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만 생각하면 조선일보는 "앞이 캄캄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급진적이고, 과거회귀적이며, 반(反)시장적인 '집권당 프로그램' "에 따라 "국내 좌익과 평양 정권이 그토록 원하던" 국보법 폐지에다 "학교 주인과 고유의 설립정신을 없애자는" 사립학교법, 그리고 "비판 신문에 족쇄를 채우고 모든 신문을 사실상 획일화·공영화하겠다는" 언론법안과 "그들에게 '까불던' 기득권층을 손보는 데 더없이 유용한 무기가 될" 과거사법을 무작정 밀어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독약을 먹여놓고도 경제가 저절로 살아서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구제불능" 아닌가. (조선일보 <변용식 칼럼: 왜 앞이 캄캄한가> 2004.11.8)
 

   
▲ 조선일보 12월9일자 사설
구제불능 정권 때문에 조선일보는 밥맛도 잃었다. 들리느니 "다들 희망이 없다"는 야단 뿐. "솥단지 시위를 벌인 영세식당 주인 아줌마들은 다시 말할 게 없다. 택시 기사는 승객이 타면서부터 내릴 때까지, 길을 막는 시위대를 향해, 이런 세상을 만든 지도자를 향해, 육두문자로 욕설을 내뱉는다. 가스가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그러나 진짜 병통은 따로 있다. 그것은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병"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믿음도 없다. 믿음 없이는 희망도 자라지 못한다. 말이 통하고, 말이 돌아야 나라가 산다"는데....(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말이 안 통한다> 2004.11.27)
 
말이 통하지 않는 데는 '민족 민주 민중' 같은 정체성조차 불투명한 낱말들이 지성의 외피를 두르고 행세하는 이 땅의 반지성적인 태도에도 원인이 있다. 조선일보적 어법에 의하면, '민족'은 " '대한민국 무장해제시켜, 김정일 폭정 연장시키자'는 속임수의 겉치장일 뿐"이요, '민주'는 "전체주의적 선동"에 " '민주'를 가장한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민중'은 잘사는 사람을 적대하는 "지난 세기 혁명독재론의 아류일 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자신의 정체를 정직하게 커밍아웃하지 않고 모호한 발뺌으로만 일관해 혼선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빌어먹을~.(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정체성의 위장과 혼선> 2004.11.30)
 
이처럼 좌편향의 길로만 치우치는 '노무현호'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음을 이들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미국으로 세계를 삼은 조선일보에게 미국이 이전에 눈감아 줬던 한국의 우라늄분리실험을 새삼 들쑤시며 '안보리 회부' 운운한 것은 "한국이 이제 그들의 눈에 더 이상 우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경고음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미국의 네오콘들은 노 정권을 가리켜 '탈레반' '홍위병'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줄을 잘못 섰거나 바꿔서 선" 노무현 대통령 탓이 아니라면 누구 탓이란 말인가.(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좌향좌의 대가> 2004.9.16)
 
이 모양 대한민국이 대책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경제는 양극화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그놈의 4대 입법 때문에 "국민이 갈리고 사회가 찢기고 나라가 싸움터로 변"하는 극한 대립이 야기됐다. 이게 다 "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운운하며 혼란을 선동하고, "경제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귀를 닫고, 자신의 할 일을 국회에 떠미는" 무능한 대통령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좀체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나라 형편이라고 달라질 리가 있겠는가.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 생각이 달라질 게 없다면> 2004.11.27)
 
노 대통령을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시각이 이러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의 김정일 정권이나 좋아할 국보법폐지 등 4대 개혁법안을 밀어부치는 데만 혈안이 돼 있고, 엉망진창인 나라경제는 뒷전이다. 민족 민주 민중 같은 붉으스레한 말들로 자신의 정체를 포장하고 세계가 우려하는 좌평향의 길로만 달려가다 보니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고 국제적인 고립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야말로 먹통이다. 먹통도 이런 먹통이 없다. 오죽하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옛 구호까지 떠올렸겠는가.(조선일보 <사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옛 구호가 떠오르는 세상> 2004.11.11)
 
그런 조선일보 입에서 느닷없이 노무현 대통령을 칭찬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암호명 '동방계획'으로 극비리에 수행된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방문을 두고 나온 말이다. 9일자 사설 제목부터가 <대통령 자이툰부대 방문 잘했다>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당연한 일' '반가운 소식' '대통령 말 그대로다' '올바른 현실인식' 등의 여간해선 듣기 어려운 극찬들을 토해내며 노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웠다. 왠지 낯뜨겁고 민망하다. 눈앞이 캄캄하고, 말이 안통하며, 정체가 수상하다더니 이번 일을 계기로 심청을 만난 심봉사 마냥 갑자기 눈이 트이고, 말빨이 통하며, 정체가 분명해졌는가. 참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다.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문한별(문성) 씨는 언론수용자의 권익찾기 운동을 벌이는 (사)언론인권센터(www.presswatch.or.kr)의 대외협력위원장입니다. 블로그 주소는 blog.empas.com/kolbe1251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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