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5년간 대통령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의 문턱까지 갔다가 낙마했던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한국 정치의 굵은 물줄기를 탔던 정당의 최고위급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두 사람의 정치원로가 최근 '우국충정'을 담은 입장을 잇따라 내놓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민주주의이념연구회 창립대회에 참석해서 "친북 좌익세력이 더 이상 이 나라를 휘두르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경계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친북 좌익세력이 큰소리 치는 정체불명 세상"

   
▲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 이념연구회 발족식에서 격려사를 하는 동안 황장엽씨가 단상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이 나라는 친북 좌익세력이 큰소리치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나라가 됐다"며 "다 죽어 가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지금까지 연명시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지른 역사적 죄악"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집권 이후 '친북 좌익세력' 큰소리치는 정체불명의 사회. 전직 대통령이자 한 때 지지율 90%를 넘어섰던 인기 대통령의 현실 진단이다. 그는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주역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사적 죄악'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정치원로의 '격정'을 정치적 수사로 이해해야 할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은 뿌리를 둔 정당의 대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이회창 전 총재의 시각을 보자. 그는 지난 13일 극동포럼 주최의 조찬 강연회에서 "좌파정권을 종식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체제를 양보해서라도 통일이 지상과제라는 친북좌파의 사고는 역사의 흐름에 시대착오"이라고 주장했다.

이회창 "3기 좌파정권 막아야 미래 있어"

이회창 전 총재는 "2007년 대선은 친북 좌파세력 대 비 좌파세력의 대결로 갈 것"이라며 "비 좌파세력의 연대를 구축해 3기 좌파정권을 막아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고 21세기 도약의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지난 대선에서 1143만여표를 얻은 인물이다. 우리나라 유권자 절반 가까이는 그를 지지했다. 2002년 거세게 몰아쳤던 '노풍'이 아니었다면 그는 청와대의 주인이 됐을 것이다. 그는 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규정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의 제3기 좌파정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남달랐던 두 명의 정치원로는 현 시국을 '위기국면'으로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정치를 떠났던 이회창 전 총재는 사실상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우익의 집권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종철 민노당 서울시장 후보 "나이든 스킨헤드"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김종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는 "냉전시대의 끝물을 타고 있는 것이다. 점잖은 척하는 수구세력에게 철학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들은(김영삼, 이회창은)  법을 공부한 '스킨헤드'"라고 주장했다. 김종철 후보는 "법이 사상을 탄압해주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이지 법이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나이든 '스킨헤드'가 돼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미국의 말을 더 잘 듣는 정부, 보수 수구 세력을 대변하는 정부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들의 행동은 자신의 의식수준을 반영하는 정상적 행동"이라며 "수구세력은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좌파로 몰면서 냉전수구세력이 다시 집권해서 역사를 되돌리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김영삼, 이회창 두 사람의 얘기를 그냥 흘려 버리기 어려운 것은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현실인식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가정은 없다. 그러나 이회창 전 총재가 대통령이 돼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면 이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이며 그 결과가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부르는 것은 난센스"

두 사람의 입을 모아 비판했던 노무현 정부는 30% 내외의 낮은 지지율을 받고 있는 '인기 없는 정부'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지적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좌파정부이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좌파적 정책과 배치되는 정책을 내놓기 때문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협공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 속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노풍'의 근원도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정치가 바뀌고 결국에는 국민들이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기대가 근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기간 동안 우리사회의 변화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했고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으려는 노력 등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한미 FTA에 사활을 건 정부를 향해 '좌파정부'?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기대를 충족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열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국정 하반기의 중점적인 목표로 잡고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한 사회양극화는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사활을 걸고 있는 참여정부를 향해 '좌파정부'라고 규정하며 보수우익 총궐기를 부추기고 있는 전직 대통령과 대통령 문턱까지 갔던 원로 정치인의 주장은 우리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냉전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빗나간 현실인식이 정치원로의 입을 통해 그대로 전파되고 있는 현실에 참여정부와 현 집권 세력도 책임의 예외일 수는 없다.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은 경청할 대목이다.

임종인 "진정 개혁적인 정책 못 펴고 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현 정부는 우파정부"라고 규정했다. 그는 "보수수구세력의 몸부림이 계속되는 이유는 현 정부가 진정 개혁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더욱더 개혁적인 정부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종인 의원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을 보라. 한미 FTA를 추진하는 현 정부가 좌파정부가 될 수 있느냐"며 "사상과 양심을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을 갖고 있는 지금은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