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따뜻한 훈풍이 불 것 같다." 21일 오후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 박근혜 대표는 한명숙 국무총리의 예방을 받고 덕담을 건넸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전부터 언론의 관심을 모은 사안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와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한명숙 총리는 삶의 궤적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성별은 같았지만 두 사람의 지향성은 많이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한명숙 "정치적으로는 박근혜 대표가 선배"

   
▲ 한명숙 신임 총리가 21일 취임 인사를 하기 위해 국회 한나라당 최고대표의원실에서 박근혜 대표를 만났다. 한 총리와 박 대표가 나란히 취재진을 향해 섰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오후 2시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은 포토라인에 맞춰 진을 치고 있었고 적지 않은 취재기자들도 현장에 있었다.

한나라당은 이방호 정책위의장과 이계진 대변인 등이 박근혜 대표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얼마 후 한명숙 총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현장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했고 박근혜 대표는 "눈 나빠지겠어요"라는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한명숙 총리는 "한나라당이 청문회를 잘 이끌어 온 것을 감사드린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됐다. 한나라당의 공격도 우리나라가 잘해 보자는 의미였고 저에게는 보약이 됐다"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는 "나이는 제가 많지만 정치적으로는 (박근혜 대표가) 선배 아니냐"며 "앞에서 개척해 나가면 역할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선거공정성 문제없었으면"…한명숙 "반대 목소리도 경청"

   
▲ 환담을 마친 박근혜 대표는 국민에게 따뜻한 훈풍이 불 것 같다며 한명숙 총리의 손을 잡았다. 10여분 남짓 걸린 환담 시간 내내 두 여성 정치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박근혜 대표는 "국익과 나라발전을 생각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은 여야가 다 똑같다. 청문회 때도 논란이 됐지만 청문회 기간 동안에 당정협의를 자제해서 선거공정성에 문제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는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 나온) 77표의 반대표도 저에게는 소중하다. 반대의 목소리도 귀중하게 생각하겠다. 원칙 있고 균형감각 있도록 노력할 테니 많이 도와달라"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는 이날 야당 대표들의 신임 인사의 첫 번째 대상으로 한나라당을 골랐다. 한나라당이 제1야당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들의 만남은 10분도 되지 않아 마무리 됐다.

민주화운동 함께 한 한명숙, 문성현

   
▲ 한명숙 신임 총리는 21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뒤 곧바로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사 대표실을 찾아 문성현 대표를 만났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한명숙 총리는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다른 야당 대표들과의 만남이 30분 단위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명숙 총리와 박근혜 대표의 만남의 '덕담' 위주였다면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와의 만남은 '동지적 유대감'이 주요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1980년대까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한명숙 총리가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사 4층 대표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문성현 대표는 반갑게 맞이했다.

한명숙 총리가 "민주노동당사는 처음"이라고 말하자 문성현 대표는 "예전에 민주당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사무실이고 이후에 권영길 대표와 김혜경 대표가 사용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문성현 "역사에 남는 총리 됐으면"…한명숙 "민노당 목소리 경청"

실제로 한명숙 총리와 문성현 대표가 함께 인사를 나눈 장소는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바로 그 사무실이었다. 문성현 대표는 "축하한다. 역사에 남는 총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는 "민주노동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답변했다.

문성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도 한때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지금의 운동에 대해) 잘 모르거나 판단이 다를 수는 있지만 민주노동당의 말, 노동자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농민, 민주노동당을 챙겨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한명숙 총리의 예방을 앞두고 KTX 여성 승무원들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최근 핵심 현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한명숙 총리가 여성총리로서 여성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점도 감안한 것이다.

문성현 대표 "KTX 여성 승무원 문제 해결 기대"

   
▲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한명숙 총리에게 KTX 승무원 문제 해결을 각별히 당부했다. 한 총리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답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문성현 대표는 "KTX 여성 승무원 문제도 마음을 잡으면 (해결이) 되는 문제이다. 마침 감사원도 긍정적으로 해결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는 "관심 깊이 기울이겠다. 취임 방문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 사안에 대해 정확히 보고를 받지 못했다. 종합적 보고를 받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한명숙 총리는 "우리 사회가 한쪽의 의견을 반영하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타협과 조정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겠다.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성현 대표는 "어려운 사람이 누구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이다. 의지만 갖고는 안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위해 흔적을 크게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성현 대표는 "저희는 지방선거에서 여성후보가 35%이다"라고 말하자 한명숙 총리는 "와! 박수"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문성현 대표와 한명숙 총리는 민주 대 반민주의 사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었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 함께 이뤄낼까 

그러나 지금은 다른 출발점에서 새로운 세상을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총리가 신임 인사차 정치권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로 찾게되는 정당이 됐다. 국민 지지율도 야당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정당이다.

한명숙 총리는 민주노동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은 10분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총리가 앞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펴 나간다면 두 사람이 의견을 교환했던 10분은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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