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 헐값 증여사건 항소심이 15일 열렸다.

서울고법 형사5부(조희대 부장판사)는 15일 오후 공소장 변경에 대한 검찰의 입장과 '이재용 현 삼성전자 전무· 이부진 현 호텔신라 상무의 개인 재산 관리 담당자'의 실체에 대한 검찰의 추가 증거 및 변호인측 답변을 받기로 하고 재판을 끝냈다.

석 달 만에 재개된 항소심은 다음 달 19일로 다시 연기됐다.

그러나 16일자 조간 중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그리고 경제지 중에선 아시아경제가 15일 항소심 결과를 보도했을 뿐이다. 단신기사들 속에서 그나마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아시아경제가 비중 있게 보도했다. 지면에 담을 만큼의 기사가치가 없었던 것일까.

   
  ▲ 조선일보 3월16일자 11면.  
 
   
  ▲ 아시아경제 3월16일자 13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은 삼성에버랜드가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에게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허태학 전 사장 등이 기소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지난 199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에버랜드 이사회는 전환사채 발행 결의 두 달 뒤 1주당 8만5000원 대로 평가되던 전환사채를 1주당 7700원에 재용씨 남매에게 넘겼다.

   
  ▲ 동아일보 3월16일자 1면(왼쪽) 경향신문 3월16일자 11면.  
 
이때 정상적으로 전환사채를 받을 수 있었던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도 갑자기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해, 홍 회장 몫까지 재용씨 남매가 배정 받았다. 이후 재용씨는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됐다. 재용씨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기점으로 해 순환출자 구조 속에서 삼성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8만5000원짜리 전환사채를 7700원에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기존 주주 25명이 동시에 포기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아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이 회장의 욕심 때문에 회사(삼성에버랜드)는 969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업무상 배임혐의를 받고 있는 데도 대다수의 경제지를 비롯해 조간신문들이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일부 언론사는 15일 저녁 인터넷에 항소심 기사를 출고했지만 정작 16일자 지면에는 그 기사를 싣지 않았다. 반면 독일 하노버로 몰려간 산업담당 기자들은 세빗(CeBIT) 정보통신박람회에서 나온 삼성전자의 세계일류화 선언을 전하기 바빴다.

한편 지난해 12월 에버랜드 사건 구형 때 취재진을 거세게 밀쳐 물의를 일으켰던 삼성은 이번 항소심에도 법원 주차장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연합뉴스는 16일 오전 송고한 기사 <법원 주차장까지 선점한 에버랜드 의전(?)/45분 공판 위해 22시간 법원 주차장 선점 >에서 "철저한 사전 집회 신고로 삼성 본관 앞마당을 독차지했던 삼성이 이번에는 45분간의 의전(儀典)을 위해 법원 주차장을 22시간 동안 선점했다"고 보도했다.

   
  법원 주차장 `선점'한 삼성 승용차 `에버랜드 사건' 공판이 열린 지난 15일 오후 서울법원 청사 내 주차장을 삼성직원들이 피고인인 전.현직 사장의 의전을 위해 전날부터 선점한 뒤 승용차를 주차해 놓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피고발인으로 돼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항소심 공판이 있던 15일 서울법원청사내 작은 주차장에는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승용차들로 가득찼다. 승용차 10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이 주차장은 고등법원 법정으로 바로 연결된다"며 "공간이 협소해 평소에도 민원인들과 소송 당사자들이 주차를 위해 수백미터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날도 오후 3시 에버랜드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 차량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고 전했다.

문제는 공판이 열리기 직전에 벌어졌다. 연합뉴스는 "공판 시작 몇 분전 법정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된 승용차 3∼4대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곧바로 나타난 에쿠스 승용차 2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며 "에쿠스 승용차는 다름 아닌 에버랜드 사건의 피고인들인 허태학ㆍ박노빈 전ㆍ현직 에버랜드 사장이 타고 온 차였다"고 보도했다.

삼성 에버랜드 관계자는 "의전을 위해 전날 오후 6시부터 회사 직원들의 차를 미리 주차시켜 놨다"고 시인했으며, 연합뉴스는 "불과 45분간의 의전을 위해 무려 22시간 동안 법원 주차장은 삼성의 앞마당이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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