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한판 크게 붙었다. 전경련이 작정한 듯 강공에 나선 것은 최근 공정위의 위상이 크게 축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친 기업 성향을 보였던 일부 언론은 노골적으로 전경련 편을 들고 나섰다. 전경련의 엄살에 한술 더 뜬 억지 주장도 눈에 띈다. 독점은 연구 개발의 결과이므로 독점 기업의 가격 결정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일부 언론은 연구개발을 하지 말란 말이냐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가 가격 규제하는 나라 세계 어디에도 없다"

논쟁의 발단은 공정위가 지난 8월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5조 2항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상품이나 용역 가격이 비용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거나 동종업계 평균에 비해 높을 경우 이를 정부가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가격 변경의 경우에만 가격 남용 여부를 적용했는데 개정안에서는 가격의 부당한 결정과 유지까지 확대했다.

   
  ▲ 한국경제 10월4일 1면.  
 
한국경제는 4일 1면 <공정위 제품 값 직접 규제 추진/재경부·재계 "반시장적 조치">에서 "기업의 창의적 활동과 경제의 동태적 효율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시도"라며 "정부가 직접 가격을 규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경은 이어 7면 머리기사 <원가 절감 노력 R&D 투자도 말란 이야기냐>에서 "위험을 무릅쓴 투자와 혁신을 통한 비용 절감으로 이윤을 늘리려는 기업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경은 "외국에서는 기술혁신에 따른 단기간의 독점을 '선'으로 보고 있다"며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인용, "단순한 독점력 소유와 독점 가격 부과는 위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 한국경제 10월4일 7면.  
 
"기술혁신에 따른 독점은 선이다"

동아일보도 이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동아는 4일 B1면 머리기사 <재계 "가격 규제 독소조항 그대로">에서 "가격이 높다고 규제하면 명품 브랜드는 나오지 못하고 신상품 및 신기술 개발을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화도 이뤄지기 힘들다"는 전경련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했다. 동아는 자신들이 이 사실을 단독 보도했음을 강조하면서 공정위 시행령 개정안 내용을 보도했던 9월6일자 기사를 그대로 옮겨 싣기도 했다.

머니투데이도 4일 2면 <공정위·재계 '가격 규제' 충돌>에서 "사실상 정부가 직접적으로 가격 규제를 하게 된다"며 "가격이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부인하고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규제한다면 기업의 창의적 활동과 경제의 효율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머니투데이 10월4일 2면.  
 
조선일보는 B02면 <전경련 "독과점 기업 가격 규제 강화는 사실상 가격 통제">에서 "가격남용 규제를 넘어 직접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상품 원가를 공개하라는 뜻"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논점을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지나친 비약이다. 독점 기업의 폭리를 막는 것과 원가 공개가 무슨 상관일까.

일부 언론이 전경련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담아낸 것과 달리 한겨레는 공정위의 반박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다. 한겨레는 4일 20면 <독점 가격 규제 한판 붙다>에서 "독과점적 사업자가 지배력을 남용하는 경우에만 규율하는 것으로 직접적인 가격 규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공정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조항을 살펴보자.

"제도적 또는 사실상의 진입장벽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래분야에 있어서 부당하게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가 공급에 필요한 비용에 비하여 현저하게 높고 동종 또는 유사업종의 통상적인 수준에 비하여 현저하게 높은 경우. 다만, 기술혁신·경영혁신 등을 통한 새로운 상품개발·비용절감으로 인하여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전경련의 주장과 달리 개정안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가격을 부당하게 높여 받는 경우를 규제하되 기술·경영혁신을 통한 경우는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는 경우를 규제한다는데, 그리고 기술과 경영혁신을 통한 경우를 제외하겠다는데 한경은 "기업의 창의적 활동과 경제의 동태적 효율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다. 동아는 "신상품 및 신기술 개발을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화도 이뤄지기 힘들다"는 전경련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는 경우에도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일까.

외국에는 직접적인 가격 규제가 없다는 한경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공정위에 따르면 독일은 경쟁제한방지법에서 '유효경쟁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대가 및 그밖의 거래조건을 요구하는 경우'를 규제하고 있다. EU(유럽연합)에서도 '불공정한 판매가격과 구매조건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를 규제하고 있다.

전경련의 보고서와 공정위의 반박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다.

배제적인 가격남용과 착취적인 가격남용

전경련은 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에만 가격을 규제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공정위 역시 특별한 경우에만 가격을 규제하겠다고 반박하고 있다. 동어반복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에 대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EU에서도 시장배제적인 가격남용에 대해서만 규제하고 있다"면서 "가격남용은 착취적인 성격에서 배제적인 성격으로 다시 정의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가격남용 규제가 배제적 행위만을 규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착취적 성격이란 독점 사업자가 임의로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많은 이윤을 얻는 행위를 말한다. 배제적 성격이란 독점 사업자가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후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경련은 배제적 성격의 가격남용을 제한하되 착취적 성격의 가격남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의 주장을 정리하면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고 자연스러운 독점과 독점의 이익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착취적 가격남용은 제한해서는 안된다?

공정위는 착취적 성격의 가격남용을 아예 규제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착취적 성격과 배제적 성격의 가격남용을 구분해서 규제하는 경우가 없다는 게 공정위 주장이다. 공정위는 "제도적 또는 사실상의 진입장벽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래분야"에만 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술혁신, 경영혁신 등을 통한 새로운 상품개발, 비용절감으로 인하여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전경련과 공정위의 상반된 입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주목할 부분은 언론이 이 논쟁을 다루는 방식이다.

다시 정리하면 논쟁의 핵심은 독점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공정위 입장은 일단 '비정상적인' 독점의 경우 '지나친' 이익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입장 대변하는 건 좋지만 최소한의 논리는 갖춰야

그런데 대부분 언론은 전후 맥락을 빼고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통제하려 한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전경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탓이다. "기업의 창의적 활동과 경제의 동태적 효율성에 치명타를 입힌다"거나 "가격통제가 연구개발 투자를 막는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의 논리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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