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최민근 PD와 조홍근 PD가 5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박서연 기자.
▲(왼쪽부터) 최민근 PD와 조홍근 PD가 5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박서연 기자.

“결과가 어떻든 간에 절대 개입하지 말자.” 인간이 아닌 MBC AI PD ‘엠파고’에게 관찰 예능 프로그램 ‘PD가 사라졌다!’ 제작을 맡기기로 한 후, MBC ‘인간’ PD들은 프로그램 제작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출연진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거 방송 나갈 수 있어?”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27일 시작해 3부작으로 방송된다. 엠파고는 AI PD이자 진행자로 등장해 출연자 10명에게 다양한 게임 미션을 부여한다. 프로그램 제작과 진행 등 단계마다 AI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출연진 모집 공고문을 AI가 직접 작성했고, 그날 찍은 영상을 AI가 7~8분 이내 곧바로 편집한다. 통상 인지도와 경력에 따라 산정되는 출연료를 AI가 정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예산을 따내기 위한 PT부터 엠파고 학습, 촬영까지 6개월이 걸렸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MBC 투자제작팀의 최민근·조흥준 PD를 지난 5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났다.

▲엠파고 PD가 만든 출연자 모집 공고 포스터. ⓒMBC
▲엠파고 PD가 만든 출연자 모집 공고 포스터. ⓒMBC

-어쩌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나.

최민근=“2022년부터 챗GPT에 관심 있었다. 지난해 5월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인간처럼 사고하는 게 놀라웠다.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제시하는 것에 충격받았다. 향후 AI가 연출과 제작을 다 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우리가 흔히 창의적인 부분은 인간이 맡는다고 생각하는데, 창의적인 부분도 AI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최근 생성형 영상 AI 소라가 입력 값 외의 것을 내놓더라. 지난해 4월부터 엠파고를 세팅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계속 나눴는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미션을 계속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신입사원 엠파고 PD는 어떻게 만든 건가.

최민근=“챗GPT 기반이다.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작업은 AI 기업 클레온이 맡았다. 클레온은 (AI가)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엠파고의 뇌와 비주얼을 만들었다. (김건희 서울대 컴퓨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만든) 리플AI는 촬영본을 실시간 편집하고, 촬영 분량, 리액션 등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산정하기도 했다. 연구원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키워드로 정리해 엠파고에게 학습시켰다.”

▲MBC AI PD 엠파고가 출연진 10명에게 미션을 주고 있는 모습. ⓒMBC
▲MBC AI PD 엠파고가 출연진 10명에게 미션을 주고 있는 모습. ⓒMBC

-출연진 섭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최민근·조흥준=“엠파고는 MBC 신입 PD 콘셉트다. 구성하고 짜내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캐스팅을 해보라고 했더니 조정석, 강호동, 유재석 등을 거론하더라. ‘너무 출연료가 비싸다’ ‘조금 더 합리적으로 해봐’ 등을 지시했고, 그에 따라 나온 후보자들과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한 사람들이 함께하게 됐다.”

-출연진에게 중간중간 피드백을 줬나.

조흥준=“기획할 때부터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 엄청 있었다. 저는 인간 PD가 장치를 밀어 넣어야 하지 않냐고 적극 이야기 했는데, 최민근 PD는 저를 적극 막았다. 요즘 예능스러운 장치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간 PD가 개입하는 순간 진실성을 의심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육면체로 스튜디오를 만든 이유 역시 출연자들끼리 서로를 보라는 의도였다. 저희가 출연자 눈을 마주치면 지시하고 싶을까봐 출연자만 들어갔다.”

최민근=“PD들끼리 결심한 게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개입하지 말자’였다. 정육면체 공간은 AI PD의 능력을 보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출연자의 감정변화와 갈등을 보고 싶었다. 사람이 쏘는 조명, 사람이 든 카메라도 전혀 없었다. 작가도 없었다.”

▲2억 원을 들여 정육면체 세트를 만들었다. 세트 안에는 출연자 10명만 들어갔다. 인간 PD와 작가, 조명 감독, 촬영 감독 등은 세트에 들어가지 않았다. ⓒMBC
▲2억 원을 들여 정육면체 세트를 만들었다. 세트 안에는 출연자 10명만 들어갔다. 인간 PD와 작가, 조명 감독, 촬영 감독 등은 세트에 들어가지 않았다. ⓒMBC

-미션을 수정해달라고 출연진이 말하자, 엠파고는 “제 말을 따르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융통성 없는 거 아닌가.

최민근=“융통성이 없었다. 특히 첫 촬영 때는 더 심했다. 그러나 이후 3일간 출연진 10명의 특성을 학습했고 이후 촬영에서는 더 사람답게 조금 변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AI에 대한 불만보다 구성원들 간의 불화가 시작됐다. 한 달 정도만 계속 찍을 수 있었더라면 엠파고가 출연자들을 더 공부해서 인간답게 미션을 줄 수 있었을 거다. 발전하는 모습이 무섭고 소름 끼쳤다.”

▲엠파고 PD가 출연자 10명의 출연료를 산정했다. ⓒMBC
▲엠파고 PD가 출연자 10명의 출연료를 산정했다. ⓒMBC

-출연료를 AI가 산정했다.

최민근=“예능 프로그램 오래 하다 보면 출연진에 대한 금액이 어느 정도 잡힌다. 실력 좋은 분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연차나 인지도에 따라 책정되는 측면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파고가 분량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내서 출연료로 산정했다. 일종의 성과제라고 볼 수 있다. 냉정하긴 해도 너의 능력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이 프로그램이 나오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최민근=“2022년 가을에 챗GPT가 나오면서 AI에 관심이 생겼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서 AI 콘텐츠 제작을 위한 공모전에 참여했다. PT를 거쳐 2023년 4월 채택돼 4억 원을 투자받았다.”

조흥준=“정육면체 LED 세트에 2억 원을 투자했다. 원래 처음엔 첫 촬영 끝나고 엠파고가 학습해서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면 한 달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월요일 녹화 후 수, 목, 금에 학습시키고 금에 녹화를 다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출연진의 피드백이 있었나.

최민근=“욕먹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김영철씨가 제일 힘들어했다. ‘진짜 사나이’만큼 힘들다고 하더라. 김영철씨는 1회 찍고 ‘답답해서 못 나오겠다’, ‘인간적으로 못 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알던 방송 문법이 아닌 거다. SBS 라디오 스튜디오 찾아가서 해야한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2회차부터는 엠파고 PD를 따라가게 되면서 출연자들 사이 갈등이 생긴다. 어느새 ‘왜 우리끼리 싸우고 있지?’ ‘이런 분열은 어떻게 생겨난 거지?’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두 번째 촬영 후 출연진이 어색하게 헤어졌다. 분열과 갈등의 시작이다.”

조흥준=“오히려 초보 방송인들이 재밌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도 두 분류로 나뉘었다. 힘의길, 강한은 재밌다고 이야기하고 윤비, 이라경은 우리가 재밌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계속 부딪히게 된다. AI가 시키는 대로만 해도 재밌다는 부류와 AI 말만 들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부류로 나뉜 거다. 다가올 AI 시대의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사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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