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진/본지 객원논설위원
마음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한 빈자(貧者)의 이야기가 경기침체의 여파로 팍팍해진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방송사에서 계약직 운전사로 일하는 이광범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39세의 이광범씨는 아직 미혼이지만 노모와 조카 2명을 뒷바라지 하는 실질적 가장이다. 2천5백만원짜리 전세집에서 120만원 안팎의 월급으로 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물질적으로는 매우 궁핍한 편이지만, 매월 월급에서 25만원 가량을 모교와 사회단체 등에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비번인 날에는 장애인 목욕 봉사에도 나서고 있으며, 뇌성마비 장애인 자활단체의 살림까지 맡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인 기사 하나가 가뜩이나 우울한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다. 국내 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접대비 규모는 해마다 크게 늘리면서 기부금은 대폭 줄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법인 전체의 접대비 총액은 5조4504억원으로 지난 2000년의 4조354억원보다 35.1%나 증가했다. 특히 룸살롱을 포함한 사치 향락성 업소에서 이뤄진 법인카드 사용액이 1조6144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급증한 접대비, 줄어든 기부금

반면 지난해 기업들의 기부금 총액은 2조2135억원으로 2000년의 2조4104억원보다 오히려 8.2%나 줄었다. 더구나 반기보고서에 근거한 10대 재벌기업들의 올 상반기 기부금 총액은 전년 동기보다 3.9%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올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기업정서를 들먹이며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볼멘 소리를 해대던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의 아전인수격 현실 인식의 진면목이 한순간에 드러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기업정서란 활자가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그 근거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 사실 국민들은 기업활동이 경제성장에 기여함은 물론 고용창출의 원천이기 때문에 많은 호감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정경유착이나 부당거래, 분식회계, 재벌총수의 전횡에 대하여는 이구동성으로 부정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들은 시장경제와 원활한 기업활동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정과 불법에 대한 반감이 있을 뿐, 반기업정서는 없다.

존경받는 기업 ·기업가의 덕목

그럼에도 재계가 진정 반기업정서를 걱정한다면 애꿎은 국민들만 탓할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사회적 존경을 받기 위한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과도한 접대비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아름다운 기부 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발적인 노력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부자로 죽은 사람은 가장 불명예스럽게 죽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던 철강왕 카네기, 어두운 과거를 딛고 자선사업가로 불리길 원했던 록펠러 등 아름다운 나눔에 익숙했던 부자 기업가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품위 있는 부자들과 기업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전통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나눔의 삶을 실천했던 마더 테레사 수녀는 나눔은 우리를 진정한 부자로 만들며, 나누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또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고 말했다. 기부 문화는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일 뿐 아니라 부의 효율적 재분배 수단인 것이다. 나눔의 실천을 통해 마음까지 풍요로워진 진정한 부자들과 기업가들과의 보다 빠른 조우(遭遇)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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