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를 음해했다며 조선일보와 일전불사를 외치던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원장 지관스님)이 조선 방상훈 사장의 전격적인 사과 방문으로 구독거부 운동을 벌인 지 한 달도 안 돼 철회하기로 결정하자 불교계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일 조선 구독거부운동 철회에 대한 총무원 측의 설명은 조계종이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방 사장의 사과 방문과 '사과성' 기사 게재가 수용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과 일전불사" 외치던 조계종 한달도 안돼 구독거부 '없던 일로'

그러나 실제 조선 기사를 보면 사과성 기사로 보기 힘들다는 게 조계종 및 불교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조선은 1일자 2면 하단 <조계종,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 철회키로> 기사에서 △조계종이 구독거부를 철회하기로 했다는 내용과 △앞서 지난 30일 방상훈 사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만나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하는 계기로 삼겠다. 비온 후에 땅이 굳어지도록 하자"고 말했다는 내용을 짤막하게 전했다.

   
  ▲ 조선일보 11월1일자 2면  
 
조계종 내부 비판의 요지는 이 기사가 '사과성' 기사이려면 조선의 어떤 보도가 어떻게 잘못됐고, 불교계에 얼마나 피해를 줬는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은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총무원 관계자는 "사과 기사로 내보낸 것이지만 내용에 있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총무원의 직할 사찰인 서울 강남의 봉은사 관계자는 "이 기사는 불교계를 음해한 데 대한 조선의 사과성 기사가 아니라 조계종이 구독거부를 번복했다는 걸 알리는 기사"라고 평가했다.

종단 내부 "조선일보가 뭘 사과했다는 거냐" "사장 사과방문했다고 접을 일인가"

무엇보다 조선 구독거부운동에 열의를 보였던 불교계 인사들은 "한 달도 안돼 이렇게 쉽게 철회할 것이라면 뭐하러 시작했느냐" "불교계가 얼마나 가벼운 처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사과'방문을 맞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조계종 총무원  
 
이번 구독거부 운동과 관련해 2000명의 구독거부 서명을 받고, 총무국장 스님이 20년 만에 조선을 절독하는 등 열의를 보여온 봉은사 관계자는 "조선이 사과했다고 하나 도대체 뭘 사과했다는 말이냐. 과연 조선이 불교계를 음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걸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조계종이 자신들의 필요성에 따라 구독거부 운동을 활용한 것 아니냐는 뼈아픈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구독거부운동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과 싸운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신정아씨 의혹 관련 보도 몇 건 때문이 아니었다. 조선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국민분열을 획책하고 갈등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철저히 자사이기주의로 지면을 만든 데 대한 문제제기였다. 적어도 우리 봉은사는 그렇게 판단했다. 이에 대한 조선의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단 하루 만이라도 조선이 자사 지면에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사를 쓰기만 했다면 우리는 싸움을 접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상훈 사장의 사과방문으로 총무원이 철회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결국 조계종이 조선일보라는 외부의 타깃을 이용해 신정아씨 의혹으로 불거진 종단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이 관계자는 "그런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총무원 관계자도 "구독거부 실무를 추진한 직원들도 이번 철회 결정에 비판적이거나 아쉽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며 "의견수렴 과정에서 일부 스님은 '너무 빨리 정리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왼쪽)이 지난달 30일 신정아 의혹 관련 보도에 대해 사과하러 방문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등 일행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조계종이 왜 이런 철회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봉은사 관계자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대선정국과 맞물려 불교계가 정치적으로 개입되는 데 대한 부담이고, 둘째로는 한국 사회에서 조선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싸움을 이끌고 가는 것도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특정 스님과 조선일보의 인연도 거론했다.

그는 "신흥사 회주(법회의 주인) 오현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 회장인데 매년 백담사에서 만해축전을 조선과 공동주최해왔다"며 "오현 스님은 이번 방 사장의 사과방문과 구독거부 철회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중재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오현스님, 매년 만해축전 공동개최

조계종이 조선 구독거부 운동 방침을 밝힌 뒤 조선일보가 몇 차례 불교계를 옹호하는 기사를 쓴 것과 관련해 그는 "그것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런 기사는 낯간지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총무원 관계자는 "총무원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에 불교계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를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심어주는 등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고, 시기적으로도 부담이 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편, 1일 개원한 조계종 중앙종회(조계종의 질종의 의회)에서 스님 두 명이 조선 구독거부 운동을 추진했던  총무원에 대해 "지침만 내려놓고 뭐하느냐. 매일 통계도 내고 피드백도 전해주는 등 적극적이고 힘있게 구독거부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서면 정책질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오는 5일 속개되는 중앙종회에선 이 문제에 대한 내부 비판이 있을 것이라고 조계종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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