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흔히 '어항 속의 고래'에 비유하곤 한다. 좁은 시장에서 놀기에는 자산규모가 너무 크다는 의미에서다. 어항 속의 고래는 특히 주식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워낙 규모가 큰 탓에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면 손을 대는 종목마다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국민연금이 주요주주로 있는 종목들 가운데는 포스코나 KT 같은 덩치 큰 종목들도 있지만 유성기업이나 엠텍비전, 위닉스, 유니퀘스트 같은 생소한 중소형 종목들도 많다.

문제는 이 이익이 실현할 수 있는 이익이 아닐 수도 있다는데 있다. 언젠가는 사들인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할 텐데 그때는 오른 것 이상으로 주가가 빠질 가능성도 있다. 팔지도 못할 종목을 사서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규모는 37조원에 이른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더한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대략 1000조, 국민연금은 이미 3.7%를 차지하고 있다.

수익률 높으면 뭐하나 실현할 수 없는 이익인데

어항이 좁으니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모아서 외국의 자본시장에 투자한다는 것도 문제가 많다. 국민연금은 올해 4월 20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10년이면 300조원, 2012년이면 400조원, 2043년이면 2600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2600조원이면 국민총생산(GDP)의 44%에 이르는 규모다. 가뜩이나 국내는 유동성이 마르는데 그 유동성을 몰아서 해외로 끌고 나가면 어항에 물이 마르게 된다.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9일 국민연금의 올해 주식투자 수익률이 41.02%에 이른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수익은 9조6776억원.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 35.69%보다 5.33% 포인트나 높은 수익률이다. 주식과 채권 등을 포함한 금융부문 전체 수익률은 7.98%에 이른다.

전체 운용자산 대비 주식투자 비중은 지난해 말 11.6%에서 17.4%로 늘어났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까지 이 비중을 3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언론은 주식 투자 확대하라 주문

10일 아침 주요 언론은 환영 일색이다. 물론 투자를 잘 해서 높은 수익을 냈다는데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 조선일보 10월10일 14면.  
 

조선일보는 "국민들의 '쌈짓돈' 관리가 엉망이라는 비판에 주눅이 들었던 국민연금공단이 모처럼 활짝 웃게 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이런 결과도 외국 연기금과 비교하면 우등생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캘퍼스의 수익률(19%)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1% 포인트만 올려도 기금 고갈 시한을 2~3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세계일보 10월10일 16면.  
 

세계일보는 "국민연금의 순매수 상위 30개 종목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65%로 코스피지수 상승률의 1.5배에 이른다"며 "이 같은 수익률 확대는 올 들어 가장 크게 올랐던 중국 관련주식에 투자가 집중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후 곤두박질하는 주가를 떠받들며 저가매수에 나선 연기금이 오히려 큰 이익을 보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는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으로 외국인이 내다 던진 주식 1조7681억원어치를 사들였다"면서 "좋게 보면 ‘저가 매수’며 비판적으로 보면 무너지는 주식시장에 대한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머니투데이 10월10일 2면.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무엇보다 주식시장 활황 덕분이겠지만 고수익 주식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려온 덕분에 그나마 활황장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고 밝혔다. 매경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금 지배구조를 시급히 개선하고 주식 등 고수익 투자에 대한 비중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캘퍼스와 국민연금은 어떻게 다른가

매경 역시 캘퍼스의 사례를 들면서 "무엇보다 주식투자 비중이 40~60%로 높고 기금운용도 전문가의 전략적 배분계획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매경은 "기금 운용위원회가 '왜 주식투자를 해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일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어서는 더 이상 얘기가 안 된다"고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대부분 언론이 주식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수익률을 높여서 기금고갈 시점을 늦춰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언론은 노골적으로 위험자산 투자를 확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가가 영원히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필연적인 부담이다. 기금은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고 우리 다음 세대가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국민연금은 수정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뀌게 된다. 핵심은 인구 고령화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연금 체계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국부를 건 수익률 게임, 자산운용사들과 주식투자자들만 혜택

미국의 캘퍼스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캘퍼스는 특정 지역의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연금이지만 국민연금은 한 나라의 국민 전체의 미래가 걸린 연금이다.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는 우리 국민들의 미래를 담보로 한 수익률 게임이다. 이 수익률 게임은 한계가 분명하다. 어항 속의 고래처럼 국민연금의 움직임은 둔할 수밖에 없고 주가의 왜곡도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곳은 기금의 위탁 운용을 맡게 될 자산운용사와 주가 상승으로 재미를 볼 주식투자자들 뿐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이런 무분별한 수익률 게임에 쏟아붓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무책임하다.

2600조원이면 한 나라를 통째로 바꾸고도 남을 엄청난 규모의 돈이다. 언론은 왜 수익률 게임 이상의 대안을 고민하지 못하는가.

   
  ▲ 국민연금 투자 종목. 모두 32개, 시가총액은 5조가 넘는다. 5%가 안 된 종목들 가운데는 공시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 에프엔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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