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기관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이 재판에서 취소되면서 방통위가 체면을 구기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21일 페이스북 아일랜드 리미티드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1, 2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유지했다.

방통위는 2018년 3월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 접속경로를 임의로 변경해 접속 속도가 떨어지는 피해가 발생했다며 과징금 3억9600만 원과 시정명령, 업무처리절차 개선을 명령했다. 같은 해 5월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면서 맞섰다.

접속경로 변경 사건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빚어진 논란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갑자기 페이스북 접속 속도가 크게 떨어져 영상 시청이 어려울 정도였다.

원인은 ‘캐시서버 갈등’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들은 통신망을 이용하는 대가로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낸다. 해외 서비스의 경우 이용자가 접속할 때마다 해외 서버에 접속하는 게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국내 통신사가 데이터를 복사해두는 ‘캐시서버’를 두면서 원활하게 이용하게 했다. 페이스북은 KT에 캐시서버를 두고 연 100억 원씩 낸 것으로 알려졌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들은 페이스북에 접속할 때마다 KT의 캐시서버를 이용했다.

▲ 페이스북 서비스 화면. 사진=PIXABAY.
▲ 페이스북 서비스 화면. 사진=PIXABAY.

페이스북 트래픽이 폭증함에 따라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도 캐시서버를 만들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페이스북은 SK와 LG 인터넷 가입자들의 접속경로를 KT가 아닌 해외로 돌렸고 그 결과 페이스북 접속이 크게 느려지는 등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실제 방통위 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의 페이스북 접속이 SK의 경우 4.5배, LG유플러스의 경우 2.4배 느려졌다.

방통위 제재의 근거는?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사업자들과 캐시서버 설치 및 비용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초래했다고 판단해 제재에 나섰다. 

▲ 2018년 3월 방통위 보도자료
▲ 2018년 3월 방통위 보도자료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국내 하루 이용자가 1200만 명에 달하는 등 영향력이 막강한 데다 10개월 동안 접속경로를 변경하고 방치한 점에서 전기통신사업법상 ‘중대한 불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시행령은 금지행위의 유형 중 하나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를 규정한다.

법원의 판단은 왜 달랐나?

재판의 쟁점은 접속경로 변경의 결과 ‘이용 제한 또는 중단’에 이르러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쳤는지’였다.

대법원은 “‘이용 제한’은 시기나 방법, 범위 등에 한계를 정해 이용을 못하게 막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용자체는 가능하지만, 이용에 영향을 미쳐 지연·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제한’의 의미로 보는 것은 해석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과징금 부과 등 처분은 이익을 침해하므로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즉 페이스북을 통한 영상 시청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게시글 업로드와 메시지 전송 정도는 가능했기에 ‘이용 제한’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왜 3심까지 갔나

방통위가 내리 패소하긴 했지만 1심과 2심 판결에 ‘이용 제한’에 대한 판단 차가 발생하면서 방통위는 소송을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원고(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은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지만 전기통신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50에 대해서만 한 것을 100에 대해서 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했다. 즉 ‘이용 제한’에는 해당되지만 ‘현저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2심 판결 직후 방통위 관계자는 “1심은 페이스북의 임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지연이나 불편은 있었으나 이용제한은 아니라고 봤으나 2심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행위가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서는 의미가 있다”며 “현저성에 대해서는 그 당시 피해를 입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재판부가 판단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후 방통위는 소송에서 이용자 피해를 강조하며 ‘현저성’을 입증하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이제 ‘접속변경’으로 서비스 느려져도 제재 못하나?

이번 판결에 따르면 통신사와 인터넷사업자가 캐시서버 설치에 합의하지 않고 국내 이용자를 해외 망에 접속하게 해 서비스가 몇배 이상 느려지더라도 ‘이용 제한’ 정도가 아니면 제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제재가 가능하다. 페이스북 제재와 소송이 이어지면서 2020년 국회가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이용자 수와 트래픽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의 경우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 이용자 요구사항처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해외사업자도 국내 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준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구글, 넷플릭스, 메타(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이다. 

대법원 역시 넷플릭스법을 언급하며 “관련 조항 신설 이전엔 사업자의 일방적인 접속경로 변경 행위에 대한 규율의 법적 공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 법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처벌 규정이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와 시정명령뿐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 서울 시내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서울 시내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반면 법 자체가 ‘과잉’이라는 견해도 있다. 2020년 오픈넷은 이 법에 관해 “접속 지연을 해소할 비용을 치를 수 있는 가진 자들의 통신을 선호하게 만들어 망중립성을 침해한다”고 했다. 망사용료에 비판적인 쪽에선 접속지연 사태의 원인을 한국의 ‘발신자종량제’로 보고 있다. ‘발신자종량제'는 데이터를 발생시킨 발신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제도로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킨 통신사의 부담이 늘어나고, 통신사들은 비용 부담을 유튜브,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CP(콘텐츠제공사업자)에게 전가하게 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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