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초 서울중앙지법이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일부 삭제판결을 내리자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 문화·언론계가 후끈했다. 그러한 논쟁에 이어 이번에는 MBC드라마 '영웅시대' 조기종영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확히 표현해 일부 신문들이 실체가 불명확한 '외압설'을 들고 나와 '영웅시대'의 조기종영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중 동아일보는 '영웅시대' 종영에 강한 '음모론'을 제기하며 '확인되지 않는' 적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표현의 자유'를 비판의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영웅시대 연기자 반발 이유 있다" 사설서 "외압 있었다면 표현의 자유 위협"

   
▲ 동아일보 2월16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16일자 사설 <'영웅시대' 연기자 반발 이유 있다>에서 " '영웅시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서울시장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된다는 '정치적 외압설'이 파다했던 드라마"라며 "작가가 시사했던 대로 "여권으로부터 조심해서 쓰라"는 외압이 있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드라마 한 편이 이처럼 논란이 되는 것은 '영웅시대'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성을 띤 드라마가 외압설과 함께 조기 종영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 끝났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만약 동아일보의 주장대로 정부 여당 쪽에서 드라마 제작에 압력을 가했다면 이는 물론 표현의 자유 침해다. 하지만 김현미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이 16일 오전 정치적 외압설을 일축하는 등 아직까지 외압설의 실체가 밝혀진 바가 없다. 동아일보 사설도 구체적인 근거는 들고 있지 않다. 즉 동아일보는 불명확한 '설'와 관련해서도 표현의 자유 침해를 걱정할 정도로 이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주창하는 '표현의 자유'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불과 얼마 전 명백하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 당한 '그때 그사람들 가위질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가 취했던 입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 그사람들' 반발엔 이유가 없나?

   
▲ 동아일보 2월2일자 사설
지난 2일자 동아일보는 한국일보 세계일보와 함께 사설에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법원의 삭제 판결을 지지하고 나선 바 있다. 이날짜 전국단위 조간종합신문 9개지 중 8개지가 사설로 이 사안을 다뤘는데,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는 법원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거리를 두는 입장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이날짜 사설 <블랙 코미디와 다큐는 구분해야>에서 "아버지의 공과(功過)와 관계없이 사인(私人)으로 살려는 유족의 인격권도 중요할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외설 표현물을 규제하듯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며 법원의 판결을 지지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주인공을 풍자하고 실제와 다르게 사실을 비튼 블랙 코미디의 내용이 일부 다큐멘터리 장면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비친다면 예술의 진실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영화는 시작과 함께 자막을 통해 '세부사항과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세 장면이나 넣었는지 의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관객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블랙 코미디는 블랙 코미디로 끝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블랙 코미디는 블랙 코미디로 끝나야 할 뿐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넣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며, 이에 따라 우민한 백성을 위해 국가가 블랙 코미디와 다큐멘터리를 구분해 준 판결을 지지한 이 사설은 영화 제작기법의 다양성을 무시한 반문화적 발언이다. 2005년에도 이러한 사설이 주요 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은 영화사가 길이 기억할만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박정희 묘사 유불리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거?

물론 예술 작품으로 인한 명예훼손 논란과 정치적 외압설 논란은 성격이 다른 점은 있으나 작품 외적 이유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논란이라는 점에서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서는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외설 표현물을 규제하듯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영웅시대'에 대해서는 "작가가 시사했던 대로 '여권으로부터 조심해서 쓰라'는 외압이 있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두 작품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태도 때문인 것은 아닌가. 주지하다시피 '그때 그사람들'은 박 대통령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반면, '영웅시대'는 박 대통령을 미화시키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박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묘사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동아일보 2월16일자 사설 <'영웅시대' 연기자 반발 이유 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끝나는 MBC 드라마 '영웅시대'의 출연자들이 집단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MBC가 '편당 3∼5분씩 길게 제작했다'는 이유로 연출자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하자 연기자 20여 명이 철회를 요구하며 한때 야외촬영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는 연기자들의 단순한 불만 표출로 볼 사안이 아니다. '영웅시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서울시장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終映)된다는 '정치적 외압설(外壓說)'이 파다했던 드라마다. 여기에 연출자에게 '불이익'까지 돌아가게 되자 연기자들이 연대해 '정치적 행동'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출연료를 받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이 방송사와 정면충돌해 연출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낸 것이다.

본란은 지난달 초 MBC가 종영 외압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물은 바 있다. 작가가 시사했던 대로 "여권으로부터 조심해서 쓰라"는 외압이 있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MBC의 설명대로 경쟁력 부족이 종영 이유라면 MBC는 시청자에 이어 연기자까지 속인 부도덕성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종영 결정 당시 17.2%나 되는 시청률을 무시했던 MBC는 종영 방침을 연기자들에게 통보하면서 "시청률 20%를 넘으면 예정대로 100회까지 방영한다"던 약속 또한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22%에 이른다.

드라마 한 편이 이처럼 논란이 되는 것은 '영웅시대'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성을 띤 드라마가 외압설과 함께 조기 종영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 끝났어야 한다.

동아일보 2월2일자 사설 <블랙 코미디와 다큐는 구분해야>

영화 '그때 그사람들' 가처분 결정을 놓고 법원이 표현의 자유와 사자(死者) 및 유족의 인격권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나라를 18년 동안 통치한 역사적 인물로서 학문적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다양한 예술 장르의 소재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이 삭제하도록 한 다큐멘터리 세 장면에는 유족인 박근혜 박지만 씨 모습이 보인다. 박지만 씨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공과(功過)와 관계없이 사인(私人)으로 살려는 유족의 인격권도 중요할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버무리는 기법이 예술 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도 극적 효과를 위해 사실을 비틀어 사건을 변화시킨 '의사(擬似) 역사(pseudo-history)' 영화가 할리우드에 흔하다. 그러나 주인공을 풍자하고 실제와 다르게 사실을 비튼 블랙 코미디의 내용이 일부 다큐멘터리 장면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비친다면 예술의 진실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자막을 통해 "세부사항과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세 장면이나 넣었는지 의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관객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블랙 코미디는 블랙 코미디로 끝나야 한다.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외설 표현물을 규제하듯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가처분 결정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중요한 판례로 상급심에서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그때 그 사람들'의 시대는 갔지만 '그때의 그들'은 지금의 현실 속에서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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