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최근 지역소멸 문제와 지역정당(주민자치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칼럼이 연이어 실렸다. 다수의 칼럼에선 주체적 결정 구조 없이 거대 양당에 귀속된 지역 정치를 비판하며 독자성을 가진 지역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준만 교수 “지역정당에 대한 잔인한 오해”

대한민국 정당법 제1장 제3조는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두고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해 4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정당에 대한 군사정부의 국가주의적 규정이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거대 양당의 패권 유지에 그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 대가로 우리의 지방정치는 중앙을 향한 ‘민원정치’가 되어버렸다”며 “우리의 정치구조는 지방이 생존할 최소한의 정치적 활력의 공간조차 남겨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22일 칼럼 ‘강준만의 화이부동’ <‘지역정당’에 대한 잔인한 오해>에서 해당 견해가 서울의 정치적 식민지로 전락한 지방의 현실을 보여준다며 지역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지역정당’은 활동 무대가 지역이라는 의미일 뿐인데, 다수 한국인에겐 이미 지역정당이란 단어에 대한 강한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칼럼 갈무리.
▲ 경향신문 칼럼 갈무리.

강 교수는 “두 거대 전국정당이야말로 지금도 지역주의로 장사를 하는 정당이다. 지방언론의 주요 기사 제목만 살펴봐도 지방 정치권이 가장 신경쓰는 게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중앙 권력과의 관계”라며 “중앙의 한정된 부와 자원의 배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역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권장악 기여도, 이게 바로 지방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다. 주민자치정당은 바로 이런 행태에 정면 도전하는 풀뿌리운동”이라고 했다. 

지난 10월4일 헌법재판소는 지역정당 설립을 막고 있는 정당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에서 현행 정당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강 교수는 이를 두고 “거대 양당의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에 정면 도전하는 운동에 지역주의 심화 가능성을 제기한 게 놀라웠다. 거의 모든 언론이 관련 사설이나 칼럼조차 싣지 않을 정도로 이 결정의 의미를 외면하는 걸 보고 놀랐다”며 “지역정당 또는 주민자치정당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경계하는 게 좋겠지만 잔인한 오해만큼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경향 논설실장, 메가시티보다 지역정당 우선 

서의동 경향신문 논설실장은 같은 날 ‘서의동 칼럼’에서 <메가시티보다 지역정당이 우선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최근 김포의 서울 편입론 등으로 메가시티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정당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 경향신문 칼럼 갈무리.
▲ 경향신문 칼럼 갈무리.

서 논설실장은 “지방의 위기는 현지 특성을 살린 내생적·자율적 발전전략을 논의하고, 실천에 옮기는 지방의 주체적 의사결정구조가 세워지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렵다. 그 역할을 지역정당이 맡아야 한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세력을 결성해 지방의회 의원, 자치단체장, 나아가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를 내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정당의 선거 참여는 그 자체로 거대 양당을 견제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했다. 

서 논설실장은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정당 난립을 막는다며 정당법을 만들어 지역정당을 금지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계 주요국 중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찾기 어렵다. 경남 진주의 ‘진주같이’ 등 현재 활동 중인 지역정당들은 간판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다”며 “수도권에 대항할 거대도시를 만들자는 메가시티의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그러나 메가시티가 ‘관제 구조물’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정확히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독자성을 가진 지역정치가 필요하다. 메가시티보다 더 급한 건 정당법을 고쳐 지역정당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인 지난 23일 경향신문은 고영직 문학평론가의 칼럼 <지역소멸은 ‘서사의 소멸’이다>를 실었다. 고 평론가는 “1995년부터 지방자치체가 실시되고 있지만, 지방정부 수장이 아니라 단체장을 뽑는 반쪽짜리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역은 여전히 인사와 예산 등의 권한 행사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의존해야 한다”며 “‘기민(棄民)정책’에 가까운 정부의 정책 기조는 가뜩이나 상실감에 젖어 있는 지역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 평론가는 정부가 내년도 지방정부 교부금을 대폭 삭감한 것을 두고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 지역 스스로 각자도생하라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