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형식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개봉 전부터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괴물'(감독 봉준호·29일 개봉)에는 기자·아나운서들의 카메오 출연이 많다. MBC 김수진 기자, KBS 김원장 기자, 경인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유형서 아나운서 등 8명의 기자와 아나운서들은 괴물의 공격과 그로 인한 인명 피해를 전하며 극중 사실감을 더한다. 그 중에서도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였던 최일구 MBC 인터넷뉴스센터 취재부장은 단연 눈에 띈다.

   
  ▲ ⓒ괴물공식 카페 http://cafe.naver.com/thehost.cafe  
 
뉴스 진행자 시절, 튀는 멘트로 화제가 됐던 최 전 앵커는 이번 영화에서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앵커 역을 맡아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9일 만난 최 전 앵커는 "영화 출연을 제안받았던 시기에 MBC는 사과방송을 여러 차례나 하면서 구성원들의 사기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MBC 이미지 제고에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해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 전 앵커는 "스크린쿼터 축소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 등으로 한국 영화가 어렵다"며 " '괴물이 한국 영화를 살리는 데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전 앵커와의 일문일답.

   
  ▲ 최일구 MBC 인터넷뉴스부장 ⓒ이선민 기자 jasmin@  
 
-영화 '괴물'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작년에 <뉴스데스크> 주말앵커를 끝내고 있었을 때, 봉준호 감독이 회사 선배들을 통해 '괴물'에 앵커역으로 출연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또 영화사에서 MBC 스튜디오와 로고를 쓸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스튜디오를 빌려주는 문제는 임원회의까지 가서 결정됐다. 내가 영화에 출연하느냐 마느냐는 나에게 달렸는데, 남세스럽기도 해서 고민했다. MBC는 작년에 사과방송을 7번이나 했고, KBS보다 시청률이 떨어져 사기도 떨어진 상황이었다. 또 봉준호 감독이 만든 '살인의 추억'을 여러번 봤는데, 정말 괜찮았다. 그런 봉준호 감독이 3년 만에 준비해서 만든 영화라면 '괴물'이든 '잉어'든간에 대박이 날 거라 생각했다. 만일 내가 안 한다고 했으면 다른 방송사 앵커가 했을 텐데, 다른 방송사에서 했다고 생각해봐라…. MBC 이미지 제고에 좋은 역할을 할 것이고, 좋은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남세스럽긴 했지만 출연을 결정했다."

-어떤 역할인가. 그리고 영화 출연은 처음인데 어땠나.

"보도국 김수진 기자와 함께 뉴스 앵커로 나와서 괴물의 출연과 피해상황을 보도하는 역할이다. 지난해 7월 MBC 스튜디오에서 <뉴스데스크>가 끝난 후 밤 10시부터 한 3시간 찍었는데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스워 보일 수 있으나 영화에서는 괴물이 나타나 나들이하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심각한 상황이었다. 감독이 대본을 고쳐서 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에게 코믹, 풍자 이런 것을 기대했을 테지만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고칠 엄두가 안 나더라."

-NG는 안 냈나.

"나는 NG 안 낸다(웃음). 하지만 뉴스를 진행할 때와 환경이 다르니 좀 떨리긴 떨리더라."

-왜 캐스팅됐다고 생각하나.

"내가 이상한 멘트를 했기 때문이지(웃음). 감독한테 묻지 않았지만 이심전심 아닐까 싶다."

-본인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모두 5신을 찍고 그중 4신이 나갔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머뭇거리는 행동을 주문했는데, 어제 영화를 보니 좀 어색하게 보이더라. 배우는 아무나 하나."

   
  ▲ 영화 '괴물' 포스터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나.

"300만원 받았다. 그 돈으로 '로케트를 녹여라'라는 자작 음반을 냈다. 79년도 대학 신입생 환영회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작곡한 노래인데, 그 노래로 장기자랑에서 1등 했었다."

-'괴물'은 어떤 영화인가. 

"칸영화제와 국내 기자시사회에서도 기립박수를 받았다. 내가 봐도 정말 잘 만든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킹콩', '고질라' 같은 괴수영화로 보일지 모르나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같은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기도 하고, 가족 내의 갈등과 휴머니즘을 다루면서 장르를 파괴한다. 한강을 소재로 해서 친근하기도 하고. 한국적 불록버스터가 될 것 같다."

-기자는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가상 현실이다. 어떤 기사에서 "믿을 수 없는 멘트를 가장 믿을 만하게 해주는 역할"이라고 말하던데,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가 가상 현실을 말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이었나. 

"세상은 물질로 이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엔 세상은 이야기로 구성된 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동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팩트를 전달하는 뉴스와 영화 '괴물'에서 전달하는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기자가 영화에 출연해 엉뚱한 멘트를 하는 것이 괴리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처음엔 고민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는 뉴스도 있지만 영화도 있다. 영화 한 편을 통해서 사람의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영화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100% 몰입해서 작업했다."

-영화에 또 출연할 생각 있나.

"아마 앵커가 영화에 출연해 '연기'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 허락하면 기왕 한 거 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MBC 기자로서 품격,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잃지 않는 범위에서 조직의 명예에 이롭다면 할 것이다."

-영화를 찍고 난 후,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영화 작업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추억이 됐다. 그리고 나와 MBC를 떠나 '괴물'이 정말 잘 됐으면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있는데, '괴물'이 한국 영화를 살리는 데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명이면 조명, 음향이면 음향,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이 많은데, 스태프의 연봉이 200만원이라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도 괴물이 정말 잘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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