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1. ‘합의추대’ 깜짝 발표, 아무도 몰랐나

7일 저녁 6시50분. 한겨레 사장후보의 공약을 듣는 합동토론회가 열린다는 방송이 사내에 나가자 한겨레 구성원들이 하나 둘씩 7층 편집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겨레 사장후보로 출마한 곽병찬 오귀환 서형수 후보가 편집국으로 들어왔고, 이들은 정견발표 대신 서형수 후보를 합의추대하고 나머지 두 후보가 사퇴한다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 한겨레 사장 선거에 나선 곽병찬(왼쪽부터) 오귀환 서형수 후보  
 
세 후보의 사인이 담긴 유인물을 받아든 직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발표 전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 후보의 선거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대리인조차 합의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동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기자는 “발표직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후보들의 돌출행동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궁금증2. 한겨레 위한 선택이냐, 이해가 맞아떨어진 야합이냐

한 편집국 기자는 “세 후보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선거가 계속 이대로 진행됐을 경우 한겨레 내부의 분열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2년 전 한겨레 선거에서도 파벌문화 비판과 세대교체론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신구세력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었다. 한겨레는 선거 이후 이 갈등을 봉합하기까지 커다란 진통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또 다른 양상도 나타났다.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면서 경영관리직 내에서 반편집국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중견기자는 “이전 선거가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위·아래의 갈등’이었다면, 이번에는 거기에 편집국과 비편집국으로 나뉘는 ‘좌·우의 갈등’이 더해졌다”고 표현했다.

후보들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거가 과열될 경우 한겨레를 흔드는 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사장이 되더라도 제대로 조직을 이끌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겨레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세 후보의 전격적인 합의를 한겨레의 분열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그러나 반면 이들 후보들의 합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쪽도 있다. ‘공론을 거치지 않는 후보들만의 야합’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선택권을 박탈당했다는 불만’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선거에서 불리한 후보들이 끝까지 가지 않고 투항하는 대신 자리를 보장받기로 한 것 아니냐”는 말들도 흘러나온다.

이런 의혹이 구성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만큼 후보들이 명확하게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겨레 겸임조합(노동조합과 사주조합의 결합체)은 8일 오후 세 후보에게 합의 배경과 과정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궁금증 3. 합의문에 담긴 핵심 내용은?

세 후보가 합의한 내용 중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임기는 전임대표의 잔여임기(1년)로 하며, 연임 불가 △임기 중 최우선적으로 통합적 리더십 창출을 제도화 △전면적인 인적쇄신, 신진세력의 혁신적 역량과 변화의 열망을 전면 반영 등이다.

전면적인 인적쇄신과 신진세력을 강조한 것은 한겨레 내부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열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기틀을 다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동안 연공서열에 의한 인사와 파벌문화가 한겨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었다.

새 대표이사의 최우선 과제를 ‘통합적 리더십 창출의 제도화’로 명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파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의 사장·편집국장 직선제 대신 구성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한겨레 시민편집인도 얼마 전 지면을 통해 한겨레 구성원뿐만 아니라 모든 한겨레의 주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새 사장 선출제도를 고민하자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었다.

대표이사의 임기를 이사회가 정한 3년의 임기가 아닌 전임 대표이사의 잔여임기인 1년으로 못 박은 것도 ‘정권’을 잡기보다 통합의 ‘디딤돌’을 만들자는 후보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세 후보는 배포한 유인물에서 “건강한 2기 한겨레 출범을 위한 씨앗이 되고, 마지막 선배 세대로서 분열의 확대 재생산을 막아보자는 데 합의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후보들이 임기를 자의적으로 합의한 것은 '월권'이라는 시각도 있다. 새 대표이사의 임기는 이사회의 추인을 얻어야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궁금증 4. 후보사퇴 했는데 선거는 어떻게 되나

두 후보가 사퇴 형식으로 서 후보를 합의추대하기로 했지만 선거는 예정대로 9일 세 후보를 대상으로 치러진다. 한겨레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 긴급회의를 열어 선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한겨레 사장선거 규정에는 후보가 1차 투표 전에 사퇴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 선관위 쪽은 "후보들의 합의에 의해 두 후보가 사퇴의사를 표명했다고 해서 선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권자들이 투표과정에서 이를 고려할 수는 있겠지만 선거 자체에는 아무런 효력도 없는 정치적 합의"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 후보의 합의가 아무런 법률적 효력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후보들의 의사를 무시한 투표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다만 후보들의 진정성에 대해 여전히 불신이 남아있고 복잡한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투표결과보다 투표율이 후보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임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치러지는 선거에서 한 후보가 투표인원에 상관  없이 유효투표인원의 과반수를 얻으면 당선이 되며, 만약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1·2위 후보를 대상으로 재투표에 들어간다. 재투표에서 동률이 나올 경우에는 규정에 따라 연장자가 사장으로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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