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이 타결되어 최종 협정문 서명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금속노조 소속 노동자와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소속 300여 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1시 께부터 서울 대학로·종로·광화문 등 도심 곳곳에서 집회와 행진을 벌이며 정부의 협상 강행을 규탄했다. 이날 오후 5시30분께 종로1가에 집결한 2만3000여 명(주최쪽 추산)의 집회 참석자들은 8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한미FTA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 2만3000여 명의 노동자·시민들이 29일 서울 종로1가에서 '한미FTA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한미FTA 협상의 원천 무효와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범국본은 결의문을 통해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모조리 받아들이고 망국적 한미FTA 재협상까지 끝내 최종 타결했다"면서 "지난 1년 6개월 간의 한미FTA 협상 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졸속으로 점철되었으며, 어떤 국익에 대한 고려나 원칙도 없이, 목표는 그저 '체결을 위한 체결' 오직 하나 뿐이었다는 것을 명명백백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범국본은 협상 결과에 대해 "공개된 협정문은, 그나마 수혜분야로 지목했던 자동차, 섬유 분야에서도 협상 이익은 불투명하거나 미세한 반면 이를 대가로 자동차세제 개편, 자동차 기술표준에 대한 제약, 사상초유의 스냅백 조항 수용, LMO 검역 사실상 포기 등의 어처구니 없는 협잡거래가 자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농업, 쇠고기, 의약품, 지적재산권 분야 등에서 한국이 입을 피해는 이루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을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범국본은 또 "협정문 속에는 '투자자 대 국가 제소' 제도의 도입과 사법주권의 무력화, 위생검역주권의 사실상 와해, 정책주권을 사실상 침해할 각종 위원회 설치 등을 통한 미국 개입의 중층적 구조화 등 국민주권을 기저에서부터 위협할 수 있는 각종 독소조항으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 '한미FTA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를 마치고 청와대 쪽으로 향하던 시위대가 광화문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범국본은 협상의 결과 뿐만 아니라 협상의 과정에서도 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주장했다. 범국본은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집회 참가자의 서울 상경을 각 지역에서부터 막아 나서는가 하면, 농민들이 십시일반 거둔 나락으로 만든 광고까지 불허했다"면서 "정당한 파업을 하는 금속노조에 대한 강경 탄압 방침, 범국본 대표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 오늘 총궐기를 막아서기 위해 이성을 상실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총칼'이 아닌 '악법과 돈'으로 새로운 독재의 시대를 열었다"고 규탄했다.

범국본은 마지막으로 △한미FTA 체결 즉각 중단 △오종렬·정광훈 범국본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철회 △금속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 △집회자유 보장 △졸속·밀실·매국적 한미FTA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 퇴진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오종렬 범국본 공동대표는 금속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한미FTA가 노동자의 노동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므로 노동권 교섭을 위해 노동자가 파업한 것"라면서 "노동자 단체행동권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금속노조 총파업에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자"고 말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울산에서 언론의 융단폭격을 딛고 현대자동차 동지들이 파업투쟁으로 떨쳐 일어나는 것을 봤다"면서 "민주노동당 대표로서 오늘 금속노조가 파업한 것은 정당하다는 점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또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미FTA 국회비준을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결의문 낭독으로 총궐기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청와대 앞으로 진출하기 위한 기습시위를 벌였다. 2000여 명의 시위대는 광화문 서대문 안국동 방면에서 '노무현 퇴진, 한미FTA 무효'를 외치며 차로를 가로질렀다. 800여 명의 시위대는 광화문사거리에서 한동안 연좌농성을 벌이다 강제연행을 경고하는 경찰병력에게 몰려 종각역 쪽으로 이동했다.  

   
  ▲ 한미FTA 저지 집회에 참가한 시민이 광화문사거리를 봉쇄한 경찰병력을 향해 집회·표현의 자유를 촉구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이 과정에서 인도에서 깃발을 들고 가던 민주노동당 관악지역위원회의 한 당원이 경찰에게 강제 연행당했고, 시위대를 촬영하던 민간인 복장의 경찰 채증반원이 적발돼 실랑이가 벌이지는 등 경찰과 시위대 간의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경찰과 한동안 대치하던 시위대는 오후 8시경 종로 보신각 앞에 집결해 정리집회를 열고 해산했다. 이날 시위를 취재하던 민중의소리 사진기자는 경찰이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맞아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한편, '한미 FTA 졸속체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도 29일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졸속으로 시작한 한미FTA협상이 고작 열흘만에 재협상을 완료하고 절차를 무시한 채 이틀만에 서명준비를 끝내는 등 졸속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면서 "미국 무역촉진권한(TPA)에 맞춘 협정문 서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상시국회의는 또 "정부가 국민적 우려와 반대를 무시한 채 협상체결을 강행한다면,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추진되어 온 한미 FTA 협상과정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기 위하여 즉각적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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