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사 월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믿기지 않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런 황당무계한 주장이 나오면 그 내막을 파헤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24일 주요 언론은 교사들이 터무니 없이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교육시장에서 정부의 역할과 개선 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영 한양대 교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자료를 인용,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15년차 초등학교 교사 월급의 비율은 한국이 2.34로 EU 19개국 평균(1.19), OECD 평균(1.28)의 두 배 가까이 됐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바로 뒤를 이은 나라는 독일과 벨기에로 각각 1.62에 그쳤고 일본(1.56), 스페인(1.35), 뉴질랜드(1.42), 잉글랜드(1.33) 등도 한국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이 교수는 "국민소득을 감안했을 때 한국의 교사 월급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직업 안정성까지 높아 우수 인력이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은 "교원평가나 성과보상 체계 같은 유인 체계가 미흡해 교육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교원평가 등 관리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도 대부분 이 교수의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월급은 많이 받는데 서비스는 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교원평가 등을 도입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 3월24일 매일경제 7면.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우수 교사들이 학교에 진입하는데도 공교육이 부실한 이유로는 교사의 책무성을 높일 성과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며 "교사들이 더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는 유인 체계가 빈약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는 "당초 3월부터 모든 초중고교에서 교원평가제를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전교조의 반발 등으로 법제화가 미뤄진 상태"라며 "일본이 2000년에 교원평가제를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우리도 평가 결과를 성과급과 승진 등 인사에 반영하는 교원평가제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일단 교사가 되고 나면 그들은 경쟁을 모르는 폐쇄주의 집단의 일원으로 금새 변모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 3월24일 동아일보 14면.  
 
동아일보는 "교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학생을 가르치도록 유도하는 성과관리 및 평가가 제대로 안 돼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면서 "자립형 사립학교와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늘려 학교 선택권을 넓히는 한편 선지원 후추첨 제도로 학교 간 경쟁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이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교사 월급이 많다는 지적에서 교원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끌어내는 논리 비약도 놀랍지만 자립형 사립학교와 학교 간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애초에 교사 월급은 이런 주장을 끌어내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 교수의 보고서에 인용한 순위는 연봉의 절대 비교가 아니라 구매력 환산 GDP 대비 상대 비교다. 보고서에 인용된 우리나라 초등학교 15년 경력 교사의 연봉은 5만1641달러다. 환율 950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4906만원이 된다. 1인당 GDP 대비 비율은 2.34배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 구매력 환산 기준 각국 교사 평균 연봉. ⓒOECD.  
 
   
  ▲ 구매력 환산 기준 1인당 GDP 대비 교사 연봉. ⓒOECD.  
 
그러나 2005년 기준 우리나라 구매력 지수는 75. 이를 감안하면 실제 15년 경력 교사의 연봉은 3만8731달러 정도다. 환율 950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3679만원이 된다. 과연 이 연봉이 세계 최고 수준일까. 참고로 OECD 평균은 4만5666달러, EU 평균은 4만5739달러다. 구매력 지수 100과 106을 감안할 경우 실제 연봉은 OECD 평균은 4만5666달러, EU 평균은 4만8483달러가 된다.

연봉의 상대 비교를 위해서는 구매력도 감안해야겠지만 1인당 GDP 대비 연봉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만약 OECD나 EU처럼 1인당 GDP의 1.28배와 1.19배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2만1186달러와 1만9697달러로. 2천만원에도 못 미치게 된다.

이 교수는 이런 엉뚱한 계산을 근거로 우리나라 교사의 연봉이 유럽보다 2배 이상 많다는 주장을 끌어낸다. 유럽에서는 2천만원만 받고 일하는데 우리는 2배 이상 주니까 일도 더 잘해야 할 것 아니냐는 맥락이다. 세계일보 등은 이 교수의 말을 인용해 "구미 각국 교사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업무가 끝난 뒤 할인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도 했다.

실질 임금이나 평균 연봉 등을 감안하지 않고 GDP 대비 비중을 근거로 입맛에 맞는 결론을 끌어내는 이런 교묘한 통계 조작은 언론의 오랜 속임수 가운데 하나다. 선진국과 소득 비교에서는 연봉과 구매력 뿐만 아니라 사회 안전망과 복지 수준 등도 감안해야 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GDP와 국민들의 실질 임금의 격차가 더 클 수밖에 없다. GDP 대비 연봉을 비교하면 교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의사나 판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들 연봉 역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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