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17일 국회는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다. 60주년 제헌절을 맞아 갖가지 행사가 준비됐기 때문이다. KBS 열린음악회 준비로 국회 앞마당은 콘서트장을 옮겨 놓은 분위기다. 국회는 이날 밤 행사를 위해 1억5000만 원 상당의 ‘불꽃놀이’를 준비했다.

열린음악회 준비를 위해 2억2000만 원을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가 헌법 제정일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할 때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천정배, 이미경, 김재윤, 우윤근, 김세웅, 김유정, 최문순 의원 등으로 구성된 민주당 언론장악음모저지본부는 17일 오후 정론관을 찾아 “60주년 제헌절에 헌법 제21조는 죽었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 1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회의실에서 진행된 YTN 임시주총에서는 1분여 만에 구본홍 사장 내정자 선임안이 의결됐다. 사진은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과 YTN 노조원들이 단상앞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이치열 기자  
 
헌법 제21조는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담고 있다. 이들 의원은 왜 헌법 제21조는 죽었다고 주장했을까. 제헌절 아침 서울 상암동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다. YTN은 이날 오전 주주총회를 열고 구본홍 내정자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대통령 측근 사장 임명, YTN 공정성 뿌리부터 위협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 소속 조합원들은 몸으로 막았지만 회사가 동원한 건장한 체구의 용역들과 맞서는데 역부족이었다. YTN 조합원들이 구본홍씨 사장 선임을 결사 반대한 이유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방송 특보로 활동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측근이 뉴스 전문채널의 사장이 된다는 의미는 방송 보도의 공정성, 객관성에 심대한 위협을 줄 수밖에 없다. YTN 구성원들은 언론 공공성과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을 다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편법과 폭력을 동원해 대통령 측근을 YTN 사장으로 앉혔다.

구본홍씨를 무리수를 쓰면서까지 YTN 사장으로 앉힌 것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인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 ‘프레스 프렌들리’를 강조했지만 현실은 노골적인 언론장악이었다.

   
  ▲ 17일 오전 주총을 강행하려는 일부 선배기자출신 간부들의 행태에 대한 최기훈 조합원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YTN 노조원. 이치열 기자  
 
80년대 '땡전뉴스' 부활 준비하는 이명박 정부

대통령이 형님으로 모시는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앉힌 것을 비롯해 언론 관련 주요 포스트에 대통령 측근을 기용했다. 구본홍씨를 YTN 사장으로 앉힌 것은 주요 언론사까지 대통령 입맛에 맞는 인물을 수장으로 앉혀 언론 전반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신문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주요 보수신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여론을 선도하고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방송사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점령한다면 여론의 물줄기는 정권의 입맛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 측근의 사장 임명은 사장 자리 하나의 교체로 머물지 않는다. 방송 보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 자리에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기용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80년대 ‘땡전뉴스’ 부활을 의미한다.

YTN 시작으로 대통령 측근들 언론계 점령 가속화  

   
  ▲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YTN 문제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YTN 구성원은 물론 언론계 내부, 언론 시민단체, 야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예정대로 사장 임명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YTN은 언론장악의 실체를 보여준 신호탄에 불과하다.  

구본홍씨 YTN 사장 선임 문제는 정리된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YTN 내부는 물론 언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신임 운동이 전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장 명함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사장 역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구본홍씨 사퇴를 촉구하는 ‘출근저지투쟁’이 벌어진다면 이를 버텨내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야당도 이번 사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모든 야당은 한목소리로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비판했다.

민주당 "당의 명운을 걸고 언론자유 지켜낼 것"

민주당 언론장악음모저지본부는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국민과 함께 비타협적인 싸움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당의 명운을 걸고 국민의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인기가 급락했고 갖가지 실정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진정성을 담아 국민에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고쳐나가려는 모습보다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 보겠다는 ‘무리수’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의도대로 흐름이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언론자유라는 가치는 헌법에 보장된 중요한 가치이고 권력이 힘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상식 정도의 이성만 있어도 언론계 낙하산 투하 철회"

YTN 장악으로 시작된 이명박 ‘독재정치’ 밑그림 그리기는 여론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원조보수를 자처하는 자유선진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상식 정도의 이성만 있더라도 정부는 즉시 언론계에 대한 낙하산 투하를 철회해야 하고, 구본홍 사장도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대선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를 언론계, 특히 방송계에 투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언론장악의 음모가 숨어있다는 의혹을 불식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단 부대표도 "용역을 동원해서 단상을 3중으로 둘러싼 채 구본홍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하였고, 더구나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서 동의여부를 묻지도 않았다. 법적, 절차적 하자가 분명하다"면서 "방송언론 장악을 위해 법과 절차까지도 무시하고, 노동조합은 물론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위배한 정부와 YTN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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