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로 뛰어든 ‘촛불집회’(조선일보)> <촛불 끝내 차도 불법 점거(동아일보)>. 26일자 1면에 실린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사는 판박이처럼 비슷했다. 지난 주말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광화문 거리행진을 벌인 것과 관련해 ‘불법’ ‘폭력’이라는 단어를 기사 제목에 사용하며 부정적 인식을 감추지 않았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호소보다는 이들의 행동으로 서울시내 교통체증이 심각해졌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명박 정부 들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논조는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참여정부 시절 스스로를 ‘비판언론’으로 규정했던 이들 언론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 대변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광우병 반대 촛불문화제 현장에서는 ‘조중동’에 대한 비판 정서를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 조선일보 5월26일자 1면.  
 

'비판언론' 자처하던 그 언론들 지금 뭐하나

   
  ▲ 동아일보 5월26일자 1면.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정부를 대변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물타기 하는데 치중한다는 지적이었다.

2008년 6월 정국을 놓고 87년 6월과 비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정주부부터 중고등학생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21년 전 ‘6월 항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87년 6월 정부의 시위 대처는 강경했다. 백골단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공권력의 ‘공포’는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정부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자극하면서 정부 비판세력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87년 6월9일 조선일보 "불법집회 강행 땐 엄단"

정부의 빨갱이 여론몰이에 앞장선 것은 그때도 언론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87년 6월에도 판박이 편집을 보였을까.

조선일보는 87년 6월9일자 1면에 <불법집회 강행 땐 엄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소제목은 <내무-법무 합동 담화 “‘6·10 규탄'은 헌정 파괴 저의”>로 뽑았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정부는 8일 ‘6·10 규탄대회'를 불법집회로 규정, 대회의 중지를 촉구하고 대회가 강행될 경우 관계법에 따라 엄정 처단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1987년 6월9일자 1면.  
 

조선일보는 “고건 내무부장관과 정해창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종합청사 19층 국무위원 대기실에서 발표한 합동담화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이른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가 개최하려는 10일의 불법집회는 단순히 박종철군 사건의 규탄이나 헌법문제 시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정 분란과 공권력의 무력화까지 초래하여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생활을 희생시키려는 저의가 숨겨져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기사내용은 전두환 정권의 담화문을 옮기는 수준이었다.

담화문은 이어 “운동본부 주도세력의 구성원 상당수가 과거 국사법의 전력이 있는 등 이 단체의 불순성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 단체가 계획하고 있는 집회를 보더라도 주요 관공서 및 외국공관 등 공공기관이 밀집한 수도서울의 도심부에서 겨우 8백여 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는 협소한 장소를 택해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려 하고 있을뿐 아니라 심지어 중-고등학생들에게까지 집회참여를 선동하고 있는 등 불법적인 군중집회의 성격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담화문은 “유인물과 선동구호 및 집회준비동향 등을 종합해 볼 때 지난해 인천소요와 같은 불순좌경세력들이 이에 편승하여 민주헌정체제를 부정하는 전단살포 방화 파괴 무차별투석 등 집단난동사태를 야기함으로써 극심한 치안 교란은 물론 국민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담화문은 “그러므로 이 집회는 안정을 희구하는 절대다수 국민들의 여망에 따라 마땅히 중지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그런데도 이 집회가 강행된다면 정부는 국가사회의 안정을 지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관계법의 규정에 따라 예방에 필요한 제반조치를 강구할 것이며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담화문은 끝으로 국민들이 이 집회 및 시위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담화문과 별도로 발표한 해설자료를 통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불순단체로 규정한 근거에 대해서 △발기인 2천여 명을 분석해볼 때 반국가적 반사회적 책동을 주도해온 범죄전력자 국사범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고 △일부 종교인의 경우 폭력으로 현실파괴도 불사하겠다는 해방신학계열이 포함돼 있으며 △투쟁목표가 폭력적 방법을 통해 체제를 전복시키겠다는 불순한 저의를 감추고 있고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현행법을 거부, 무효화시켜 법질서에 대한 근원적인 국민 저항을 유도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 등이라고 설명했다.

전두환 정권 담화문 "불순 단체, 중고생 집회참여 선동"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불순좌경세력’ ‘엄정하게 처단’ ‘집단난동사태’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6·10 행사 참가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전두환 정권의 ‘공포정치’는 21년 지난 현재 이명박 정부의 시위 대처와 유사한 모습이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26일 법무부 실·국장 회의에서 “불법 집회는 법에 따라 주동자는 물론 선동, 배후 조종한 사람까지 끝까지 검거해 엄정히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위 경찰은 시설 위주 경계하되 예비타격대를 운용해 극심한 도로혼잡 장시간 점거는 곧바로 해산명령 내려 법대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공포 정치’의 충실한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87년 6월 항쟁 전날에두 두 신문의 모습은 비슷했을까.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전두환 정권의 담화문을 옮겨 담았지만 동아일보는 달랐다. 

87년 6월9일 동아일보 "사복경찰, 성당 출입자 통제"

동아일보 87년 6월9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경찰 5만8천명 투입 6·10 봉쇄작전>이었다. 소제목은 <성공회 주변 내일 2만명 3중 차단>이라고 뽑았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6·10 고문살인은폐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가 주최 측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 의해 감행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이를 원천봉쇄하려는 검찰 및 검찰 등 당국과 주최 측이 팽팽히 맞서 ‘6·10행사'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987년 6월9일자 1면.  
 

동아일보는 ‘사복경찰’이라는 제목의 사진기사를 통해 “‘6·10 국민대회'가 열릴 대한성공회 서울대 성당 후문에 9일 오전부터 사복경찰이 배치돼 성당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당시 보도는 조선일보와 차이가 있다. 조선일보가 전두환 정권의 담화문을 충실히 전달한 반면 동아일보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사복경찰의 성당 출입 통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2008년 5월26일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경찰에 맞서 새벽까지 수도 한복판에서 불법 시위를 벌인 것은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서는 일탈"이라며 "청계광장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사용한 '역적'이란 용어까지 써가며 '이명박 타도'를 외쳤다"고 주장했다.

80년대 당시 대표적 ‘야당지’로 불리며 기사 한 줄, 한 줄 서민들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던 그 언론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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