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없는 iTV 마지막 고별방송
전파없는 iTV 마지막 고별방송
31일 오전 11시12분…"이렇게 방송이 끝나다니..."

2004년 12월31일 지상파 방송사 하나가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재허가 추천을 놓고 SBS와 강원민방 등과 함께 2차 의견청취 대상으로 선정됐던 iTV(경인방송)가 청문에서도 방송사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오늘만은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이상희 아나운서가 노조 차원에서 마련된 자체 고별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아나운서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김상만 기자
   
▲ 취재진들의 관심도 여느 때와 다르게 뜨거웠다. ⓒ김상만 기자
이날 오전 10시 30분 iTV 본사 정문 앞에는 보도국 제작국 기술국 선후배들과 그 가족들, 프리랜서 PD와 작가, 출연진 등 150여명이 모여 iTV의 마지막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iTV의 마지막 방송은 <사랑릴레이 함께 하는 세상>이었다.

전국언론노조 iTV지부(위원장 이훈기)는 회사측의 직장폐쇄조치로 출입문이 굳게 잠겨있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앞 주차장에 대형화면을 세웠다. 영하 2도의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게 느껴졌다. 가운데 임시로 지핀 모닥불로 언 발을 겨우 녹이면서도 모두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지만 차마 돌아볼 용기가 없는지 다들 그렇게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 iTV에 출연했던 개그맨 겸 가수 이동우씨가 iTV 가족들을 위로하는 모습. ⓒ김상만 기자
드디어 오전 11시10분 방송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예정된 방송이 모두 끝났다. 파란 화면에 방송사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해 12월31일로 방송이 중단되게 됐다며 좋은 프로그램으로 보답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사과 글이 자막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애국가 1절. 애국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 무렵 화면은 이미 검게 변했고 더 이상 화면도, 소리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방송이 끝나는 거야? 7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일해왔는데 고작 이렇게…." 뒤에서 들린 작고 허탈한 소리는 점점 메아리가 됐고 이곳 저곳에서 한탄과 아쉬움의 소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덧 대형화면이 설치된 곳 옆에서는 iTV 노조에서 준비한 자체 고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회는 유형서 이상희 아나운서가 맡았다. 전파로 쏘아지지 않는 마지막 iTV 고별방송이었다. 조합원과 가족들이 나와 서로에게 정말 좋은 방송 만드는 날까지 모두 건강하라고, 다시 모여서 크게 한번 웃어보자고 말하고 있었다.

"애국가 4절까지 듣고 싶은 적은 처음"

같이 자리한 정호식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은 "애국가를 4절까지 듣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고 아쉽다고 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iTV의 모든 조합원들이 당당해 보이는 것은 참된 방송을 하려는 뜨거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꼭 성과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도 "언론노조 중앙의 책임자로서 이렇게까지 사태를 몰고 온 것에 대해 자리에 모인 조합원과 가족들, 시청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관련부처와 시민단체, 학계, 언론계의 뜻을 모아 iTV 사태해결을 앞당기는데 온 힘을 쏟겠다"고 격려했다.

   
▲ 모친의 병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합원을 돕기위해 고별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사랑의 장미> 부스. ⓒ김상만 기자
iTV 조합원들과 가족들은 자체 고별행사가 끝나자 iTV 정문 앞에 장미꽃을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망의 나무에 소원을 적어 매달았다. 희망의 나무는 금세 '이 날이 방송인으로서 2번째 생일이 되길 기도합니다' '꼭 다시 만나서 좋은 방송 만들어요' 'iTV 내 친정 같은 곳, 경인방송의 봄을 기다립니다' 와 같은 소망들로 가득 채워졌다.

껄끄러운 밥알을 씹고 있기가 불편해서 점심이나 먹고 가라는 iTV 선배의 권유를 뒤로했다. 그리고 걸어나오면서 차가운 고철덩이 문에 장미꽃이 피어나듯, 종이 나무에 희망열매들이 하나 둘 열리듯, 경영진과 노조원들을 비롯한 모든 iTV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른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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