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한 분야에 오래 일해 경지에 오른, 나이가 지긋한 기술공 남성이 저절로 그려진다. ‘베테랑’은 그만큼 전형적인 이미지가 녹아있는 단어다. 

하지만 오래 일할 수 있는 자격은 개인의 성실과 의지만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불안정한 고용 형태, 각종 질환, 장애, 특히 여성의 경우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 등 수많은 요소로 인해 ‘오래 일한다’는 조건은 뜻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베테랑이라는 이미지는 그만큼 다각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에 기록노동자 ‘희정’은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베테랑이라는 단어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살폈다. 

기나긴 노동의 흔적은 몸에 남고, 그들을 둘러싼 노동환경에 남는다. 희정은 ‘몸’의 안팎에 주목해 베테랑이라는 전형적인 틀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한 번도 베테랑이라는 영역 안에서 여겨지진 못했지만,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숙련의 과정으로 쌓아온 이들의 노동에 주목했다.

그렇게 책 <베테랑의 몸>이 나왔다.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13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책을 엮었다. 30년 경력의 ‘세공사 김세모’는 휠의 회전력을 오롯이 손가락 서너 개로 버텨내 손가락 통증과 허리 디스크를 달고 산다. 세공의 정밀함을 위해 폐와 눈에 들어가는 유해물질은 구별할 새도 없이 손등으로 비벼버린다. 20여 년간 건물 외벽을 타온 ‘로프공 김영탁’에게 어깨 통증은 고질병이다. 업무 외엔 힘이 들어가는 일을 하지 않는다. 등산같은 운동은 당연히 안 한다. 

▲ 세공사 김세모.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세공사 김세모.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평생을 바다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힘을 준 ‘어부 박명순·염순애’의 허리는 기역 자로 굽었다. 산모의 출산을 조력하는 ‘조산사 김수진’은 잠을 깊게 들 수 없다. 한 달에 열흘 넘게 밤을 새운다. 산모가 그의 표정마저 살피기 때문에 예민하게 감각을 열어두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동네 목욕탕에서 일해 온 ‘세신사 조윤주’의 손은 20년 간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해 껍질이 하얗게 벗겨졌다. 탕 바닥을 청소하는 락스가 발바닥에 붙어 발이 터지고 갈라진다. 이들의 몸은 인내하며 버틴 시간과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가 된다. 

▲ 어부 염순애.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어부 염순애.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책의 주제가 ‘몸’이지만 정작 몸에 대해 묻는 일은 어려웠다. 몸이 없는 사람처럼 굴며 쓰러진 후에야 끌려가듯 진료실에 들어서거나(전시기획자 전포롱), 일주일에 한 번씩 디스크 신경 주사를 맞으면서도 ‘흔한 일’이라고 웃는(세공사 김세모) 베테랑들이다. “베테랑들이 본인의 몸에 대해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다. 아마 ‘남들도 다 아픈거 아니야?’, ‘일 때문에 아픈 건 아니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이 있었을 것이다. 평소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훈련의 부재도 합쳐졌다.”

팍팍한 노동조건으로 몸을 돌볼 여력은 없어진다. 희정은 몸에 남은 흔적을 넘어서 그들의 노동환경 둘러싼 문제의식을 통해 다양한 노동 형태에 주목했다. 

경마장에서 말의 생활 전반을 돌보는 ‘마필관리사 성상현’의 노동을 기록하면서는 기록의 말미에 “말은 왜 달려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어부 박명순·염순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는 선창에서 마주한 저임금 이주노동자에게도 주목했다. 외면할 수 없는 노동의 ‘수단화’를 짚어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기록노동자 희정은 직업군을 둘러싼 노동환경을 보면 더 넓은 노동의 영역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마필관리사 성상현.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마필관리사 성상현.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마필관리사의 노동을 존중하는 건 당연하지만, 독자들에게 말이 관리되는 상황을 존중하라고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이만 보는 게 아니라 직업군을 둘러싼 노동환경도 보기 위해 노력했다. 마필관리사의 기수들이 계속 죽어가는 상황이라 그 문제도 책에 한 줄을 다룰지라도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기수 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쓴 유서를 봤다. ‘다시 태어나면 말이 될까?’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이 마필관리사들이 갖고있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애정으로 말을 돌보지만, 말이 갇혀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있고. 이를 갈등한다고 해서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고. 나의 노동 조건과 상황이 존재하지만, 그게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다는 복합적인 노동 상황이 유서 한 줄로 느껴졌다. 

노동의 복합성을 내 잣대로 판단할 순 없다. 최대한 노동의 자부심을 성심껏 다루고, 후기에 나의 생각을 덧붙이자 해서 ‘말은 왜 달려야하나?’라는 문장을 썼다. 보통 인터뷰한 인물이 도드라진 글을 쓸땐, 인터뷰이가 하는 일에 반박되는 걸 덧붙이지 않는 게 기록자의 예의다. 나도 최대한 용기를 낸 거였지만, 마필관리사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인터뷰이를 믿고 한 작업이었다.”

▲ 책 '베테랑의 몸' 저자 기록노동자 희정. 사진=본인 제공.
▲ 책 '베테랑의 몸' 저자 기록노동자 희정. 사진=본인 제공.

 

“살림은 기획이다”라는 말의 사회적 언어를 찾아서

여성 일자리엔 유독 누구도 숙련직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노동이 많다. “사람을 다 쓴 건전지처럼 갈아 끼우는 학교(와 교직원들)의 행태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들조차, 급식실에서 밥을 짓고 채소를 다듬는 일이 어떤 대단한 기술과 숙련을 갖췄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책 <베테랑의 몸>, 71쪽) 섭외 과정에서도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베테랑이 아닌 것 같다’며 인터뷰를 끝내 거절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학교 급식실에서 매일 2천 명의 음식을 만들어낸 ‘조리사 하영숙’도 손사래 치던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희정은 책 원고를 검토받으며 손사래 치던 모습과는 다른 그의 자부심을 느꼈다. 1400명 정도를 천 여명이라 표현하면, 하영숙은 꼭 숫자를 제대로 고쳐달라고 말했다. 작은 숫자에도 신경 쓰는 그에게는 ‘수많은 사람의 입에 제때 꼬박꼬박 먹을 걸 넣어줬다는, 나의 일을 완수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 조리사 하영숙.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조리사 하영숙.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희정은 그를 만나며 여성의 숙련된 노동을 정의할 수 있는 사회적 언어를 찾기도 했다. 

“항상 ‘살림은 기획이다, 기술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걸 근거있게 말할 수 있는 소스가 부족했다. 내가 1인 가구라서 살림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살림이 무시당하는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림의 영역이 밖으로 나가면 저임금 노동으로 전환되는 상황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으로 ‘살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살림이 얼마나 귀한 일인데’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적 언어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산 게 참 고맙다’고 말하는 조리사 선생님을 만나면서 스스로 해소할 수 있었다.”

이처럼 희정은 <베테랑의 몸>에 담아낼 여성 직종을 많이 발굴했다. 조산사, 안마사, 세신사 등 사회적으로 베테랑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기록하며 여성의 숙련된 노동을 세심하게 기록했다. 

활판공방에서 만난 아흔의 식자공 권용국, 인쇄공 김평진 인터뷰는 가장 애틋하고도 재밌는 기억이다. 모든 과정이 컴퓨터로 이뤄지지는 지금과 달리, 과거엔 활판을 만들어 종이 책을 만들었다. “납을 녹여 활자 조각을 만들고, 활자를 원고 모양대로 활판에 줄 맞춰 배열한 뒤 인쇄기에 올려 눌러 찍는다. 이때 활판에 활자를 배열해 채우는 일을 식자(植字)라고 불렀다. 조판은 활자를 골라내는 일인 ‘문선’과 그것을 배열하는 ‘식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문선공이 책에 들어갈 활자를 골라 가져다주면 식자공이 그 활자들로 판을 짠다.”(책 <베테랑의 몸>, 340쪽)

▲ 식자공 권용국.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식자공 권용국.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열다섯 살의 권용국은 처음 간 인쇄소에서 다른 업과 달리 잉크와 접착제가 묻을 일 없는 깔끔한 식자 일이 마음에 들었다. ‘기역·니은·디귿’부터 ‘가·갸·거·겨’까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만들 수 있는 모든 글자의 활자를 못해도 수십만 개씩 만들었다. 6·25 전쟁을 거치고, 박정희 정권 ‘읽은 글을 이야기하라’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그는 식자공의 삶을 살았다. 조판대 앞에 서 티끌처럼 작은 활자를 핀셋으로 옮겨 오래 기억될 활자를 만드는 일이 좋다고 했다. 

▲ 식자공 권용국.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식자공 권용국.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활판공방에 가면 두 선생님이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모두 설명해주시려고 했다. ‘인쇄가 뭐가 됐나요?’라고 말하며 살짝 종이를 펼쳐보면, ‘이게 새겨지듯이 찍히는 거예요’로 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활판인쇄가 가진 매력과 장점을 계속 설명해주는 식이다. 그때 이게 정말 좋구나, 본인의 일에 대한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일이 소멸되어가는 게 안타깝구나를 느꼈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되면서, 특정 노동에 대해 쉽게 사라져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특히 변화가 빠른 한국 사회에서 오래 일한다는 건 시대의 변화를 다 몸으로 겪는다는 것이다.”

혼자 하는 노동은 없다

‘베테랑’은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희정이 만난 이들은 모두 도구든, 기계든, 동료든 ‘나 혼자’를 뛰어넘어 관계 맺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세공사 김세모는 ‘보고 또 보았던 기술이 아니라, 동료를 보라’고 이야기했고, 세신사 조윤주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게 뭐가 있지? 나는 타고난 육체가 있으니 내 노동력을 주자”고 말했다. 작가가 책을 통해 가장 던지고 싶은 화두도 “혼자 하는 노동은 없다”는 메시지다.

▲ 세신사 조윤주.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 세신사 조윤주. ©최형락 (사진 제공: 한겨레출판)

“베테랑의 몸을 쓰며 만난 모든 분들이 다 자기 일터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말했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터, 노동이라고 불리는 영역은 단지 내 한 몸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관계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넓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책을 썼다. 혼자 하는 노동은 없다. 노동의 관계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부여잡고 있는 관계성이 읽는 분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랐다.”

기록노동자 희정도 기록자들의 연대체 ‘싸람’을 운영하며 관계를 실천하고 있다. 프리랜서 기록자들은 임금부터 시작해 취재 현장에서 닥치는 위험 등 전반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싸우는 노동자들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모인 연대체 ‘싸람’은 자체 내에서 원고료도 만들고, 서로 취재 현장이나 섭외를 돕고 글도 봐준다. 취재 현장에서 위험이 생길 경우에도 함께 책임진다. 이들은 서로를 지원하고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노동이 되도록 애쓰는 존재다. 

희정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룬 르포집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성소수자 노동에 대해 다룬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일터의 정상성과 노동할 자격을 규정 짓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일할 자격> 등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노동을 기록해왔다. 희정이 ‘노동’이라는 렌즈로 문제를 풀어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구조가 바뀔 여지’를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노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노동에는 사회 시스템을 말해줄 수 있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 일터라는 현장은 부대끼며 관계 맺는 상황 속에서 계속 변한다. <일할 자격>에선 동료는 사람을 환멸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동료들과 같이 일터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존재라고도 썼다. 계속 시스템을 말하고 바뀔 여지를 말해주는 게 나의 노동이다.”

▲ 책 '베테랑의 몸' 표지.
▲ 책 '베테랑의 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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