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광주광역시 충장로를 찾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이렇게 읍소했다. 당시는 같은 당 이원영 의원의 '5.18 질서유지군' 발언으로 광주·전남 민심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솔직히 어려운 호소하러 왔습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한다고 합니다. 이제 막을 길은 없지만 열린우리당 후보가 광주시장이 되면 감히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패배시켰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광주시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역도 달라집니다. 광주가 다시 위대한 결단을 했다고 감동시켜 주십시오."

   
  ▲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지난 22일 광주 충장로에서 같은 당 조영택 광주시장 후보 지지유세를 하고 있다. ⓒ김종화 기자  
 
그러나 광주·전남지역 언론의 반응은 정 의장의 연설만큼 뜨겁지 않았다. 전남매일 박호재 편집국장은 지난 29일 "광주·전남을 제외한 다른 곳은 한나라당이 싹쓸이해도 괜찮은데, 열린우리당 후보가 광주시장이 되지 않으면 퇴행적 지역이기주의란 말인가"라며 "광주에도 다른 곳과 같은 잣대를 대라"고 꼬집었다.

박 국장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DJ와 거리 두기'가 이 쪽 민심을 자극한 것 같다. '탄핵정국 때 가혹하게 버린 민주당을 이번에는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는 민심이 저변에 깔려 있다"면서도 "민주당이 일정 정도 기득권을 확보한다 해도 과거처럼 신념 어린 지지가 아니기에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정 의장은 소속 의원들과 함께 30일 오전 광주를 다시 찾아 시장·구청장 후보와 함께 득표를 위한 마지막 총력을 기울였으나 투표일 이 곳의 여론을 전하는 언론인들의 반응은 어둡기만 했다.

   
  ▲ ⓒ김종화 기자  
 
광주일보 오주승 정치부장은 31일 "선거 결과가 아직 안나왔지만 여당에 대한 실망이 표로 많이 반영될 것 같다"며 "전남과 달리 광주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지지도가 비슷했는데 '5.18 질서유지군'과 '부산정권' 발언이 악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오 부장은 여당 지지도에 대해 "열린우리당 광주시장 후보 선출 이후 지지도 반등이 있을 것으로 봤는데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분위기가 나빠졌다"며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오 부장은 "이 쪽에서는 정계개편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본다. 김두관 최고위원 발언에서도 나타났지만 여당 내 영남과 호남의원들의 정서적 차이가 큰 것 같다"며 "불가피하게 사이가 벌어질 것으로 본다면, 이 쪽의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의원들이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공조하지 않을까 내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전남일보 오일종 정치부장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오 부장은 "전남은 농촌지역이고 노인분들도 많아 옛날처럼은 아니어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되살아났지만 광주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지지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면서 "그러던 중 이원영 의원의 발언이 나왔다. 그 전에는 열린우리당이 광주에서 구청장 두 곳 정도는 얻을 것으로 점쳐졌는데, 만약 이번에 한 곳도 얻지 못한다면 그 발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부장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 내지는 배신감이 상당히 강한 게 이 곳의 대체적인 흐름"이라며 "그러나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닌 여당에 대한 반감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해 다시 돌아가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오 부장은 "그러다보니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표가 30-40대 젊은 층에서 상당히 많이 나올 것"이라며 "공천과정에서 나온 여러가지 잡음들이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거 후 정계개편에 대해 오 부장은 "아무래도 이 곳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한 식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압도적인 대선후보 지지도를 얻고 있는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다시 합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오 부장은 "최근 김두관 최고위원 발언을 계기로 '옛날 개혁당 그룹과는 도저히 안되는 것 아니냐, 함께 할 수 없다면 이번 선거 끝나고 갈라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라며 "여당이 이번에 전국적으로 참담한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지나친 분파주의도 한 몫 했다"고 말했다.

오 부장은 "환상이 깨졌다"는 말로 현 상황을 요약했다.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하락해도 광주에서는 그래도 여당을 껴안고 문제들을 희석시켜 갔는데, '집권당 열린우리당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환상이 이번 선거과정에서 깨진 것 같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후 3시 현재 광주·전남지역 투표율은 광주 35.4%, 전남 52.2%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 투표율은 40.5%인 가운데 제주가 55.1%로 가장 높았고, 인천이 33.5%로 가장 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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