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그러나 장애 당사자들에게는 '축제'가 아닌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공동집행위원장 박경석, 420공동투쟁단)은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전집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주최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결의대회'였다.

   
▲ 서울역 광장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를 마친 중증장애인들이 수십 차례 경찰과 마찰을 빚으며 서울시청까지 행진을 벌였다. 흰색 천으로 싼 상자에는 지난 17일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하며 자른 자신의 머리카락을 담았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장애 노동 인권 시민 사회단체 회원, 민주노동당, 희망사회당 당원 등 500여명의 장애인 비장애인이 광장에 모였다. 이들의 형형색색 깃발들이 세찬 바람을 버티느라 힘찬 함성을 내질렀다.

이날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야만의 세월을 거슬러,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새 세상 건설하자!"는 투쟁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은 "올해도 어김없이 장애인의 날이, 아니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 돌아왔다"면서 "정부와 언론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의 달이라고 떠들어 대며 불쌍한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금을 모으기에 바쁘다"고 일침을 놓았다.

   
▲ 이들의 깊은 분노는 행진 대열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경찰과 방패 장막을 향한 것이 아닌 이 사회와 정부를 향해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결의문은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이웃의 모습에 박수를 치며 우리 사회가 기만에 빠져 있던 그 순간, 부산에서는 40대 아버지가, 서울에서는 70대 할아버지가 장애를 지니고 있는 자신의 아들과 손자의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면서 비참한 현실을 일깨웠다.

결의문은 이어 "사회에서 배제되고, 시설과 집안에 처박히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의 손에 의해 죽어가야만 하는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해, 이 땅의 정부와 우리 사회는 그저 안타깝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긴 후 다시금 경쟁력 강화와 2만불 시대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 37명 장애인의 머리카락이 숭례문 사거리에서 타올랐다.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참가자들은 거리행진을 벌이던 도중 한 쪽 차로를 막고 문화제를 열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이러한 '야만의 시대', '폭력의 사회'에 대해 무엇을 할 건인가를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장애아동을 둔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장애인의 기본적인 교육권 쟁취를 위해 37일간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진행하였고, 중증장애인 동지들은 찬 이슬을 맞으며 활동보조인을 권리로서 쟁취하기 위한 서울시청 앞 무기한 노숙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열망이 담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과 농성도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투쟁에 대해 우리 사회와 정부는 여전히 약간의 떡고물을 던져주며 무마하려 할뿐, 여전히 어떠한 성의 있는 답변도, 변화된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분노했다.

   
▲ 박경석 공동집행위원장은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를 뒤에 버려두고 가는 사회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으로 거리를 막아 나선다고 말한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그래서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장애인의 교육권을 말로써는 보장할 수 있지만 문서로서 약속할 수 없다는 교육부에 대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오페라하우스를 짓기 위해 1조원의 예산을 퍼부으면서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한 예산은 없다는 서울시에 대해, 장애인의 열망과 자기 선택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휴지조각을 만들어 버리려는 이 땅의 정부에 대해 더욱 가열찬 투쟁으로 화답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오늘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사회와 정부가 답을 하지 않는다면 '장애민중의 투쟁으로' 그 답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420공동투쟁단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이 세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고 있다. 매년 '장애인의 날'은 횟수를 거듭하겠지만 차별이 온존하는 한 이들의 투쟁은 더 뜨거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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