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대선을 앞두고 언론이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과 정치권이 UCC 담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언론광장은 'UCC 담론 진단, UCC 공론장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한 창립 3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 주제 발표는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가운데)가 맡았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민경배 교수(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는 지난 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광장' 창립 3주년 기념 심포지엄 '왜곡된 UCC담론 진단: UCC 공론장은 가능한가'에서 "사용자 제작 콘텐츠인 UCC는 인터넷 초기부터 있어왔는데 언론이 마치 새로운 트렌드인 양 과장하고, 언론이 정치권과 함께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생산하는 UCC의 의미를 왜곡해 대선 홍보 동영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이창길 기자 photoeye@  
 
민 교수는 먼저 현재 동영상이 UCC를 주도하고 있지만 UCC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전제했다.

인터넷 사용 초기였던 1990년대 후반 포털의 카페서비스나 기사 댓글서비스를 통해 텍스트 중심으로 UCC가 태동했고, 2000년대 초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블로그·미니홈피의 사진· 패러디물 같은 이미지 기반의 UCC가 퍼지기 시작했으며, 2005년 이후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편집기의 대중화로 동영상 기반의 UCC가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민 교수에 따르면, UCC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으로 규정한 언론은 <올해 대선은 UCC가 좌우한다> <한나라당, 대선 앞두고 UCC 대책 부심> < 'UCC활용' 청와대 입성 지름길> 류의 보도를 통해 △UCC를 선거 전략의 핵심적 수단으로 간주하고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콘텐츠라는 의미가 아니라 선거 홍보물, 홍보 동영상으로 이해하고 △UCC를 동영상으로 한정짓고 있다.

민 교수는 "언론이 이야기하는 UCC는 엄밀한 의미의 UCC가 아닌 선거 홍보용 동영상 콘텐츠"라며 "언론이 동영상을 통해 이미지 홍보를 하겠다는 정치권의 잘못된 발상을 무비판적으로 옮겨 UCC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교수는 UCC의 공론장 기능과 관련해, "공청회에서 졸고 있는 번스 의원의 동영상과 조지 부시 대통령 국회 연설에서 졸고 있는 맥케인 의원의 동영상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전자는 여론을 악화시켰고 후자는 '부시의 연설이 얼마나 지루했으면' 하고  맥케인을 옹호하고 부시를 조롱하는 반응을 블러일으켰다"며 "네티즌은 주어진 정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맥락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능동적 행위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메시지와 철학은 없고 이미지만 있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의 동영상으로 네티즌들의 호감만 사면 끝이라는 정치권과, 말초적 재미와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인터넷기업 때문에 동영상 UCC문화가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민 교수는 "붉은 악마·촛불시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서귀포 부실급식 사건 등에서 보여지듯 텍스트와 이미지기반의 UCC는 공론장 기능을 수행해왔지만 동영상 기반의 UCC는 공론장의 무한한 잠재력이 싹도 틔우기 전에 상업화되거나 정치권의 홍보수단으로 되는 과정을 먼저 밟으면서 공론장의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지하철 결혼식 동영상, 여학생 성폭력 동영상, 개풍녀 동영상처럼 '낚시 동영상'만 성행하면서 동영상 UCC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최내현 한국인터넷컨텐츠협회장. ⓒ이창길 기자 photoeye@  
 
이날 토론자로 나온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은 몇몇 선거캠프에서 동영상을 만들어 네티즌이 만든 것처럼 유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인터넷은 시민사회의 쌍방향적 공론장의 성격이 있는데, 언론이 대선 UCC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이 네티즌을 가장하는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 편집장은 "2004년 총선 당시 정치권에서 일제히 자학과 동정을 컨셉트로 한 선거광고를 하며 감성에 호소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를 조롱하며, 거리를 두거나 이성적 논의 구조를 되살리려 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유치한 동영상을 유포한다면 거기에 대한 네티즌의 반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경인터넷 명승은 기자도 "인터넷은 공감의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공감을 얻지 못하는 동영상은 유통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당시 몇몇 언론이 포털에 '노 대통령 "양극화 책임없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송고했지만 몇몇 네티즌들이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언론의 짜맞추기 보도를 지적했고, 두 시간 만에 기사가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며 네티즌의 자정능력과 인터넷의 공론장 역할을 강조했다.

   
  ▲ 황용석 건국대 신방과 교수. ⓒ이창길 기자 photoeye@  
 
토론자로 나온 황용석 교수(건국대 신방과)는 이번 선거에서 동영상 UCC가 미디어 판도와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언급했다.

황 교수는 극적 승리로 상징되는 전당대회 효과가 주효했던 2002년 대선에서는 텔레비전 중계 토론과 인터넷이 차례로 영향을 미쳤고, 당시에는 시민단체와 논객이 주요 정치 이슈를 만들어 영향력을 미쳤지만 2007년 대선에서는 다양한 표현성을 가지고 있고, 여론의 일관성이 약하고, 감성에 영향받는 집단이 보편화돼 시민단체나 논객 같은 여론주도층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UCC에 주류미디어를 편집·가공·변형해 재해석하는 과정이 있는 만큼 텔레비전 토론이 재편집·가공되면서 매스미디어가 갖는 완전성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메시지와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또 개인적 이슈가 사회적 이슈로 의미가 바뀌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며 "우연함, 감성 등에 기댄 새로운 정치캠페인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유권자의 표현성이 높아진 것은 유의미한 정치적 변화지만 이용자의 표현성이 표출되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개인 이용자가 자기 정체성 높이는 것과 별개로 인터넷사업자가 정치중립성, 사회적 책무와 같은 미디어 책무시스템을 고민해야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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