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KBS 주차장과 출입구에서 사복(경찰)들을 보면서 83년 대학입학 이후 생각이 너무 났다. 피속으로 끓어오르는 공포감과 분노를 느꼈다…다시 (방송독립과 같은) 얘기를 하는 게 통탄스럽다."(KBS 1라디오팀 국은주)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정연주 사장이 차라리 빨리 사임했으면 하는 생각했었다. 그러면 이런일이 안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그런데 8일 KBS에 경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다. 이틀동안 잠을 못이뤘다. 이제부터 싸움의 시작이다. 정 사장은 아직 해임되지 않았다."(보도국 나신하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전 정연주 KBS 사장 해임제청안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이날 정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700여 명의 KBS 사원들이 모여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사원대표와 사원들은 지난 8일 18년 만에 경찰이 KBS 사내까지 불법난입을 통해 이사회를 강행토록 한 데 대해 분노를 토해냈다.

   
  ▲ 공영방송 KBS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구호로 외치는 KBS구성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11일 정오 700여 명의 KBS 사원들이 모여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출범식을 개최했다. 사원행동이 구성한 11명의 운영위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사원행동 출범…사원들 분노폭발 "끓어오르는 분노, 공영방송 장악 음모 막아낼 것"

정연주 사장은 앞서 이날 오전 임원회의를 통해 "내일부터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 개인적으로 법정 투쟁에 나서겠다"며 "승소하면 공영방송 독립성이 확인되는 것이다. 지면 공영방송 지키기 위한 대책마련이 돼야 한다. 본인은 법정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 이것이 KBS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당부했다. 정 사장은 12일 KBS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전달할 예정이다.

오태훈, 고민정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출범식에서, 사원들은 "MB정권 하수인 이사회는 해체하라" "방송장악 막아내고 방송독립 이룩하자" "시청자는 분노한다, 공영방송 지켜내자"라고 외치며 공영방송 사수 의지를 밝혔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지난 한 달 너무 많이 고민해왔다. 언론인으로서 참된 진실과 희망을 알리고자 꿈을 갖고 들어왔으나 지난 한 달 너무 어려운 시간이었다. 지난 금요일 보지 말아야 할 광경들 보게 됐다. 선배들이 지켜온 KBS 지켜가겠다는 바람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오태훈 아나운서는 "입사 시 이곳은 민주광장이었으나 새롭게 시청자 광장으로 거듭 태어났다. 다시 이곳이 투쟁과 의지 다지는 곳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현석 "KBS 심장 유린에 참담함 느껴"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오늘 아침 그동안의 경과를 정리하다보니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심장을 유린하고 있는 적들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 현정권 이래 KBS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에 대해 김현석 KBS기자협회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사원행동은 이날 출범식을 통해 운영위원들을 구성해 대표(본사)로 양승동 KBS PD협회장(방송인총연합회장)을, 지방대표로 이광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청주지부장을 선임했다. 이밖에도 김병국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부산지부장, 강동원 대전충남지부장, 정재준 경남도지부장, 김현석 기자협회장, 이도영 경영협회장, 이내규 노조 중앙위원, 이형걸 아나운서, 박기호·정일서 중앙위원 등 11명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한다고 소개됐다.

양승동 회장은 "지난 8월8일은 KBS에 치욕적인 날로, 18년 전 4월 민주화 투쟁 때보다 훨씬 더한 날이었다. 20년이 지났는데 이런 치욕당한다고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 사원 200여 명이 이사회장 앞에서 온몸으로 저항했으나 결국 경찰 폭력에 의해 이사회를 막진 못했다"며 "그러나  그날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이명박의 적나라한 방송 장악 기도에 침묵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KBS 노조가 투쟁의 중심이 되어야 하나 그동안 말과 달리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KBS 노조가 진정한 행동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사원행동의 동력이 노조의 중심적 투쟁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동 "치욕에 잠을 못이뤄…이사회 원천무효, 해체투쟁 벌일 것"

양 회장은 또 "60일 넘게 KBS를 지키겠다고 촛불을 들어 준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할 때가 됐다"며 "이제 KBS 구성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향후 투쟁목표로 △지난 이사회 원천무효 선언 △직권남용으로 경찰력을 투입한 유재천 이사장과 이런 지시를 따른 회사관계자 응징 △이사회 해체투쟁 △이사 6명 'KBS 파괴 6적으로 규정' 등의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제시했다.

양 회장은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는 언론인 기본 정신을 갖고 하겠다"며 "방송장악을 기도하는 이 정권은 KBS를 너무 얕잡아봤다. KBS 직원들을 시험하지 말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지방대표로 선임된 이광규 청주지부장은 "90년 4월은 뭐가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청자 광장 한 쪽에 그 자리에 맨바닥에서 침낭 한 개 얻어 잠을 청했고, 방송민주화와 공영방송이 무엇인지에 대해 잊었다. KBS 이상과 언론자유는 그 투쟁의 결과로 주어졌던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 8일은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에게 다시 묻고 있다.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가 KBS를 권력 시녀로 만들려 할 때 여러분은 어디 있었나. 그 대답을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해야할 것이다. 끝까지 이 정부의 방송장악기도를 분쇄하자"고 촉구했다.

성유보 "KBS 사원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느껴야" 최문순 "같이 죽자면 죽겠다"

이어 연대사에 나선 성유보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은 "민주정치는 말로 하는 정치이고, 독재정치는 힘으로 하는 정치인데 한국언론을 둘러싸고 있는 현 정권의 모든 행동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짓밟는 것이며 힘으로 하는 정치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며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언론인에게 위임한 언론자유를 언론인들, KBS인들은 충실히 의무에 기반해 수행해야 한다. KBS인들이 오늘 KBS 사장 해임 문제가 내부 문제라든가, 우리 권리 문제라고 하면 큰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국민이 위임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에 대한 기본 가치를 책임져야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권이 하는 행위는 독재의 초대이다. 언론자유 주어졌을 때 목소리 내다가 권력이 바뀌면 순응해 알아서 기겠는가. 70∼80년대, 당시 정권이 언론장악과 동시에 우리 국민들을 뭘로 탄압했는가. 긴급조치, 유언비어라며 탄압했어. 현 정권은 국민들의 비판을 괴담이라 하고 있다. 반대 진영 목소리를 짓밟고, 자기들 목소리만 키우고 있다.…87년 이후 20여년 동안 내부 투쟁의 마지막 고비가 2008년이 되지 않겠는가. 가진자, 권력있는 자와 마찬가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임 느껴야 한다. 여기서 굴복한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도 경고하는데 20여년 전 독재사회로 초대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성숙한 시민들의 총 단결에 의해 제2의 6월항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KBS 여러분들이 70∼80년대 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민주운동의 주역 될 것임을 부탁드린다."

   
  ▲ 성유보 범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민주당 최문순 의원(전 MBC사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전 언론노련 초대위원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연대사에서 "오늘 회사를 나가는 정연주 사장을 만났는데 그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눈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33년 전 동아일보에서 성유보 이사장과 함께 쫓겨난 뒤, 제대로된 직장을 갖지 못했다. 우리사회가 이런 분들을 끝까지 한번도 대우하지 못하고 인격을 철저히 파괴해서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쫓아냈다. 그 분을 지켜드리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며 "여러분께도 지켜드리지 못하고, KBS에 경찰이 들어오는 것 지키지 못한 대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난 처음에 촛불시민들 지키러 왔었다. 와서보니, 정연주 사장과 PD수첩 문제는 언론탄압하는 고리에 불과했고, 그것을 고리로 삼아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물러났다해도 가만뒀겠느냐. 지금 정권은 여러분들에게 굴복과 굴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독립은 성유보 이사장, 정연주 사장, 권영길 의원과 같은 분들의 피와 살을 깎아 얻어진 것이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고,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8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끝났다. 그 책임은 이명박에게 있다. 앞으로 여러분들을 지키겠다. 여러분들이 같이 죽자고 하면 죽겠다. 여러분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명박이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는데 해임된 것이냐. 받아들일 수 있느냐"며 "여러분들이 진정 공영방송을 하겠다면 이를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이 대통령은 이 해임이 씨앗이 돼 자신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리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해임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 국은주 KBS 1라디오 PD.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후 KBS 사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국은주 KBS 1라디오 PD는 "한 달 전쯤 KBS 사장을 몰아내는 방송장악 시나리오를 듣고 너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지난 8일 이후, 그게 착각었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KBS 주차장과 출입구에서 사복(경찰)들을 보면서 83년 대학입학 이후 생각이 너무 났다. 피속으로 끓어오르는 공포감과 분노를 느꼈다…다시 (방송독립과 같은) 얘기를 하는 게 통탄스럽다.…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KBS 주인으로서 우리 몫을 찾아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힘은 바로 옆에계신 여러분들에게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달라."

이어 자유발언에 나선 나신하 보도국 기자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처음엔 정연주 사장이 빨리 사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걸어나가는 것과 끌어내리는 것은 다르다. 보도본부장, 팀장, 선임 팀원, 기자 앵커,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어. 그러나 KBS 앞에 경찰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다. 제가 18년 전 밖에서 봤던 모습을 보고 가슴 터지는 듯했고, 이틀간 잠을 못잤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정 사장이 마음에 안 들지만 이렇게 쫓아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아직 정 사장은 해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은주 "세상에 공짜는 없어…우리 몫 찾아야" 나신하 "경찰 들어온 것 보고 많이 울어"

   
  ▲ 김명섭 보도본부 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명섭 보도본부 기자도 "지난 8일 앞장서다가 사복경찰들에게 부데끼다가 갈비뼈가 눌려 전치 3주를 받았다"며 "향후 저와 같이 부당한 공권력에 당한 사원들이 함께 소송을 제기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부당하고 공영방송 유린하고 언론자유 유린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몸이 분골쇄신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원행동 참가자 일동은 출범식을 마친 뒤 낭독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단결된 대오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를 끝까지 싸워 막아내고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투쟁하는 사내외 모든 세력과의 강고한 단결과 연대 선언하며 △공영방송 사수 투쟁의 핵심에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이번 공영방송 사수투쟁의 선봉에 나서 줄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사원행동은 "민주시민들이 자유 언론의 푸른 숲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고 노래할 때까지 우리의 전진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는 우리 편"이라고 덧붙였다.

 

   
  ▲ KBS 이강택 PD가 사원행동 특보 1호를 들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사원행동'은 출범식을 마치고 KBS사옥을 둘러싼 전경버스와 경찰병력을 길 건너편으로 물러나게 하고 공영방송사수 투쟁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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