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 심의가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자율적 심의가 도입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방통심의위가 지난달 발간한 ‘해외 시사·보도프로그램에 대한 내용규제 현황 연구’(한국언론학회 연구수행) 연구보고서는 해외의 시사·보도프로그램 방송심의 실태를 정리하고 총 12명의 전문가(언론학자, 변호사) 인터뷰를 담았다. 연구보고서는 “시사보도 영역의 방송심의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투쟁의 최전선이 돼버렸다”며 국내 심의 제도를 개선하는 데 참고할 내용을 파악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해외에선 시사보도 프로그램 ‘최소제재·자율규제’가 원칙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행정제재는 최소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뉴스 진실성은 저널리즘의 영역이라는 전제 하에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한다. 규제기구를 통한 행정제재는 대부분 명백한 법률 위반일 경우로 한정하며,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법제도적 장치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심의를 사실상 하지 않는다. 연방정부 주도의 방송심의 제도가 없고 방송사 자율심의가 원칙이다. 다만 독립기관인 연방통신위원회(FCC) 차원에서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방송사업자에게 독점금지, 공시의무 등을 부여한다. 도박, 음란물, 사기 등 불법적인 활동을 방송한 경우 사후 벌금을 부과하거나 방송사 면허를 취소하기도 한다. 따라서 방송 내용으로 인한 민원이 있을 경우 법원의 소송을 통해 구제받아야 한다.

영국은 자율규제기구인 독립언론모니터(IMPRESS)가 자율규제 및 사후제재의 역할을 담당한다. 방송규제기구인 Ofcom은 시사·보도 프로그램 심의는 하지 않지만, IMPRESS의 자율규제에도 불구하고 시사·보도 프로그램 불법성, 유해성 관련 민원이 발생하면 이를 처리하기 위한 심의를 한다. 

Ofcom은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대상에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방송국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국제방송인 ‘러시아 투데이(Russia Today)’에서 반복적으로 선전선동 관련 보도를 송출한 것이 불편부당성 위반으로 판단돼 벌금과 TV면허가 취소됐다. 다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반적으로는 IMPRESS에 의한 자율규제를 실시한다. 

프랑스도 자율규제기구가 잘 마련돼 있지만, 정치적 다원주의 구현을 위해 방송위원회(CSA)에서 방송사별로 균형 있는 방송시간의 배분을 하도록 하고 결과를 확인한다. 보도 윤리 위반에 대해선 방송규제기관이 다양성 반영을 위해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행정규제기구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으로는 여성의 권리, 모든 유형의 차별에 대한 투쟁, 장애인들의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권 보장 등과 같은 구체적 사항들을 명시하고 있다. 시사·보도프로그램 규제와 관련해선 2022년 방송통신 영역의 콘텐츠에 대한 통합적 규제를 담당하는 신설기구 ARCOM이 출범했다.

“시사보도 프로 자율규제 도입 절실…어린이 청소년 보호 등 중심 심의 필요”

전문가들은 국내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내용규제 범위를 제한하거나 불법정보를 중심으로 심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방송심의에 적용되는 공정성 조항의 모호함을 지적하며 판결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례들을 심의에 적극 활용해 논란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연구진 인터뷰에 참여한 전문가 대다수는 방송의 공정성 심의가 잘 진행되기 위해선 심의 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여야 6대3 비율의 방통심의위 구성 등으로 인한 정파성 문제가 함께 해결돼야 공정성 부분 시비가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공정성 개념의 모호성 주관적 자의성, 방통심위의 정파적 구성으로 인해 공정성 관련 심의 결과는 항상 논란”이라며 “방통심위의 심의 제재 취소 청구 소송도 계속되고 있고 소송 결과 제재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해외 주요국은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면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강하게 책임을 부여하지만, 우리나라는 모호한 조항으로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공정성 규제로는 오히려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폭력성 및 선정성 등 조항을 제외하고는 자율적 내용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처럼 혐오 및 차별 표현 방지 조항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항목이 추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현행 심의규정 제27조(품위유지)에서 불쾌감과 혐오감을 언급하고 있으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반영한 조항이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적절한 규제 방안이 부재하다. 방송에서 혐오 표현이 사용돼 확산되지 않도록 심의 규정에 혐오 표현에 대한 내용이 보완돼야 한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내용규제는 궁극적으로 자율규제 방안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공정성 조항의 경우 무엇이 공정한지 정의하기 어려운 만큼 사실이 아닌 보도에 대한 부분의 객관성 측면만 살펴보고 나머지 부분은 언론사가 자율적 시스템 안에서 규제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심의 효율성 개선을 위해서라도 방통심의위 심의 의결 단계를 간소화하고 논쟁적 사항보다 꼭 지켜야 하는 객관성, 어린이 청소년 보호 등의 요소를 심의하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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