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년에 전국적으로 마라톤 붐이 불면서 해마다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수백개에 이른다. 마라톤 관련 사이트에 따르면, 10월10일 하루에만도 10여개 대회가 열렸다. 이 수백개 대회 중 각종 언론사가 여는 대회는 많아도 특정 언론사 반대를 표방하는 마라톤 대회는 '조선일보반대 춘천마라톤대회'가 유일하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회가 가능하고 올해의 경우 2400여명이 출전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그만큼 안티조선, 그리고  달리기 인구의 저변이 확산됐다는 방증이다. 참여자 대부분은 '안티조선'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보였지만, 마라톤 자체를 좋아하거나 '안티조선을 알고 싶어서' 참석한 사람들도 있었다. 충청 지역에서 온 한 참여자는 "작년에 같이 왔던 한 출전자는 안티조선 마라톤을 뛰고나서 1주일 후에는 조선일보 마라톤을 뛰기도 했다"고 전했다.  

10일 춘천 의암호반에서 열린 '제2회 조선일보반대 마라톤대회'의 이모저모를 정리했다.

영화배우 김부선씨 "언론개혁! 대마초 합법화!"

   
▲ 영화배우 김부선씨 ⓒ 이창길 기자
○…영화배우 김부선씨(43)는 이번 대회에서 단연 눈에 띈 출전자였다. 딸과 조카와 함께 대회에 출전한 김씨는 등에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쓰고 10km 코스를 완주했다. 김씨는 마라토너 황영조씨에게서 받았다는 운동화 한 켤레를 대회 상품으로 내놓았고, 경기 이후 문화제가 진행될 때는 춤을 추며 흥을 돋구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앞다퉈 김씨에게 "힘내라"고 응원했고 기념촬영을 요청했다.

김씨는 대회에 앞서 4일 라디오21과의 인터뷰(본지 10월7일자 보도)에서 안티조선 마라톤 참여의 이유에 대해 "언론개혁의 뜻과 취지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운동도 할 겸, 춘천 마라톤 코스가 무척 아름답다고 해서"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씨는 또 지난 7월 자신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됐을 때의 언론 보도에 대해 검찰의 입장만을 전하고 '작문'을 서슴지 않았다며 강한 불신을 토로했었다.

달리기를 마친 김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갔다가 오늘 대회를 위해 올라왔다"며 "영화 출연 이야기도 잘 되고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산영화제에서 굿데이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기에, '작문으로 보도한 신문과는 인터뷰 안 한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10일 춘천 의암호반 일대에서 열린 [조선일보 반대 춘천마라톤] 10km 종목에 참가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대마초와 관련해서 김씨는 "오는 12일 항소심과 함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과 관련한 재판이 예정돼 있다. 위헌법률심판이 안 되면 헌법소원으로 갈 생각"이라며 "그동안 예술가들이 대마초로 인해 너무 많이 당해왔는데 내가 마지막 대마초 전과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언론계 철인' 한명부 위원 "하프 쯤이야"

○…'언론계의 철인' '언론노조의 황영조'로 꼽히는 한명부(64)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외협력위원이 젊은 참가자들의 기를 죽이며(?) 실력 발휘를 했다. 한 위원은 "지난달 100km 산악마라톤을 한 뒤로 몸이 안 풀렸다"면서도 하프코스를 1시간25분대에 가뿐히 완주, 이 부문 10위(잠정)로 골인했다. 한 위원은 9월4일 제1회 양양설악컵 국제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최고령 선수로 출전, 13시간3분(200여명 중 11위)만에 산악지역 100km코스를 주파했다고 한다.

한 위원은 "젊었을 때 월남전에서 돌아와 극심한 우울증과 정신적 고통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위를 다 들어냈다"며 "그 뒤로 건강을 위해 30년간 마라톤을 해왔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이제까지 226km 철인3종경기(수영 3.9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 100km 마라톤, 자전거 1500km 전국순회 등을 모두 두 차례씩 완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30여 차례 뛴 마라톤 풀코스 중 최고기록은 2시간45분대. 
 
한 위원은 KBS 기술인과 노조 간부 출신으로 정년퇴임 이후 전국언론노조에 몸담고 있다. 한 위원은 "각종 마라톤 대회를 수없이 참여했지만, 30년 동안 조선, 중앙, 동아일보 주최 마라톤은 한번도 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티조선 마라톤의 '원조'인 셈이다.

"내가 겪은 한국 언론의 문제는…"

○…이번 마라톤 대회에는 외국인 모습의 참여자도 있었다. 미들네임이 '스티븐슨'(38·대학 영어 강의)이라고만 밝힌 참여자는 한국인 부인과 아이와 함께 대회에 나왔다. 스티븐슨은 "평소 달리기를 좋아하고 (조선일보를 반대한다는) 이번 대회를 경험해보기 위해 나왔다"며 "참여자들의 진보적인 목소리와 씩씩한 얼굴 표정, 움직임 등이 무척 좋다"고 말했다.

   
▲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정확한 이름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스티븐슨은 "6∼7년전 한국에 온 이후로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영어신문에 기고도 했다. 그런데 번번히 내 이야기와 다르게 지면에 나가고 심지어 기고문조차도 왜곡 편집이 됐다"고 완곡히 거절하면서 "(기자와) 친구가 되면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안티조선'을 경험하기 위해 나왔다지만, 한국 언론의 문제는 이미 스스로 겪고 있었다는 이야기.

강원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은 불참

○…당초 이번 대회에 주최·주관 단체로 참여하기로 했던 민주노총 강원본부와 민주노동당 강원지부이 결국 주최측에서 빠졌다. 이로 인한 논란으로 대회 준비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민주노총 강원본부와 민주노동당 강원지부는 지난 1회 대회를 주최한 핵심 단체였던 강원민중연대 소속으로 대회를 함께 치렀을 뿐 아니라 2회 대회에도 처음에는 주최·주관 단체에 참여했다. 초기의 대회 공지 포스터에는 두 단체의 이름이 포함됐고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동영상 메시지도 보내왔다.

   
▲ [조선일보 반대 춘천마라톤]을 마친 참가자들이 문화한마당 행사를 열며 대동놀이를 하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그러나 민주노총 강원본부는 지난 8월25일 "조선일보 반대운동이 노동자 농민 투쟁과 같이 해야 되며 노무현 정권의 무책임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 분명한 반대와 철회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조직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 정권의 노동운동 탄압과 민족농업 말살정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권의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들과의 공동행동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주최 단체 참여를 철회했다. 이어 민주노동당 강원지부가 지난달 6일 불참을 통보했고 민주노총 중앙도 '불참 공문'을 14일자로 보냈다.

이에 명계남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공동대표는 9월10일 라디오21에 <'조선'을 웃게 만드는 민주노총 강원본부>라는 칼럼을 올려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주장은 조선일보반대 마라톤대회의 본래 취지는 물론 기본적으로 '연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며 대회 동참을 촉구했다. 명 대표는 "조선일보반대 마라톤대회는 처음부터 안티조선 운동의 연장에서 '조선일보의 몰상식'에 반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떤 단체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사업으로 시작했다"며 "참가 단체나 개인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는 따지지 않으며, 따질 까닭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강원본부와 민주노동당 강원지부의 방침은 바뀌지 않았고, 이에 따라 2회 대회 주최 단체들은 1회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노적(親盧的)' 색채가 짙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물론 주최 단체들은 "친노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안티조선 마라톤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김덕수 조직위 사무국장은 "민주노총 강원본부와 민주노동당 강원지부 등과 같이 하지 못해 아쉽게 됐다"며 "대회가 끝난 뒤 다시 이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7명 축하메시지 보내와

○…대회장인 의암빙상경기장 주변에는 각 참여 단체들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휘장이 나부꼈다. 대회 출발선 아치에는 △굿모닝 대한민국, 굿바이 조선일보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지말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시민의 힘으로 언론개혁 완성하자 등의 문구가 적혔다. '남양주시 공무원 직장협의회'는 '국민기만 경제저주 말로만 민생, 조선일보 사기치지 말라'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다음은 각계 인사가 보내온 축하 메시지들이다(가나다 순).

▶강혜숙(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편안한 아침! 거짓이 없는 하루! 신문기사를 통해 세상의 진실을 확인하는 세상을 열어가는 제2회 조선일보 반대 춘천마라톤대회! 자축하는 마음으로 크게 축하합니다.

▶권해효(영화예술인): 조선일보를 끊을 수 있는 분은 마라톤을 당연히 완주할 수 있을 겁니다. 마라톤이 건강한 삶을 만들어준다면 조선일보를 끊는 일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정신을 만들어줍니다.

▶김원웅(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깨어있는 사람들의 대열에 흔쾌히 합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바른 언론은 여러분이 지키고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루 빨리 '조선일보반대 마라톤대회'가 막을 내리는 날을 보고 싶습니다. 그 날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김태년(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호반의 도시 춘천의 가을바람을 안고 진행되는 2회 조선일보반대 춘천마라톤대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가까운 날에는 축하와 기념의 마라톤대회가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노영민(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조선일보반대운동은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며, 왜곡된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의 표현입니다. 이제 언론개혁에 대한 여러분들의 염원이 국회에서도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명계남(영화예술인,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공동대표): 마라톤은 유독 자기와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내게는 조선일보와의 싸움이 마라톤과 같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짜릿짜릿 전해오는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 소리를 견딜 수 있는 자만이 조선일보와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리라.

▶이종걸(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조선일보반대 춘천마라톤대회' 행사를 통하여 5.18민주화운동, 친일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등을 가장 심하게 왜곡하고, 이를 폄하했던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것은 언론개혁이 우리 사회의 민주발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안티조선 마라톤이여! 엉터리 신문, 조작 신문, 거짓말 신문, 유언비어 신문, 재벌시녀 신문, 쿠데타찬양 신문, 독재옹호 신문, 친일파청산 반대 신문이 사라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립시다. 우리의 힘이 넘쳐나서 반민주, 반민족, 반역사적인 이 신문이 사라질 때까지 힘모아 손에 손 잡고 나아갑시다. 참여자 모두에게 영광과 승리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정청래(열린우리당 국회의원): 1회 대회에는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한 네티즌으로 참석했던 제가 올해에는 '안티조선 1호 국회의원'이 되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기를 바라며 언론개혁의 길에 늘 여러분들과 같은 자리에 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영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조선일보는 '할말을 하는 일등신문'을 자처하지만, 시월마다 춘천에서 열리는 조선일보 마라톤대회가 상업적으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조선일보 반대 춘천마라톤대회가 달리기의 참 정신을 되새기고 호반의 도시 춘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즐거운 행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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