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4일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민정이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을 향해 “이동관씨”라고 했고 다음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같은당 의원 최강욱은 대통령을 가리켜 “윤석열씨”라고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제대로 된 호칭을 쓰지 않았다며 이들에게 항의했고, 이를 다룬 기사도 많이 나왔다. 

지난해 11월16일 전직 법무부 장관 조국은 SNS에 “윤석열씨”, “김건희씨”라고 써서 역시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한 언론사는 “현직 대통령과 영부인의 이름 뒤에 호칭없이 ‘씨’라고 표현한 것이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마치 ‘씨’를 호칭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대목이다. 국어학자들은 ‘씨’가 상대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사전 속 정의일 뿐이다. 논쟁의 분위기를 보면 ‘씨’는 멸칭(비난할 의도로 부르는 호칭)에 가까워 보인다. 

문제는 언론계가 정치인과 같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에게는 ‘대통령’ ‘여사’ 등 이름 뒤에 직업명이나 직함을 만들어 표기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이름 뒤에 ‘씨’를 붙여 표기한다는 점이다. 

권력자에겐 ‘이름+직책·직업’, 시민에겐 ‘이름+씨’

예시는 차고 넘친다. 지난 2007년 8월29일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선 경선 직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박근혜씨’로 각각 표기하자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동아일보와 전쟁’을 선포하며 강하게 항의한 일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로 ‘전관예우’하지 않았다는 비판인데, 박사모 입장에선 대선 경선에서 패배해 권력을 잃자 언론사에서 예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마다 대통령 배우자를 ‘씨’로 표기한 한겨레에 독자들이 ‘왜 여사라고 하지 않느냐’는 항의가 이어진 일이나 방송인 김어준이 ‘김건희씨’라고 부르자 여권에서 반발한 사례도 있다. 

이름 뒤에 ‘씨’가 아닌 ‘대표’ ‘대통령’ 등 직업명이나 직책이 나오거나 현재 직함이 없으면 ‘전 대표’ ‘전 대통령’ 등 전직 중 가장 높은 직책을 표기해 특별대우하는 ‘호칭의 위계서열’을 유지하는 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 한겨레가 창간 이래 대통령의 여성 배우자를 ‘씨’로 적던 표기법을 독자들 거센 요구에 ‘여사’로 바꿨지만 이게 호칭 논란의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인 이유다. 

▲ 전두환과 KBS ⓒ연합뉴스, KBS
▲ 전두환과 KBS ⓒ연합뉴스, KBS

새해 초부터 다시 호칭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4일 오후 KBS 뉴스책임자(통합뉴스룸 방송뉴스주간 김성진)가 ‘전두환씨’ 대신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표기하자는 공지를 내렸다. 그 이유로 “전 대통령은 존칭이 아니다. 대한민국 11, 12대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에 대한 지칭일 뿐”이라고 했다. 상대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 아니라 단지 대통령을 지냈다는 사실을 언급한 ‘지칭’이라는 주장이다. 

KBS에선 ‘전 대통령’이 호칭(존칭)이 아니라 과거 대통령을 지냈던 사실을 ‘지칭’할 뿐이라고 했지만 저널리즘 언어에서 ‘씨’가 존칭의 지위를 잃었고 특히 전두환에 대한 호칭 논란이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기에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이다.   

앞선 사례들과 같이 호칭 논란은 곧바로 진영논리로 포섭됐다. 민주당은 “전 씨는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이며, 1997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가내란죄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당한 자”라며 “KBS는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전 씨에게 대통령 호칭을 돌려주자는 말인가”(대변인 최민석)라고 KBS의 결정을 비판했다. 민주당 대변인 논평 역시 ‘호칭의 위계서열’을 전제하고 있다. 

호칭서열 없애고 이름만 표기해 통일하기

전두환에게는 ‘전 대통령’이라며 ‘전관예우’하는 언론사 기사에 ‘씨’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존재일까? 언론은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는가? 언론이 호칭으로 차별 관행을 없애기 위해 모든 사람을 ‘이름’만 표기하거나 ‘이름+씨’로 표기하는 방안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직업명이나 직책이 정보로서 필요할 땐 이름 앞에 적어주면 된다. 1980년대 매일경제 보도를 보면 “전 사장 정인영씨”와 같이 표기한 사례가 있다.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아니하고 (중략) 모두 한글로 쓰는 것은 남녀 상하귀천 없이 모두 보게” 하려고 만든 최초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은 “판사 이인우씨”처럼 ‘이름+씨’로 적었다. 현 대통령이든, 전직 대통령이든, 기존 언론이 직함을 붙이지 않던 평범한 시민이든 모두 ‘OOO’ 또는 ‘OOO 씨’로 하자는 뜻이다. 

용어 결정·사용은 언론의 권력 

언론이 곧 권력집단이라는 주장에는 여러 반론이 가능하지만 이처럼 명명·호명하는 권한을 행사할 때 언론은 권력이다. 호칭을 포함해 어떠한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는 언론이 가진 영향력이다.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원칙을 가져오면 언론 권력은 독자, 즉 평범한 다수 시민에게서 나와야 한다. 아울러 언론이 어떠한 언어를 사용할지 결정할 때 독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MBC는 지난 2022년 11월5일 뉴스데스크에서 ‘이태원 참사’ 대신 ‘10·29 참사’로 부르겠다고 밝혔다. “특정 지역 이름을 참사와 연결지어 낙인 찍는 부작용을 막고 해당 지역 주민과 상인에게 또 다른 고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라고 이유도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와 ‘10·29 참사’ 중 무엇이 적절한지 정답을 찾는 일보다 어떠한 표현을 왜 쓰기로 했는지 시민들에게 공지한 사실이 더 의미있다. 

뉴스에 사람이 등장할 때 기사 맥락과 공적 역할에 맞는 수식어를 쓸 필요도 있다. 언론에서 관행적으로 법조인을 기사에 쓸때 사법시험 합격 연도나 기수를 적고, 국회의원의 경우 초재선 여부나 당내 계파 등을 적는데 이러한 정보가 꼭 필요한 기사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거 어떤 재판에서 어떠한 판단을 한 법조인인지, 어떤 말을 했고 무슨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인지가 유권자들에게 더 필요한 정보일 수 있다. 

▲ 지난 4일 KBS 뉴스 갈무리
▲ 지난 4일 KBS 뉴스 갈무리

KBS 논란으로 돌아가보자. ‘전두환 전 대통령’ 표기 공지가 나오기 직전이던 지난 4일 오전, KBS에선 <전두환 마지막 추징금 55억 원…남은 867억 원은 어쩌나>란 리포트가 있었다. 해당 리포트에서 기자는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을 주동한 전두환 씨, 그가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 운동 재수사를 통해 받은 추징금은 2205억 원이다. 25년이 넘게 지났지만 환수에 성공한 건 1280억 원 수준”이라며 최근 재판 결과 55억 원이 더 추징되고 867억 원은 최종 미납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군사 반란과 광주 학살 등의 책임자로서 추징금을 선고받고, 그조차 내지 않은 범죄 소식을 전하는 이 기사에서 과연 ‘전 대통령’이 전두환을 수식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일까. 형식과 내용이 따로 있지 않고,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가 곧 정치행위다. 표기법만 바뀌는 게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울리는 기사로 편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두환씨’ 표기는 과거 KBS 기자들이 논의해 결정한 사안이다. 내부에서 이번 공지가 편집권 문제로 확산할까 우려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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