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의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조이제 전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자신의 형사재판에서 위증했던 전직 서초구 공무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단독 여태곤 판사는 지난 11일 조 전 국장이 임아무개 전 서초구청 과장, 김아무개 전 서초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임·김 두 사람이 조 전 국장에게 공동하여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임·김 두 사람 위증으로 조 전 국장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행에 불필요한 방어를 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임·김은 조 전 국장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 2013년 9월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2013년 9월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국 뒤흔든 조선일보 1면 ‘채동욱 혼외자’

조선일보는 2013년 9월6일 1면에 <채동욱 검찰총장 婚外(혼외)아들 숨겼다>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10여년간 한 여성과 혼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은 사실을 숨겨왔다는 내용이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던 채 총장은 보도 일주일 만에 사퇴했다.

채동욱 혼외자 사건은 조선일보 보도 직후부터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파헤친 채동욱 총장을 찍어내려 정부 권력기관이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실제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청와대 관계자, 조 전 국장과 임 전 과장, 김 전 팀장 모두 처벌 받는 등 정권과 정보기관의 조직적 사찰이 확인된 사건이다. 조선일보 보도 후 이어진 국정감사에서는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외압을 폭로하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 조선일보 2013년 9월6일자 1면.
▲ 조선일보 2013년 9월6일자 1면.

조 전 국장은 ①국정원 국내정보담당관 송아무개씨에게 채 전 총장의 아들 채군의 개인정보를 제공한 혐의(① 공소사실), ②조오영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채군의 개인정보를 제공한 혐의(② 공소사실) 등으로 2014년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조 전 국장이 임·김 두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까닭은 두 사람이 조 전 국장의 형사재판 등에서 ① 공소사실에 관해 허위사실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정보관 송씨로부터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김 전 팀장에게 조회를 요청하고 채군 정보를 유출한 것은 임 전 과장인데, 이런 범행을 숨기고자 두 사람이 ① 공소사실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웠다는 것이다.

실제 1심 법원은 2014년 11월 김 전 팀장 진술을 근거로 ① 공소사실에 관해 조 전 국장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고 ② 공소사실에 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에 따라 조 전 국장은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2심 법원은 2016년 1월 ① 공소사실에 관한 김 전 팀장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고, ② 공소사실에 대해선 1심과 달리 유죄를 선고했다. 2심은 1심을 파기하고 조 전 국장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며 감형했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2017년 10월 ‘채동욱 혼외자 사건’에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의심된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를 권고했고, 서울중앙지검(검사장 윤석열)은 이듬해 임 전 과장과 김 전 팀장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가족관계등록법 위반, 위증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밖에도 검찰은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 국정원 간부들을 채동욱 혼외자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고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불법 조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임 전 과장은 2018년 7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그해 11월 2심에선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다. 임 전 과장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2019년 2월 상고 기각해 2심 판결이 확정됐다. 김 전 팀장의 경우 2019년 1월 1심에서 벌금 100만 원, 2020년 6월 2심에선 벌금 700만 원(확정)이 선고됐다. 임·김 두 사람 모두 조 전 국장에 대한 위증죄가 재판으로 확정된 것이다.

조 전 국장이 임·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심리한 여 판사는 11일 판결문을 통해 “원고(조이제)는 피고(임·김)의 위증으로 인해 자신이 실제 저지르지 않은 범행에 대해 불필요한 방어를 하게 됐고 그로 인한 추가 비용도 지출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사실과 무관한 ① 공소사실에 대해 피고들의 위증을 반박하면서 수사기관 및 법원을 상대로 변명을 해야 했던 점, 원고가 1심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 ① 공소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투는 취지로 진술한 것처럼 돼 양형에서 불이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는 피고들의 모해위증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여 판사는 임·김 두 사람이 조 전 국장에게 공동하여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서초구 공무원들 외에도 채동욱 혼외자 정보 유출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정보관 송씨와 조오영 전 행정관도 2021년 12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 700만 원이 각각 확정됐고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무죄,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 2014년 8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4년 8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혼외자로 채동욱 찍어내기? 황당하단 말도 아까워”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앙일보에 연재하는 회고록을 통해 정권의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을 부인했다. 지난 18일자 박근혜 회고록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채동욱 혼외자 논란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마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불만을 가진 청와대 측이 검찰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논란을 만들어낸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며 “검찰총장 임명 당시 그가 혼외자 문제에 얽히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만약 내가 이 의혹을 사전에 확실히 알았다면 채 총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오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올랐다고 해도 당연히 내정되지 않도록 조치했을 것”이라며 “채 총장의 사퇴를 전후로 불거진 ‘박 대통령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막기 위해 채 전 총장의 혼외자 논란을 터뜨린 뒤 찍어내게 했다’는 식의 낭설은 황당하다는 말조차 아깝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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