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의 '정회장 부자 불구속 방침' 보도에 정식으로 항의한다. 기사에 동의할 수 없다. 아니 검토한 바 없다."

대검찰청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지난 20일 기자들이 질문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날 한 석간신문의 보도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20일자 내일신문 '불구속기소 검토' 겨냥한 듯

   
▲ 한국일보 4월21일자 4면
기아차 정의선 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고 귀가한 이날, 조간에는 채동욱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의 '일침'이 일제히 주요 비중으로 실렸다. 한국일보 4면 박스 <"불구속 기사는 너무 앞질러가">, 한겨레 4면 머리기사 <"정회장 부자 모두 불구속? 동의할 수 없다"> 등이 그 예다. 언론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은 구속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검찰이 지적한 '일부 언론'은 20일자 내일신문인 것으로 보인다. 석간인 내일신문은 20일자 <정 회장 부자 불구속기소 검토>에서 "현대차그룹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1조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을 사회에 환원키로 함에 따라 정 회장 부자에 대한 검찰의 처벌수위가 주목된다"며 "검찰은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둘 다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선, "정의선 사장, 빚 편법탕감 일부 시인"

정의선 사장 소환 조사 결과 보도에서 가장 앞서나간 곳은 조선일보다. 조선은 이날 1면 <정의선 사장, 빚 편법탕감 일부 시인>에서 "정 사장은 현대차 계열사인 (주)위아와 (주)아주공업금속의 빚 550억 원 탕감 과정에 대해 임직원들로부터 수시로 보고 받은 사실을 일부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고개 숙인 정 사장의 사진과 함께였다.

그러나 정 사장은 비자금 조성이나 정·관계 로비 혐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조선은 보도했다.

대검 앞마당 장사진…한겨레, 기자수첩으로 '과잉경호' 지적

2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마당은 또 한번 홍역을 치렀다. '황태자'의 출두에 현대차 임직원들이 총출동했고 '과잉경호'는 또다시 몸싸움을 낳았다. 지난 8일 정몽구 회장 입국 당시 인천공항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한겨레 김태규 기자는 이날 기자칼럼 <정 사장 출석하던 날 '과잉경호' 활극>에서 "(정 사장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현대차 본사의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차와 10m 쯤 떨어진 곳에서 촬영하던 방송사 카메라기자 2명을 잡아채 화단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 엉켰고, 몸싸움은 주먹다짐으로 번졌다"고 전했다. 경비용역업체의 한 직원도 카메라 기자가 휘두른 주먹에 코를 얻어맞았다고 한다.

김 기자는 "이날 소동은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주인 행세를 하며 기업을 사유화한 '황제경영'의 한 단면인 것 같아 씁쓸했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단죄를 받는 자리에서도 정 사장은 여전히 '황태자'였다"고 꼬집었다. 

21일자 경향신문 3면에는 줄지어 서있는 현대·기아차 직원들의 사진이 실렸다. 제목은 <사장님…우리 사장님>으로 "정 사장 신변 보호를 위해 줄지어 서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포토라인'을 둘러싼 기싸움은 검찰과 정 사장 사이에서도 있었다. 정 사장 일행은 이날 오전 처음에는 후문에는 차를 세웠다가 "정문을 통해 민원실로 들어오라"는 대검 수사팀의 제지에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렸다. 이에 대해 경향은 "본격적인 신문에 앞서 정사장의 기를 꺾어놓겠다는 검찰의 의도가 엿보였다"고 해석했다.

국민·동아·조선 "고려대, 출교조치 당연"…남의 일 아니다?

   
▲ 조선일보 4월21일자 사설
<교수 감금한 학생 출교 당연하다>, <대학을 탈선 운동권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교수 감금·폭행 악습 뿌리 뽑아야>. 교수들을 잡아둔 학생들에게 고려대가 '출교'라는 듣기에도 생소한 중징계를 내린 데 대해 동아, 조선,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 신문들은 고려대, 연세대, 한세대 등 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 동아일보 4월21일자 사설
동아는 "아무리 사제 관계가 흐트러졌다고 해도 학생이 교수를 감금한 일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며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다시금 과격성을 드러낸 학생들을 중징계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도 "학문의 장인 캠퍼스에서 학생이 스승을 인질로 잡고 투쟁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야말로 교권유린이고 학생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패륜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운동권 경력을 훈장 삼아 지금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사람들처럼 끼리끼리 모여 예의범절을 모르는 상스러운 몸가짐을 익히고, 자기 나라 역사를 불의와 기회주의가 승리한 역사라고 쓴 걸 역사책이라고 읽고, 세계의 기운에 대한 시대착오적 토론을 벌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단락이 그 부분이다.

   
▲ 국민일보 4월21일 사설
한겨레·한국·경향 "삼성 이건희 회장도 하지 않은 짓"

반면 한겨레는 사설 <고려대, 학내갈등에 '출교'는 지나치다>에서 "학생들이 교수들을 가둬놓고 자신들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학생들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최고 수위의 징계권으로 맞대응하는 건 다분히 감정적이며 비교육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사설 끝부분에 "고대는 지난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박사 수여식 방해시위 가담 학생들을 징계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덧붙였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은 기자칼럼으로 고대의 조치를 비판했다. 한국일보 안형영 기자는 '기자의 눈' <고대 출교조치 유감>에서 "출교는 학생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 잘못이 아무리 무겁다 해도 한 번의 잘못으로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뽑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출교는 학적 자체가 없어져 재학했다는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도 없고 재입학 및 다른 대학 편입도 불가능해지는 조치다.

안 기자도 "삼성 이건희 회장도 지난해 명예철학 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난동에 대해 '젊은이들의 혈기로 알겠다'며 아량을 베풀었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조현철 기자는 <'교육의 목표' 포기한 고려대 '출교조치'>에서 "캠퍼스는 시끄러웠으나 어윤대 총장 등 일부 보직교수들이 일본 MK택시를 벤치마킹한다며 출국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대화창구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동아·한국 "브로커 윤상림 수사 '용두사미'?"

'태산명동서일필'. 브로커 윤상림씨 수사가 싱겁게 막을 내리게 됐다는 기사를 한국일보는 이렇게 시작했다. '태산명동서일필'은 처음 시작할 때는 마치 큰 일이라도 하려는 듯 태산이 울릴 정도로 요란을 떨더니 막상 마치고 보니 겨우 쥐 한 마리 잡았다는 뜻이다.

한국은 8면 <윤상림 수사 '싱거운 결말'>에서 "권력자들이 개입한 '게이트'로 비화할 것 같았던 초기 분위기에 비하면 결말은 기대 이하"라고 지적하고 "검찰이 윤씨와 전·현직 판·검사의 돈 거래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인상을 줘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을 남기기도 했다"고 썼다.

동아일보도 12면에 <윤상림 수사 소문만 무성한 채 끝?>이라는 제목으로 검찰이 13건만 추가 기소하고 이번 사건을 조만간 마무리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