킨 인사”라고 밝혔다. 사원행동은 “이 사장의 취임사에 드러난 관제 프로그램 양산과 구조조정 칼부림을 공표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현직자가 아닌 퇴직자를 기용한 것은 부담없이 KBS를 요리하겠다는 협박”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비판 프로그램 폐지 움직임 저지”=이 사장이 취임사에서 ‘내외부에서 비판을 받아온 프로그램 존폐 검토’와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게이트키핑 도입’을 천명한 데 대해 사원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폐지대상으로 거론되는 프로그램은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이다. 지난달 초까지 <미디어포커스> 진행을 맡았던 김현석 사원행동 대변인은 “비평대상인 조중동이 시비걸었던 것 외에 미디어포커스가 공정성을 지적받은 적은 없다”며 “사장이 정상적 사고를 갖고 있다면 감히 공정성을 잣대로 문제삼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경우 보도본부장을 상대로 기자협회 보도위원회를 소집해 문제제기를 할 뿐만 아니라 강력히 저지투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디어포커스>에서 2년 넘게 제작중인 김경래 기자도 “사장의 언급은 그동안 조중동이 주장해온 근거없는 논리를 반복한 수준”이라며 “좀더 구체적인 입장이 나오는 것을 대비해 제작진의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중견 PD도 “사장의 주장에 전혀 공감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땡전뉴스 회귀 안 돼”=또한 정권 차원에서 일고 있는 5공 회귀 움직임에 이어 이병순의 KBS호 역시 땡전뉴스 때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진홍순 대외특임본부장은 2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올린 ‘KBS를 떠나며’라는 퇴사의 글에서 “땡전뉴스의 회귀는 절대 막아야 한다”며 과거 땡전뉴스의 폐해와 경험담을 제시한 뒤 “신 땡전뉴스의 출현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해 있고, 더욱 교묘하고도 다양한 방법, 디지털화된 수법으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협할 요소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고 우려했다.

앞서 김영한 수신료프로젝트팀 PD도 지난달 27일 사내게시판 글을 통해 이 사장의 ‘사전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게이트키핑 도입’ 발언에 대해 “과거의 권위주의로 회귀하겠다는 말로 들린다”며 “기획 단계는 자유로운 생각들이 브레인스토밍하는 단계인데 이때부터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말은 이 사장이 우리의 머릿속의 자유로운 생각까지 관리하는 ‘정신적 빅브라더’가 되겠다는 것으로, 팀장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볼 때 조금만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기획안은 결재하지 않고 되돌려 보낼 것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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