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핫이슈라며 “막싸움 앞에 ‘실신KO패’ 당한 태권도의 굴욕”(2007년 10월 첫째주)이라는 제목의 ‘중앙SUNDAY’ 기사를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눈에 띄게 박스에 묶어 서비스하고 있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했지만 기사의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고 내용이 논리적 비약과 왜곡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중앙일보가 마치 대단한 기사라도 되는 양 특별하게 독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어 또 다른 각도에서 이 기사를 한번 살펴보자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기사의 제목만 보면 ‘태권도가 막싸움에 KO패’ 당한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며 일반독자들이 기사전부를 읽지않는만큼 제목의 왜곡이나 과장만으로도 심지어 소송감이 되기도 한다. 이 기사는 지난 9월29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1체육관에서 열린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16’ 시합에서 한국의 박용수 선수가 프랑스의 제롬 르 밴너 선수에게 1회 KO패 당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런 제목과 기사를 만들었다.

기사 내용 곳곳에 이런 표현들이 등장한다.
“요즘 성행하는 각종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태권도는 연전연패다.”
“태권도를 기본으로 하는 선수들이 ‘실신 KO패’를 당해 실려나가기 일쑤다.”
“태권도는 정말 싸움기술로는 적당하지 않은 무술인가?”
......

   
  ▲ 10월 첫째주 중앙SUNDAY  
 
기사와 달리 막싸움은 태권도 당할 수 없어

성미급한 독자를 위해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 막싸움은 태권도를 당할 수 없다. 막싸움과 태권도가 대결하면 태권도가 백전백승한다.

태권도는 싸움기술로도 탁월하며 세계의 유명 격투기 선수들은 앞다퉈 태권도의 발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K-1'의 전설 앤디 훅의 내려찍기, 휘돌려차기 등의 발차기 기술을 한번이라도 보았는가.

미국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에 퍼져있는 한국 태권도 사범들의 태권도 전파에 힘입어 이들은 태권도의 발차기를 배우고 타이복싱의 손,발 콤비네이션 기술, 무에타이, 복싱 등을 배워 종합격투기 무대에 진출한다.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선수들 대부분은 복싱, 태권도, 가라데, 쿵푸, 삼보, 합기도, 주짓수 등 안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다.

이 기사가 보다 정확하려면 ‘태권도 출신 신예 박용수가 이종격투기 베테랑 밴너에게 1회 케이오로 졌다’라는 정도다. 그러면 정통 태권도 국가상비군 출신 박용수는 왜 밴너에게 1회에 졌는가?

가장 큰 이유는 태권도 경기방식이 승부를 갈랐다. 먼저 태권도는 호구를 착용하고 경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태권도만 연마한 선수들은 맞는 법을 제대로 못배웠다. 이것은 맷집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또한 태권도는 주로 발로 포인트 위주로 시합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큰 충격을 가하기 보다 점수따기식 발차기로 한정된 부위만 공격하다보니 공격의 다양성과 데미지 등에 대한 연구와 연마가 부족한 편이다. 여기다 주먹가격은 웬만해서 점수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손기술은 무용지물이 됐다. 발이 중장거리 공격용이라면 접근전에서 화려한 연타로 마무리로 이끄는 것은 펀치다.

여기다 밴느는 막싸움꾼이 아니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밴느도 복싱과 태권도, 가라데의 발기술 등을 연마한 세계 수준급 강타자중의 강타자다. 가라데출신, 무에타이출신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맞붙은 풍부한 실전경험에서 나오는 전략, 전술과 강인함은 무대에 오른 박용수의 발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움과 장,단점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태권도는 강하지만 종합격투기 무대에 올라오면서 태권도 하나만 들고 나온다는 것은 스스로 ‘미래가 없는 단기상품’이라는 소리다. 중,하류급 선수들에게는 발 하나만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도 통할만큼 태권도의 발차기는 대단하다. 그러나 세계 수준급의 선수들, 이미 가라데, 태권도, 무에타이 등을 섭렵하거나 맛을 본 선수들과 맞선다는 것은 무지하거나 무모할 뿐이다.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선수가 ‘K-1'에 진출하면 어떻게 될까. 대단히 미안하지만 태권도 방식이 아닌 한 박용수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종합격투기에서는 얼마나 많은 무기(기술)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적용하여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제압하는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태권도에서처럼 머리나 몸통을 보호하는 ’프로텍트‘를 걸칠 수도 없고, 주먹을 그냥 덜렁거리게 놔둬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또한 ‘K-1'에 ’태권도가 없다, 끼지못한다‘고 한탄하고 있다.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K-1은 1993년 일본에서 시작된 이종격투기 대회다. 가라테(Karate)ㆍ킥복싱(Kickboxing)ㆍ쿵후(Kungfu)ㆍ권법(Kenpo)ㆍ격투기(Kakutouki) 등 입식 타격 무술의 머리글자 ‘K’와 최고를 뜻하는 숫자 ‘1’을 조합해 대회명을 만들었다. 여기에 태권도(Taekwondo)는 없다.

K-1은 가라테와 킥복싱을 수련한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2005ㆍ2006년 K-1 그랑프리 우승자 세미 슐트는 가라테 선수 출신이다. 1994ㆍ95ㆍ98년 챔피언 피터 아츠는 킥복싱 또는 무에타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속씨름 출신 최홍만, 팔씨름 챔피언 출신 게리 굿리지, 미식축구 출신 밥 샙 등도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투포환 국가대표(랜디 김), 오토바이 폭주족 출신(아마다 히로미), 스모 요코즈나(아케보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태권도는 왜 여기에 끼지 못했을까.”

K1 에 태권도 없다는 표현 적절하지 않아

보다시피 K-1은 일본에서 만든 상업용 ‘이종격투기 대회’다. 태권도는 가라데와 함께 세계 무술(martial arts)시장을 양분하고 있을 정도로 경쟁관계에 있고 기술도 서로 닮아있어 아마추어들에게는 잘 구분이 안될 정도다. 일본에서는 태권도가 가라데의 아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뭣 때문에 굳이 한국전통무예 태권도를 자기네들의 시장 대표 타이틀에 넣고자 하겠는가. ‘태권도가 없다’는 표현은 적절하지도 않지만 옳지도 않다.

'K-1 시장‘에 인기스타들중에 태권도의 기술을 연마한 선수들이 드물지않다. 앤디 훅을 비롯해 ’실신용 킥‘을 자랑하는 바디 하리, 불꽃 킥의 명수 크로 캅 등 이들의 화려한 킥이 바로 태권도 기술에서 나왔다.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태권도는 살아움직이며 그 우수성을 이미 널리 전파하고 있다.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한 명이 전혀 경기방식이 다른 링에서 이종격투기 고수에게 졌다고 마치 ’태권도가 KO' 당한 것 처럼 비약하는 것은 곤란하다.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을 붙잡고 물어보라. Korea는 몰라도 ‘Taekwondo'는 들어본 적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태권도는 모든 품세와 동작을 모두 한글로 하고 있으며 시합도 한글로 진행한다. 태권도를 배운다는 것은 곧 한국의 문화와 말을 배우는 것이다. 태권도가 한국 자국에서만큼 천대받고 비하받는 곳은 없다. 오리지널 태권도 한국에 유학와 보는 것이 전 세계 태권도 가족의 꿈이며 희망인데, 한국 언론은 틈만 나면 이렇게 한국 국기를 깔아뭉개고 비아냥한다.

태권도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으로 아마추어리즘에 갖힌 태권도, 호구를 차고 발만 주로 이용하는 답답한 경기방식, 태권도 행정을 둘러싼 잡음 등은 향후 한국 태권도가 시급하게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일본 스모출신 아케보노가 최홍만 선수에게 세 번 케이오로 모두 졌지만 일본 언론은 한국언론처럼 ‘스모가 한국 씨름에 KO패’라도 보도하지 않는다. ‘태권도가 막싸움꾼에게 KO패’라니...밴느가 기자에게는 그렇게 막싸움꾼으로만 보였는지. 경향신문도 2006년 9월10일 천하장사 출신 이태현이 데뷔전에서 패배하자 ‘한국씨름의 망신’ ‘데뷔전을 망쳤으니앞으로 프라이드에서 클 수 있는 길은 막혔다’ 등으로 비약과 단정적 표현으로 선수와 한국씨름을 난도질을 했다. 이 당시에도 ‘싸움’운운하며 종합격투기를 길거리 ‘싸움’판으로 묘사했다.

격투기 종목 기자들이 좀 더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주기를 희망한다. 종합격투기가 보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만한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제발 기자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 감정에 치우쳐 태권도나 씨름 등 한국 전통 무예를 폄하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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