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KBS 사장은 6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 KBS 사장 해임권이 있다'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주장에 대해 "그 사람 말을 함부로 한다"며 "입장이 어떠해서 그런 말을 대변하는지 모르겠다"고 정면 반박했다.

이와 함께 KBS 최병찬 홍보팀장은 이날 기자회견 도중 감사원의 해임요구안에 대해 무효 확인소송과 효력·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7일 서울지방법원에 접수하겠다고 밝혀 감사원의 해임요구안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정연주 "신재민 차관 말 함부로 한다…어떤 입장서 그렇게 대변하는지"

   
  ▲ 정연주 KBS 사장이 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감사원 해임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 사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제1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 차관의 해임권 발언에 대해 "신 차관 그 사람 말 함부로 하는 것 같은데, 나와 워싱턴 특파원 함께 했던 사람이다. 입장이 어떠해서 그런 말을 대변하는 지는 모르나, 저는 방송법 제정된 역사와 과정을 보면 왜 통합방송법에서 임명절차를 이사회에서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면이 아닌 임명으로 했는지 정신이 다 녹아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헌법재판소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그럼 헌재소장도 해임할 수 있느냐고 얘기한 적 있다. 하지만 탄핵의 절차가 있다는 게 내 주장"이라며 "다만 면(직)을 시킬 절차를 만들라는 것이다. 국무위원의 경우 총리가 제청권 행사하고 면(직)을 제청하지 않느냐. 그러나 KBS 사장의 경우 독립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임기를 중간에 그만두게 할 때는 거기에 대한 절차와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이어 "현행 방송법에 면(직)권이 없다는 게 저희들 판단"이라며 "어차피 이 문제는 언젠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판결이 되지 않을까 한다. 법적 절차적 하자가 있으므로 해임이 무효라는 판단이 나온다면 매우 중요한 판결이 될테고, 반대로 해임이 유효하다면 이제는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 담보하는 보완책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방송법에 면직권 없다, 사장 해임권 문제 법정에서 중대한 판결이 될 것"

정 사장은 이사회에서 해임권고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사회는 우리 회사의 독립적 의결기구"라며 "기본적으로 이사회가 기본적으로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것을 흔드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해임권이 발동돼 물러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엔 정 사장은 "그날 그날 최선을 다하고 다음 날 일은 다음 날 생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 정연주 KBS 사장이 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감사원 해임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6일 감사원 해임요구안에 무효소송·효력정지 가처분 소송키로

여권의 구체적인 압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지난해 연말 대선 이후 저에 대한 사퇴압박이 공개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체적 압박이 온 것은 없었다.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을 통해 들었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또 "사장 퇴출 0순위라는 말이 한나라당 쪽에서 많이 흘러나왔고, 간접적으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김금수 전 이사장과 만나 한 얘기, (직접적으로는) 최근 유재천 이사장이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명예롭게 사퇴했으면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석에서도 여러 얘기가 있어왔다"고 답했다. 정 사장은 이어 두 전현직 이사장과 정부여당에 뜻을 전달할 만한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유재천 이사장 부드러운 분위기서 '명예롭게 사퇴했으면 한다'고 말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하자가 없는 제도로 그 틀을 바꾸면 된다. 제도에 의해 합리적 방식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지 무리하게 한다면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본다."

신재민 차관을 비롯한 정부 여당 인사들과 함께 조중동 등 보수신문이 '정 사장 재임 5년 동안 좌편향보도를 해왔다'는 지적에 대해 "오히려 반문을 드리고 싶다. 그렇게 편파 왜곡 하고 편향돼왔다면 모든 여론 조사에서 어떻게 신뢰도가 1위로 어떻게 나오느냐.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어졌다고 본다"며 "우리 프로그램 중 '단박 인터뷰'에 조갑제 선생도 출연한 적 있다. 제작진에게 '이문열도 출연했으면 한다'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전달한 적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동안 침묵하다 왜 기자회견을 여는 등 언론의 전면에 나섰느냐는 질문에 정 사장은 "설마 이렇게까지 무리한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식을 믿었다"며 "지난해 말 확대 간부회의에서 분명히 자리를 지키겠다고 얘기했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았는데, 저를 에워싼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점이 돼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지니는 가치,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사장의 임기보장이 필요하다'는 가치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밝혀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편향보도 지적에 "편파왜곡했는데 신뢰도 1위? 반문하고싶다"…눈물 글썽이기도

'정권에서 사장을 바꾸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정말 사장이 바뀌면 KBS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 사장은 "KBS 구성원들, 방송독립에 대한 치열한 정신과 열정을 믿는다"며 "90년 방송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역사도 있고, 지난 5년 동안 자율과 자유 속에서 '더 이상 잃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돼있다고 본다. 그렇게 쉽게 무너지거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미리 준비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읽어내려가던 중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오후 2시29분께였다. 울먹이게 만든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제가 수배로 도망자 신세였던 1980년 5월17일 이후 미국 형님네로 건너가셨다가 그뒤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이 며칠 전 꿈에 보였다. 근심어린 얼굴로 저를 가만 내려다보시면서 늘 그러하셨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늘 기도하고 있단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